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계자 여는 날, 2006.1.20.쇠날. 마르다 만 빨래 같은 하늘

< 원래들 알어? >

아이들이 팔랑거리며 들어옵니다.
"희영아!"
살이 좀 붙었네요.
오빠 영환이가 새끼일꾼처럼 형님노릇 잘 하고 떠난 자리로
희영이 바톤을 받아 들어왔습니다.
"옥샘, 아직도 살아계셨어요?"
지준입니다.
"이눔의 자슥, 한참만에 와서 한다는 소리가..."
아이들 사이에서 예순이 다가온 제 나이는
저들 할머니 나일테니까요.
"재혁아!"
더 반가운 까닭이 있다지요.
엊저녁 하얗고 오동통하다와 시커멓고 삐쩍하다로 설전이 있었지요.
재혁이란 놈이 둘이긴 한데 곽재혁은 역시 오동통이거든요.
내기 할 걸 그랬습니다.
지선이와 경민이, 그리고 경은이도 한 해만에 봅니다.
야속하리만치 긴 시간이었네요.
다른 아이들이 계자를 오고가는 동안 자주도 생각났던 삼남매더라지요.
여름 볕 아래 호박처럼 자라서들 왔습디다.
"재열이 오빠 동생이에요."
그러고 보니 재열이랑 똑같은 재이네요.
태우는 초등 마지막 계자를 왔습니다.
이제 한 해를 쉬면 그토록 하리라던 새끼일꾼이 될 수 있답니다.
"하하하, 하수민!"
꾸벅 인사를 합니다.
눈만 마주치면 환하게 웃으며 머리부터 숙이는 우리 수민입니다,
모임에서 이곳에서 지내는데 필요한 안내를 하는 동안
너무나 적절한 반응으로 활기를 주던.
현주랑 원영이를 꼭 이태 만에 보네요.
그 사이 현주는 1학년 동생 현욱이를 키워서(?) 데려왔습니다.
학교 큰 대문을 들어서는데, 부르고 또 부르고 보고 또 보았지요.
"베개 싸움 안해요?"
이야, 정말 오랜만에 들어봅니다.
그게 언제 적인가요,
들어서면서부터 아이들이 무슨 신고식마냥 베개부터 휘두르던 게.
계자의 모습도 참 많이 달라졌습니다.
전반적으로 많이 가라앉았지요.
정적인 활동과 동적인 움직임이 균형을 잘 이루도록 애쓰고 있지요.
전엔 워낙에 동적 영역이 많았더랍니다.
"무슨 길샘인가..."
현주는 형길샘을 찾기도 합니다.
"그때 애들이 수제비 국물 맛없다고..."
같은 시간에 대한 기억의 공유는 우릴 얼마나 가깝게 하는지요.
둘이서 한참을 까륵거렸더랍니다.
그런데 현욱이는 정말 현주랑 똑같아요.
눈도 동글 안경도 동글 얼굴도 동글한 우리 예슬이는
변하지 않은 그 모습으로 들어왔습니다.
철순이야 본 지 얼마 안 되니 갸웃거릴 것도 없이 불러주지요.
"잘 왔다!"
그러는 사이 이름도 보기 전에 새 얼굴들은 우르르 쏟아져 들어가 버립디다.
"어, 연호오!"
네, 멀리서부터 알겠습니다.
아는 체를 할랑 말랑 말을 붙일랑 말랑 주춤주춤 하는 저 걸음걸이 하며...
"호정아!"
얼굴에 밴 작은 짜증이 이제 가셔진 우리의 호정 선수도 입장입니다.
아, 그리고 참 예쁜 우리 준형이,
오뉴월 하루볕에서처럼 하루 하루 변화를 보여주었던 그도 왔습니다,
거친 말을 모르는 것도 아니면서
예서는 부드럽게 말하는, 예를 갖출 줄 아는 아이.
영준이랑 승엽이는 옷도 비스무레하게 입은 것이
어찌나 붙어다니며 시끄럽게 구는지,
일곱 살들처럼 귀엽습니다.
첫모임에서 재채기를 해서 화장지를 집어주며 이름을 익힌 인혁이는
제(자기) 글집에다 나무를 그려 넣었는데,
