108 계자 열 하룻날, 2006.1.12.나무날. 늦은 밤 우박

조회 수 1397 추천 수 0 2006.01.14 00:34:00

108 계자 열 하룻날, 2006.1.12.나무날. 늦은 밤 우박

< 우리는 먹고픈 생각이 손톱만큼도 없지만 >

날이 참 무섭지요.
샘들이 더러
어제의 분위기를 타고 아침부터 어수선하잖을까 걱정 적지 않더니
해건지기를 해왔던 아이들 가락으로
묵언 속에 아침을 엽니다.
아침, 하루 가운데 참으로 소중한 그 시간이
이곳에서 왜 그리 다루어지는지 아이들은 이미 안 듯하다지요.
"이건 비밀인데요,
주환이랑 석현이는 엉덩이가 무릎에 붙었대요."
문 앞에서 달싹이는 둘을 빼고는
정말이지 모두가 척추를 쭈욱 끌어올리고 깊이보기를 하고 있었답니다.
"세상에서 제일 치졸하고 치사하고 쫀쫀하고 형편없는 이가..."
오늘 아침은 물음 하나를 던졌지요.
아이들은 대답보다 다음 말을 기다립니다.
"자기보다 약한 이를 업수히여기는 사람입니다. 괴롭히고 속상하게 하고..."
몸이 불편한 이처럼 머리가 불편한 이도 있지요.
아이들 가운데 조금 다른 아이 하나 있어,
그런 아이에 대해 당장 이 사회 속 평균치의 아이들의 반응이
피하거나 놀리거나 괴롭히는 것임을 익히 듣고 보아왔던 터라,
어제만 해도 그런 일이 있었다 하기
아침부터 마음 고르기들을 하였답니다.
어째 우리 '인간'은 이다지도 못났는지...

손풀기 시간이 재밌었지요.
먼저 해왔던 아이들은 주전자와 귤을 나란히 놓고 있었고
새로 온 이들은 단순한 모양의 그릇을 그렸는데,
초보자들한테 뿌듯하게 그림을 내보이는 저 표정들이라니...
한슬이의 그림이 많이 돋보였지요.
스케치북에 다 들어가지 않자 억지로 구겨 넣지 않고
보이는 부분까지만 종이를 채워 그리고 있는 겁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아이들의 데생력이 일취월장이고 일장월취입니다요.

열린교실.
'뚝딱뚝딱'에 젊은 할아버지가 톱과 망치를 드셨습니다.
동희 정근 정우가 따라가네요.
장순이집을 고쳐주자는 동희의 강력한 주장으로
얼음 밭에서 놀며 한 사람씩 가서 망치질하고
또 한 사람씩 가서 톱질하고...
소나무 껍질 쪽을 켠 나무들이 제법 모양새 있게 줄어서서
진돗개 장순이집을 감싸,
아주 호텔이랍지요.

'한코두코'에는 경표만이 들어갔네요.
혼자 열심히 떠서 제법 목도리 단을 늘여놨습니다.
"실이 굵어서 그래요."
시샘하는 누군가 그러지만
늘어난 길이는 길이인 게지요.

우와, '단추다루기'엔 무려 아홉이나 몰렸습니다.
지난 번 단추탑을 본 아이들의 관심이지요.
정원을 초과했다고들 고민하더니
결국 다 같이 하기로 마음을 모았나 봅니다.
동휘도 한슬이도 신기 지혜 수진이 예지 예진이
그리고 종훈이 기홍이가 들어가 있습니다.
살뜰하게도 붙이고 있었지요.

나무곤충은 고생고생 나무를 해 온 사람들이 해야 된다며
정민이 재화 홍관이가 들어갔지요.
석현이는 다른 일로 좀 늦었습니다.
"신청 더 받지 마요."
내가 고생해서 온 거니까, 나만 하겠다?
샘이 그걸 좀 더 잘 설득해서
내가 해온 걸로 다른 이랑 나누는 기쁨을 더 많이 얘기할 수 있었음 좋았을 걸,
조금 아쉬움이 있었습니다,
샘으로서야 지금 이 시간을 누리는 아이들 마음을
더 배려하느라 그러셨음을 모르지 않지만.

"내일 매듭교실을 한 번 열어봤으면 싶은데..."
"좋지요, 하세요. '다 좋다'로 열고 매듭을 하면 되겠네."
"아, 싫습니다. '다 좋다'에 대한 기대들이 너무 크기 때문에...
그러더니 열택샘이 크게 소리치는 겁니다,
"매듭이라 붙이고 정정당당히 하고 싶습니다!"
열이 들어와도 된다며 큰 소리를 팡팡 치시며.
은하, 제우, 채리, 류옥하다가 같이 했습니다.
샘도 첫날이고, 아이들도 어린데다 첨 하는 아이가 셋이니
수월치는 않았던 모양입디다.
"열택샘은 사람이 왜 그래? 자기 것도 못챙기고 말야..."
아이들 뒤치다꺼리로 바쁜 열택샘 걸 엮어주며
해봤던 류옥하다가 생색을 내더라지요.
으이그, 마 좀 조용히나 해주지...

