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계자 열 나흗날, 2006.1.15.해날. 달빛 고운 밤

조회 수 1418 추천 수 0 2006.01.19 11:21:00

108 계자 열 나흗날, 2006.1.15.해날. 달빛 고운 밤

< 잊고 있었어요 >

박이 다 열리겠습니다, 달빛이 어찌나 고운 지요.
아이들이 그 달 아래 장작불을 피우고 놀다
구운 감자로 한바탕 서로에게 검댕을 묻치며 뛰어다니더니
이내 조용해진 한 밤입니다.

해날이라고 늦잠도 자고, 청소도 하고, 머리도 감았습니다.
지난 주의 움직임이 있고 예서 스스로 움직이던 가락도 있어
먼지풀풀도 알아서들 잘들 하더랍니다.
"예진이가 쓸고 있고 수진이 닦고..."
곶감집을 같이 오른 지나샘이 그러데요.
빨래한 옷도 찾고 맡겨둔 제가 만든 물건들도 찾더니
일찌감치 가방을 꾸려놓는 녀석도 있었습니다.

'한껏맘껏'입니다.
미처 못해본 열린교실이며 더 하고파 미련이 남고 또 남던 것들을
찾아다니며들 하겠지요.
궁금도 하더이다, 구석구석 돌아보았지요.
배움방에서 동휘가 영환이를 엎어놓고 내리누르고 있습니다.
몸으로 움직여 아이들과 뒹구는 역을 하는,
새끼일꾼 노릇을 톡톡히 하는 영환입니다. 지나며 살짝 겹쳐 누르는 흉내를 내지요.
"어어, 영환혀엉, 옥샘이 누르고 있어."
복도 쪽 창 아래선 신기와 도훈이 그리고 주환이가 오목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기홍 채리 승호 은하는 단추로 탑을 열심히 쌓고 있네요.
류옥하다가 글루건을 쏘아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참 손으로 만지는 걸 좋아하고...
여기선 더 창의적이고,
여기 재료는 전혀 상관없는 것 같은 재료를 써서...
남녀구분 없이 몰두해서..."
밤, 샘들 하루재기에서 지나샘이 물꼬의 한 풍경을 그리 묘사했지요.
건창이 승현이 정근이 수진이 정우는 책방에 늘어져 있습니다.

가마솥방에선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을까요?
지영샘은 뜨개질에 한창이고 현애샘은 책을 읽고 있습니다.
경표 예진 빈 지혜 예지 제우 종훈 석현이가 매듭에 한창이네요.
종훈이 재화 석현이는 아는 방법만 딱 알고 지겨워라 합니다.
지혜도 벌써 한 개를 손목에 찼지요.
제우는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고,
한슬이와 경표는 성취감으로 얼굴이 화안합니다.
나중에 들어온 태석샘도 "하나 배웠다!"며 신나하더랍니다.
매듭은 지나샘이 진두지휘중이지요.
마치 다른 샘들 쉬라고 꼭 일일교사로 온 것 같습니다.
"계자 중에 '한껏맘껏' 있는 날,
다른 샘들 좀 쉬게 누가 하루만 움직이러 와도 좋겠다."
"아무나 그럴 수 있는 건 아니지."
"그러니 그런 기간제샘은 꼭 지나샘이 와야지."
지나샘이 이 방 저 방 건너다니며 아이들 속을 어찌나 잘 누비던 지요.

목공실에선 정민이와 동희 홍관이가
태석샘을 붙들고 나무곤충을 만들고 있습니다.
거북선에 판옥선에 별의별걸 다 만들겠다는 소문이 무성하더니
결국은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나무곤충입디다.
저녁엔 대나무숲을 탐험하고 대나무잔이며 성과물들을 가지고 귀향(?)하는
동휘 동희 류옥하다를 만났지요.
건창 홍관 경표 종훈 정우는 장작을 패며 놀다 도끼자루가 망가져
농기구광에서 괭이 곡괭이 죄 가져와 늘여놓고
나무를 패보는 모양입디다.
"홍관이형 훌륭한 사람이야."
물개소리도 잘 내고 배로 파도타기도 할 수 있기 때문이래요.
신기가 그랬답니다.
저들나름의 재주들도 보여주고 다니나 봐요.
아이들이 이 곳 저 곳에 번쩍 번쩍 하며
한껏 맘껏 누리는 해날이라지요.

은하는 우리들의 소식통입니다.
누가 운다, 누가 싸운다,
샘들이 알아야할 사항을 보이는대로 알려옵니다.
"창욱이가 울어요."
강아지 쫄랑이가 밥 먹는데 건드려 손톱 곁에 쬐끔 물린 것도
그래서 샘들이 알았지요.
상범샘이 말린 옷을 정리하고 있던 곁,
방에 몰려있던 아이들이 떠난 자국이 너저분도 했겠지요.
은하만 마지막 단추탑을 올리고 있더랍니다.
고개를 들며 바둑돌이랑 온 방바닥에 깔려있는 걸 보고는
"야 이놈 신기가..."
하던 놈을 들먹이며 거기까지 말했을 뿐인데,
"제가 할 게요."
은하가 그러더라지요.
고운 은하입니다.

방준석엄마가 가마솥방 일을 도와주러 왔습니다.
가마솥방샘도 해날 쉬면 좋겠다고 지난 주엔 곽보원엄마한테 부탁을 했고
이주엔 경표네 어머니한테 부탁한 거지요.
류옥하다 외할머니는 그 편에 강정을 닷 되나 만들어 보내주셨습니다.
이곳을 지켜야할 까닭은 참 많다지요.
저렇게 한껏 누리는 아이들을 위해서
이곳에 머물며 위로받는 어른들을 위해서,
정작 이곳에 살고 있는 공동체 식구들인 바로 우리 자신을 위해서,
그리고 물꼬를 지켜내는 숱한 손, 그 빚(?)을 위해서...
오후엔 잠깐 곧 새내기 교사가 되는 현애샘이랑 차 한 잔을 했더랬습니다.
세상을 바꾸려면 교육을 바꾸면 된다,
그러니 교사가 얼마나 중요한 직업이던가,
그의 처음을 보며 우리들의 처음을 생각했더랍니다.
그런 마음들을 다지는 현장이라지요, 여기!

촛불잔치합니다.
그것은 어떤 말도 어떤 움직임도 더할 필요 없이
방을 채우는 빛만으로 충분한 시간입니다.
'충만함'을 그 빛으로 배웁니다.
물꼬가 전하고픈 얘기들을 하지요.
생태와 평화와 장애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 그리고 사이좋음...
고래방으로 건너가 강강술래로 한바탕 놀고
젊은 할아버지 피워주신 장작불가에서 또 놀았지요.
그리고 불가에서 우리들이 보낸 그간의 시간들을 갈무리합니다.

샘들 하루재기.
"단추탑 목걸이 보며 웃겨요."
대나무 막대기며 집에 가면 먼지 쌓이는 것들을
목숨 걸고 가져가는 아이들의 세계가 재미나다지요.
아이들도 가는 시간에 섭섭함을 보이더랍니다.
"샘, 여름에 올 거예요?"
"아마도 겨울에 올 수 있을 걸."
"그럼 나도 여름에 안 오고 겨울에 올 거예요."
무뎌 보이는 석현이가 다 그러더라지요.

너도 나도 샘들이 그럽니다.
"잊고 있었어요, 애들이 내일 가는 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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