그 나무가 주는 느낌이 꼭 그 아이 같았지요,
눈이 숲 속 맑은 샘을 닮았습니다.
서윤이랑 서영이랑이 어두워 보인다며 역에 나갔다 온 샘이 그러더니만
웬걸요, 너무나 신나게 보내고 있는 걸요.
애들요, 네, 역시 오래 새겨(사귀어)봐야 안댔잖아요?
두어 번 둘이 헷갈리더니 들여다보니 영 다르게 생겼습디다.
"하씨들은 다들 그렇게 생겼나 봐."
하수민처럼 동글동글하고 둥근 눈을 가진 하승호,
말 많은 제가 하루에 하는 말보다 넘쳤음 넘쳤지 모자라지 않을 만큼
시끌벅적한 태호,
일곱 살처럼 앞에서 진행하는 말을 따라서 들먹이는 장난기 넘치는 현민,
아무래도 이번 계자에선 자리가 안되겠다는데도
가방을 싸서 기어이 나타난 우리의 석중 선수,
"물꼬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겼어요?"
진지하게 물어주던
아름다운(글집에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자신을 담아놓았데요) 아이 동희,
유치원 때는 차에 관심이 많았지만 요새는 위인전에 심취해있다는 희성,
철원에서 복무하는 군인들이 다 하는 대화보다 양이 많을 철원이,
자주 입에 오르내리지 싶은(그 왜 어리고 귀여우면 자주들 들먹이잖아요)
또이또이하고 너무나 상큼한 얼굴로 휘젓고 다니는 일곱 살 채현
(승엽이 동생이더라구요. 둘이 티격거려 집안싸움 물론 집에 가서 하랬지요.),
글집에 고흐의 해바라기를 정성스레 그려놓아 인상 깊었던 동근,
엉덩이를 많이도 들썩거리지만 심부름도 잘하고 말도 되는 상원이
(모둠 하루재기에서 의젓하게 자세 고치고 앉더니,
계자 기간동안 다치지 않고 사이좋게 놀다 가자며 멀쩡하게 말하더라지요),
상 아래의 세계를 더 사랑하는 재성이,
그리고 아주 늦게야 이름을 불러주었던 성수가 있습니다.
"니네 틀림없이 친구지?"
세 자매 같은 규리 은영 박수민은 모둠이 달라 울쌍을 짓기도 했다는,
이미 절친한 친구들입니다.
이곳에선 다른 관계들을 맺을 수 있음 좋겠지요.
늦어서 학교까지 바로 들어온 경준이는
제(자기)가 뚝딱뚝딱 했던 물건들을 찾습니다.
제 손으로 한 것을 예다 남겨놓고
다시 와서 확인하고는 하지요.
그들의 이곳에 대한 반가움에는 그런 것도 있겠습디다.
제 글집에는 들판을 그렸노라는, 기다리는 게 많이 어려운 승재,
꼼지락쟁이 현석,
그리고 넘들 대동놀이 하러 고래방 건너갈 적 슬그머니 다가온 준희와 승주.
"22일 해날 열린교실 끝나고 (집에)가면 안돼요?"
"왜?"
"지난번에 어떤 캠프 가서도 울었어요, 엄마 보고 싶어서."
절 보라 하였지요, 여기선 엄마고 아빠니까.
"아니면 울면 되지."
울면 되겠지요.
가만 가만, 이건 비밀이라 했는데,
비밀 지켜주실 거지요?
그런데 잠잘 적 정말 준희는 엄마 보고프다 울고
누이 민수는 어이없다는 듯 난감해 하고
곁에 승주는 덩달아 섰고..
"승주 네 이놈, 네가 더 나쁜 놈이다. 친구가 마음이 약할 때
의연하게 도와주고 해야지. 옆에서 더 부추기고 말이야..."
"아, 아니예요."
그렇게 왁자하게 웃고 떠들며 첫 밤을 맞았지요.
가라앉아 뵈는 지수가 눈이 자꾸 갔습니다.
몇 마디를 나누어보았더라지요.
올찬 아이입니다, 저 나름대로 좋은 시간이 되지 싶어요.