희안하게 이번 계자에선 '다 좋다'를 서로 떠미는 바람에
오늘은 제게 왔네요.
"노는 교실이 아니라 다른 교실의 아이들이 뭔가를 배우는 시간,
우리도 뭔가를 하는 시간입니다.
다만 열린 강좌가 다 마음에 들어 어딜 가얄지 망설여지거나,
마음에 드는 게 없어서 왔을 뿐이지요."
의미 있게 보내기로 합니다.
반은 자율학습이고 반은 가치 있게, 쯤으로 양보도 해주었지요.
그래서 간 썰매장.
"어, 누가 목도리 두고 갔어요."
정근이 겁니다.
"그럼 우리는 정근이 목도리를 가지러 왔다가..."
그냥 오기 섭섭하기 살째기 썰매를 두 판도 아니고 한 판 탄 게 되는 거지요.
돌아온 우리는 고래방 뒤란으로 갔습니다.
"우리는 먹고 싶은 생각이 요만큼도 없지만..."
오직 다른 교실 아이들에게 봉사하기 위해
매운 연기에 눈 벌개져서 은행을 구워냈지요, 우물가에서.
도훈이는 열 번도 더 맛있다고, 맛있다고...
영환이가 단추다루기에 가려다
어깨 아프다는 저를 도와주러 들어왔고,
윤빈 주환 승호 도훈 홍관 창욱이가 같이 했더랍니다.

점심 때건지기.
"종훈아, 더 먹어."
"그러면 달걀이 있어야 하는데...."
절대 직접적으로 말 안하는 우리 종훈 선수.
"너 왜 지영샘한테만 비밀 얘기 했어?"
"자꾸 졸라서요."
지영샘 지나가다가 듣고선 발끈하지요.
"야, 내가 언제 그랬어? 네가 해 준다 그랬잖아."
종훈이는 휙 돌아서서 가버립니다.
오늘은 1모둠이 설거지네요.
정우와 도훈이가 설거지를 하는 동안
아이들이 두부과자를 먹고 있었는데,
남겨달라고 소리소리 지르더니
설거지 끝나고는 뛰어나가 버렸습니다.
화장실요?
아니요. 끝난 기쁨에 잊어먹구서.

"안녕하세요, 인형놀이에 와주신 여러분, 환영합니다!"
장갑인형이 나와 아이들한테 인사를 하였습니다.
나중에, 작은 인형극을 한 편 제대로 보여주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크게 일었지요.
읍내를 다녀와야 할 일에 그만 쫓겨...
그래도 핀란드에서 온 실타래 인형이랑 야채나라에서 온 당근아저씨가 건네는 인사에
모두 감탄하며 즐거워라 하는 걸로 그런대로 족해했지요.
전체 시간 안내만 하고 나왔는데,
아이들이 하는 인형놀이는 떠들썩하고 흥겨운 작은 축제였답니다.
찢어진 베개 속, 실, 솜, 단추, 헝겊, 양말,
버려진 종이상자, 조개껍데기, 요걸트병, ...
좋은 재료를 사서도 아니고
물꼬에서 늘 하는 '다시쓰기'를 잘 표현하고 있었지요.
큰마(학교 앞동네)패는 꿰미고 잇고 달고,
댓마(학교 뒷동네)패는 붙이고 매고 묶고 씌우고 칠합니다.
"고무줄 있어요?"
"본드 주세요."
하면서 필요한 것을 잘도 찾아가더라지요.
재화가 샘을 따라 다니며 뭐 해 달라 뭐 해 달라 조르며 귀염을 떨고,
태석샘 품에서 이제 막 온 제우가 거의 2시간을 내내 울었습니다.
이 아이의 변화가 정말 기대된다지요.
거북이 등에 조개껍질을 붙이는가 하면
창욱이는 자기 수준에 맞게 잘 만들고 있고
종훈이는 자기 꺼 한 뒤 빈이랑 창욱이를 도와주었습니다.
"이거요!"
"목걸이를 왜?"
"우승 목걸이요."
석현이는 하라는 거북이는 안 만들고 거북이 목에 걸 목걸이를 내놨습니다,
유치원 아이처럼, 정말 맑은 아이입니다.
2모둠에서 하루재기하며 그랬다데요.
진행을 맡았던 류옥하다가 건창이 형아 이름이 생각이 안 나자,
"호랑이!"
그리 불렀답니다.
그런데 그 호랑이도 알아듣고 자기 말을 하더라지요.
마치 연극 한편을 무대에서 내리고 나서도
오랫동안 그 연극을 추억하며 서로를 그 배역으로 불러주듯이.

