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9 계자 닷샛날, 2006.1.24.불날. 맑음

조회 수 1131 추천 수 0 2006.01.31 10:42:00

109 계자 닷샛날, 2006.1.24.불날. 맑음

< 고개 너머 >

산 하나도 이 골짝에서 보면 이렇게 생겼고
저 골짝에서 보면 저리 생겼으니
그 이름도 갖가지가 될 밖에요.
물꼬의 둘러친 산들은 계절마다 가는 길 따라 또 이름을 더하니
기억도 어쩜 그리 다다른지요.
오늘 아이들은 '고개너머' 간답니다.
지난 계자에선 '먼 산'이라 불린 곳이라나요.
바른 길은 하나도 없고 비탈길에다 낭떠러지,
"기어 올라가고 넘어지고 까지고 미끄러지고...
나는 선생님들이 우리 보고 죽으라고 버리는 것 같았다."
희영이가 나중에 그리 말했지요.
"산에 올라가서 이젠 물꼬에 다신 안 올 거라는 생각도 했는데 그냥 오기로 했다."
너그럽기도 한 호정이입니다.
"올라갈 때는 손에 긁히고 내려올 때는 가시덤불에 걸렸다."
그래도 재밌었다는 서윤이지요.
샘들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죽었을 거라는 현욱이,
"내 앞사람이 떨어질 뻔해서 겁이 더욱 더 났지만
누나가 괜찮다고 해주어서 마음을 조금 좋았다."는 준희,
"여기에 고개너머만 없으면 좋겠다."는 석중,
"아무도 가지 않는 산을 헤쳐, 진짜 집에 못가고 죽는 줄 알았다."는 지수였습니다.
모르는 길을 가는 두려움, 책임감, 진지함, 겸손함, 소망이 담기더라는
상범샘이 길잡이로 나섰지요.
마지막 고비를 기어오르니
다시 바위산 하나 버티고 섰더랍니다,
수백 년도 더 사람의 체온이 닿아본 적 없는 듯한.
거기서 보따리를 풀고 배를 채운 다음 길을 틀었다지요.
"와!"
가파른 길이었으니 돌아내리는 길은 고스란히 썰매 길임을 짐작키 어렵지 않지요.
어느새 산 아래더랍니다.
산 들머리 첫마을 돌고개를 막 벗어나니
얼어붙은 작은 못이 맞더라지요.
한참을 놀았답니다, 얼음판 위에서.
험난한, 그러나 유쾌한 산오름이었다더이다.

다녀와서는 '한껏맘껏'으로 이어집니다.
보름여를 보낼 때야 하루쯤은 한껏 맘껏 제 하고픈 대로 시간을 즐길 수도 있겠으나
계자 기간이 한 주도 안 되고 보면
샘들이 시간에 대해 더 욕심이 납니다.
해서 산을 서둘러 내려와 한껏 맘껏 보내보면 어떻겠냐 했지요.
안에선 매듭을 하고 밖에선 공을 찹니다.
큰 마당 한켠에선 여자양궁선수권대회도 열리고
방 어느 구석에선 단추 다루기가 한창이네요.
다른 방, 이불 아래선 무서운 이야기에 오돌거립니다.
멀리서 뚝딱뚝딱, 못질 망치질 소리도 온 산에 퍼져나가고...

강강술래를 하고는 큰 마당 한가운데 장작불을 둘러싸고 섰겠지요.
"감자를 기달리며 불을 바라볼 때 이 행복이 불에 담았다."
동희는 시인입니다.
아주 독특한 아이지요,
마당 가장자리를 홀로 거닐기도 하고
남자아이들의 축구판에 저 혼자 암시렁않게 끼기도 하는.
어디 그만 그럴까요,
아이들은 모다 시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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