네 살 박이 적부터 보았던 가요, 경은이가 학교를 들어갔답니다.
"혼날 때도 있어?"
"네."
"아니, 이렇게 이쁜 걸 혼낼 게 어딨어서?"
"말 안들을 때 혼나요."
"어떨 때 말 안 들어?"
"뒤로 가라 그럴 때."
"뒤로 가라면 뒤로 가야지, 담부터는 그렇게 해에."
"네에."

"옥샘, 실뜨기 할 줄 알아요?"
지나는 절 책방 앞에서 불러 세운 건 성규입니다.
가던 걸음을 놓고 했지요.
"이건 어려운데..."
그러며 이어 이어 주고 받았습니다.
"에이, 다른 거 해야겠다."
할 만치 하니 책방으로 쏘옥 들어가데요.
실뜨기를 하자고 절 불러 세운 아이도 참 오랜만입니다.

그리고, 이 곳에 살고 있는 류옥하다까지
아이 마흔여섯이 109 계자를 함께 한다지요.

'큰 모임'이 먼저 있었습니다.
물꼬 살아온 얘기도 전하고
예서 지낼 시간들 안내도 하고
비어있는 글집을 마저 채웠지요.
허브농장 갔던 서윤의 그림,
너무 좋고 자유로운 바다 속을 그린 재이,
흙 만진 손을 담은 지준,
놀이 인상 깊었던 태우,
"늘 행복하길" 하고 바램을 담은 호정,
대해리를 옮겨놓은 철순,
민주지산 아래 물꼬 오는 버스를 그린 경준,
저들 삼남매를 그려넣은 지선,
하늘에 눈(目)이 동동 떠다니는,
정말 정말 하수민 같은 수민의 그림,
봄날이 멀잖다 싶은 서영,
'영동관광고속'(사실은 영동고속관광)을 타고 오는 연호,
생각 많은 지수,
"함께 하고 돌아보고 스스로 하"는 이곳에서 같이 한 약속을 받아 적어놓은 민수,
제(자기) 사는 집을 그린 류옥하다,...
더러 더러 넘들 따라 그린 그림 앞에서 재미가 좀 없다가도
아이들의 말투같은 저마다의 색깔을 보며
갖가지 들꽃메꽃 피어난 들길 어디메를 걷는 것도 같았지요.

'우리 가락' 시간이 있었습니다.
열 다섯만 판소리로 남고
나머지 서른 하나는 풍물패로 갔네요.
그런데 태우며 지선이며 경민이며 희영이 예슬이 연호 현주 호정 경은이
오래 다녀서 외려 재미없어할 것 같은 이 시간에 들어들 왔지요.
김세종제 춘향가를 사이 사이 중요대목들을 들려주며
판소리가 어떻게 짜여져있는가를 익히고
민요 '뱃노래'를 배웠습니다.
뚱땅거리는 게 아니라 따땃한 방에서 몰려오는 졸음과 씨름하며
재미라곤 없이 노래를 부를 판인데
웬걸요, 그 아이들의 열성이 배움방을 데우고
서로의 목청을 돋구어주었지요.
멀리 기본 가락을 익히기 시작하는 풍물패소리도 고래방에서 건너옵니다.
"중중모리도 뒤로 갈수록 작아지는 거예요."
서영이 옛글자 공부하듯 꼼꼼이 물어옵니다.
상원이는 커다란 컵에 물도 떠다주네요.
오랜만에 소리를 내지르며 저는 저대로 신명이 났더라지요.
"너무 재밌어요."
채현이는 온 몸을 들었다 놨다하고,
서영이 승엽이 석중 현욱이도 어찌나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던지요.
"재밌다!"
넘들 다 쉬는데 경은이, 곁에 앉은 선짐샘한테 조릅니다.
"우리 같이 해요."
현욱이만 방바닥의 유혹에 말려 아주 잠깐 졸았을 뿐이라지요.