제우 울었잖아요,
전 그때 잠깐 한의원을 다녀왔지요.
"옥샘 오시면, 진짜 집에 가고 싶다고 말씀드리면, 어떻게 해주실 거야."
"집에 보내줘요?"
"그럴 수도 있고."
"그럼 스케치북(손풀기 한)은요?"
"응?"
"스케치북은 가져가도 돼요?"
"그건 재미있어?"
"네."
그리고는 뚝 그치고 기다렸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야말로 정말 대단한 인내의 소유자들입니다.
원성이 대단했다지만, 다만 그것 뿐,
어른들 세계처럼 못 견디며 싸우려 들진 않는답니다.
말도 안 되는 어른들을 참아내는 것 또한
그들의 놀라운 인내지요.

한슬이가 순간순간 참 의젓합니다.
인형극 연습하며 종훈이가 기다리다 제 차례 안온다고 울어버렸다지요.
"그럼, 우리 다 멈추고, 종훈이가 충분히 하게 한 다음, 계속하자."
그러고 싶지 않아하는 듯한 얼굴들까지도
워낙에 따뜻한 어른같이 내놓은 안이고 보니 그냥 다 따라야 했답니다.
종훈이가 또 울었는데,
"안되면 울어버려!"
형아들이 핀잔도 주었지요.
"그럼 너 먼저 해, 나는 연습이나 하고 있어야지."
신기가 양보를 하더랍니다.

날도 좋으니 아이들이 일하러 나갔지요.
나무를 또 날랐습니다.
종훈이가 무겁다 해서 신기가 종훈이 걸 들어줬나 봐요.
"샘, 38.5키로 몸무게가 이게 무겁대요."
쌓고 있던 젊은 할아버지한테 툭 놓으며 소리치더랩니다.
넘의 몸무게는 뭐할라 기억하누?

저녁반찬에 장조림에 나왔습니다.
새로 온 어느 이의 반찬이겠지요.
메추리알들 사이에 큰 달걀이 네 개 있었답니다.
나눠 먹기가 좀 어려웠겠지요.
그래서 남자 어른 넷한테 주기로 희정샘이 결정했습니다.
동휘랑 몇이 버럭 소리 질렀지요.
"왜 어른들만 줘요?"
그 맞은 편의 석현이 왈,
"그냥 주는 거지."
어른들 들으라고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 아이의 품성이 그래요.
한 번은 어떤 아이가 한데모임 내내 앞으로 나와 너스레를 쳐
장난스레 꿀밤을 주는 시늉을 하며 앉혔는데 그랬지요.
"왜 애를 때리구 그래요?"
시비도 아니고 장난도 아닙니다.
그 아이 편에 서서의 마땅한 항변이지요.
놀란 저요?
"아니야, 흉내만 낸 거야."
손 내저으며 가슴 쓸어내렸지요.
정말 진지하고 착한 우리의 석현 선수.

기홍이와 창욱이가 한데모임을 진행하겠답디다.
"잘 모르겠어요."
손을 들어놓고, 나가기도 해놓고, 갑자기 앞이 막막했던가 봅니다.
잠깐 우리가 나눌 얘기들을 몇 마디 짚고 났더니
뚝뚝뚝 자신있게 앞으로 나가데요.

오전에 상범샘 코 때문에 병원 가는 길에
석현이를 딸려보냈습니다.
새끼손가락이 부어 부목을 대 주려다
가는 걸음에 묻혀보냈지요.
조금 휘었답니다.
뭐, 부목대고 왔지요.
그런데 병원 가서도 어디 젤 먼저 갔게요?
인터넷!

남자 화장실 쓰는 법에 대해 고민을 좀 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 머물 때 저희 집 남자식구들은
앉아서 오줌누기를 했었답니다,
미국인 친구네 얘기를 듣고서부터였지요.
얼마 전 치과의사들 모임에 나간 일이 있는데
어느 가정에서 역시 세 명의 남정네가 그런다데요.
배려거든요, 다음 사람에 대한, 그리고 다른 사람에 대한.
워낙에 튄대요, 냄새도 많이 나고.
빈그릇만들기처럼 앉아오줌누기도 이곳의 문화로 정착시킬 수 있지 않을까,
곰곰이 생각합니다.

싱가폴 가 있는 승현샘으로부터 체스판이 왔습니다.
아이들이 닳도록 만지고 있지요.
고맙습니다.
선진샘이 면접에 붙어서 2월부터 어린이집에 출근한답니다.
그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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