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계자 닫는 날, 2006.1.16.달날.흐림

조회 수 1196 추천 수 0 2006.01.19 11:22:00

108 계자 닫는 날, 2006.1.16.달날.흐림

< 모든 하루가 >

늘처럼 아이들이 나가고 고요가 찾아듭니다.
보름동안 스물로 시작해 하나가 늦게 함께 했고
다시 여덟의 아이들이 더해져 스물 아홉이 마지막 엿새를 보냈더랍니다.
오며 가며 열일곱의 어른(새끼일꾼 둘 포함)이 함께 했지요.
이 산골공동체배움터의 평소 움직임처럼 지낸 터라
별 할말도 없고
그런 만큼 짧게 함께 한 아이들에겐 적잖이 아쉬움이 남기도 하지요.
그렇더래도 마음에 새긴 게 없을 라구요, 어디.

마지막 요가 마지막 명상 뒤
여기 보낸 시간들을 가방에 꾸리고
다음에 올 아이들을 위해 먼지를 털고
11시, 아이들이 예서 보낸 시간들을 정리했습니다.
열린교실이 다 끝나 매듭을 신청하지 못해 아쉬웠다가
기어이 한껏맘껏에서 챙길 수 있어 기뻤다는 한슬,
단추탑이 모양새를 갖춰가는 게 신기하다던 정근,
한껏맘껏에서 신기랑 논 시간이 젤 재밌었다는 윤빈
('먼 산' 가서 한 고생에서 놓여나서 다행이다 싶었지요),
너무 의젓해서 그만 초등 2년이란 사실을 잊어먹는
(동생을 둘이나 거느린 맏이거든요),
엄마 생일선물로 목도리를 뜨고 싶었는데 다 못해 슬펐다는 예진입니다.
손님맞이로 건 목걸이와 맞이 연극 그림자극이 인상 깊었다는,
책 보는 시간이 정해져있다거나 하는 부자유가 예선 없어서 좋았다는 정우,
가마솥방 천장의 형광등과 파리끈끈이를 잘 묘사해놓은,
그림 잘 그리는 신기,
추웠지만 우리가락 시간이 재밌더라는 승현,
매듭이 신났으며,
은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준 채리지요.
"우리 가락에서 장구치는 법도 배우고 다른 가락도 배웠습니다.
겨울산 겨울들도 재미있었습니다.
저녁마다 하는 대동놀이도 재밌었고
한데모임에서 하루 있었던 일을 들으니 좋았습니다
(중략)
모든 하루 좋았습니다."
그리고 날짜와 '떠나는 날 물꼬에서'라고 단정하게 글을 남긴 야문 예지,
알아볼 수 있는 글씨보다 모르는 게 더 많은 정민이의 평가글을 보는 건
마치 정리 안 된 정민이의 머리카락만큼이나 행동만큼이나 즐거웠지요.
단추탑 만드는 과정을 열심히 쓰고 있는 지혜,
은행을 구워먹는 걸 신기해라 하던 도훈,
자유로웠고, 잘 누렸다는 재화,
인형극에서 만든 호랑이가 뿌듯해서 끌어안고 있는,
젤 재밌었던 나무곤충에서 온 가족 선물을 만든 홍관,
징을 들고 신나하는 우리가락 시간과 산오름을 그림으로 남긴 종훈,
열린교실을 온통 '다 좋다'로 장식한 건창,
손말을 배우는 것에 참 진지하던 수진이었습니다.
한코두코에서 하루는 실이 꼬여 다음날 또 꼬여 자르고 또 자른,
그래도 즐겁게 날들을 밀고 간 동희였고
칸막이를 나흘 동안 작업해서 만들어낸 뿌듯함이 한껏 묻어나던 승호였지요.
새로운 아이들이 와서 축구가 더 활기를 띄어 좋았다는 석현이도
우리가락에서 악기를 매고 친 게 꽤나 기억에 남는 모양입디다.
보글보글 호떡이 젤 맛났다는 창욱,
"자유학교에선 잘못을 하면 너그럽게 용서해주시고 함께 한다.
일반학교에서 얻는 것보다 자유학교에서 얻는 것이 더 많을 거라고 생각한다."
새끼일꾼에 대한 꿈을 다지며
지금 샘들이 잘해주는 만큼 자신도 물꼬에 와서 아이들에게 아주 잘해줄 거라는,
그리고 옥샘 어깨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다는 의리의 영환
(여러 차례 자기가 하고픈 것을 포기하고
도움꾼으로 도와주기 위해 제가 꾸리는 시간을 들어와 주었지요.
우리 영환이, 다시 고맙답니다!),
아침마다 명상에 쓸 악기를 잘 챙겨주었던,
여럿 속의 관계보다 개별의 관계에 더 익숙하고 더 잘 지내던 동휘,
저번 계자에서 못해본 걸 찾아 뜨개질을 한 경표
(이제 이곳을 잘 누리는 법을 아는 게지요),
단추탑을 최고로 높게 쌓아서 기쁜 기홍이,
오재미할 때 피하는 게 즐거웠다는 류옥하다,
오빠한테 발로 채여 운 채리가 가장 안타까웠던 은하,
목소리가 날로 높아서 이제 천장도 뚫겠는 주환,
매듭이 재밌어 가장 기억에 남는 시간이 된 제우가 있었지요.

'마침보람', 길게 한 줄로 한 사람 한 사람 만나는 시간입니다.
아쉬움들을 나누고
못다 했던 말, 못다 나누었던 얘기들도 합니다.
혹여 다친 마음은 없었을까 살피며
마지막 길 툴툴 털고 기분 좋게 돌아가길 바랍니다.
아무래도 늦게 함께 한 도훈이 제우 정우 채리가 많이 아쉽습니다.
좀 더 긴 일정을 같이 했더라면 싶었지요.
경표나 지혜는 걸음이 잦은 데다
정근이도 왔던 적이 있어 덜한데...
물꼬의 생각을 나누는데도 제우랑 채리야 또 어려서 그렇다지만
도훈이랑 정우는 제법 큰 데다,
물꼬의 얘기가 닿지 않는다는 느낌일 때
시간을 들여 만나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던 게지요.
그냥 캠프 다녀가듯 겉핥기로만 만나다 가는 건 아닌가,
이곳의 일상성이 묻혀가기는 어렵겠구나,
안타까움이 일었더랍니다.
그래도 우리 함께 보낸 시간, 즐거웠다마다요.
아이들이 있어 새해가 힘찼지요,
아이들이 있어 다시 살만해졌다지요.
고맙습니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사랑한다!"

불편하기 짝이 없는 산골에, 게다 별로 알려져 있지도 않은 물꼬에
믿음 하나로 달랑 아이들을 맡겨주신 부모님들도 대단하고
이 험한 곳에서 오직 물꼬의 이상에 동의(?)해 고생을 서슴지 않은
품앗이 샘들도 대단합니다.
누구랄 것 없이 바쁜 이 땅 중고생인데도
어린 날의 기쁨을 기꺼이 나누러 걸음 한 새끼일꾼들 또한 놀랍지요.
그들로 힘을 얻은 물꼬였더랍니다.
애쓰셨습니다!
모다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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