'일'하러 나갑니다.
장작을 날랐지요, 언제나 열성적인 첫날이 그러하듯 모다 그러하였습니다.
"아이, 힘들어."
하나 옮기고 쫄래쫄래 달아나버린 채현이만 빼고.
어, 그런데 지준이 다쳤습니다.
장난기 많은 한 녀석한테 떠밀렸다는데
나무과 벽 사이에 오른쪽 새끼 손가락 첫마디에 상처가 났지요.
살 뒤집으며 깔끔하게 소독해내는 건 아무래도 서툽니다.
곁의 보건진료소를 잘 쓰자하지요.
그런데 닫혀있어 결국 교무실에서 돌봅니다.
그런데 이 녀석, 장난스레 누르기도 하고 마구 휘둘기도 하고...
아무래도 맘 놓고 놀게 하려면 꿰매줘야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날을 넘겨도 되겠기 일단 지혈을 하고 동여매 놓습니다.

한데모임에서 손말도 익히고
대동놀이 하러 고래방 건너갔지요.
어찌나 말들 넘치고 뽀시락거리는지 놀이를 설명하느라 온 시간이 다갑니다.
오래 대동놀이를 즐겼던 지선이라든지는 아쉬워라 했지요.
이번 아이들은 거칠지 않되 무척 수다쟁이들이랍니다.

승주랑 준희랑 바둑돌을 가지고 놀고 있었지요.
분위기야 바둑왕전입니다.
곁에 그들의 누이 민수가 있었는데,
그 앞으로 동근이가 와서 자연스레 노는 거예요.
"원래들 알어?"
아니랍니다.
아, 아이들,
물 속까지 햇살 좋은 날처럼
관계와 관계가 마치 물에서 유영하는 듯한 그들 세계에서
그만 행복해져버린답니다.

샘들 하루재기.
"애들이 우르르 들어오는데, 짐도 바리바리 싸서..."
지난 계자가 절반이었으니 그럴 밖에요,
확실히 우글거리는 느낌으로 아이들이 들어서더라나요.
"요새는 아이들이 캠프를 수시로 다녀
새로운 게 아니라 틀에 박힌 한 일상 같은 모습이"이기도 하더랍니다.
"나는 기억에 없는데 그는 날 기억하"더라며 아이들한테 더 성을 다하리라 합니다.
귀농을 하나마다 고민하다가 어떤 귀농을 하느냐에 이르렀고
그러다 물꼬를 만나 '자신의 체험'을 위해 왔다고도 하네요.
축구 농구 대동놀이로 스스로 더 즐겁기도 하다지요.
"앞 계자랑 자꾸 견주게 됩니다. 그럴 수 밖에 없겠지요."
그러나 알아가면서 재밌을 거라고도 합니다.
아이에서 새끼일꾼에서 품앗이와 논두렁이 된 이는
자신이 여기 왜 오고 또 오는가를 생각하고 있다지요.
어제 그네 부모님이 물으시더랍니다,
물꼬는 "교육자로서 교육에 대한 깊은 철학과 이상이 있는 사람들의 모임"인데
너는 왜 가냐고.
나는 아이들 앞에 설 자격이 있는가고 묻겠지요.
"우리가 아무리 고매한 이상을 가졌더라도
그 이상을 구현해내는 것은 결국 손발이고
이곳은 바로 그 성실한 이들의 손발이 큰 힘이 되어 '존재'했고,
또 존재할 수 있는 곳이지요."
그리고 이리 말해주었더이다.
"소희샘(그리고 새끼일꾼들, 품앗이샘들)은 우리들의 자랑입니다!"

희영이가 달포 전에 편지를 보내왔더랍니다.
"...제가 다른 아이랑 있을 때도 몰래 사무실 훔쳐볼 때도 항상 웃고 계신 것 같았거든요. 저 같으면 아이들이 처음엔 좋다가 말썽을 부리며 떠들 땐 머리가 끓거든요. 샘은 꼭 신부같아요. 신부님도 언제나 침착하시잖아요(안 웃으시는 것만 빼고). 도대체 어떡하면 그렇게 인내심을 기를 수가 있죠?"
아, 우리 희영이 눈엔 그랬구나, 참말 다행이구나, 그래, 정말 잘 살아야지,...
참말 좋은 선생이 되고 싶다지요, 아이들의 채찍은 얼마나 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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