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17-8. 밥알모임 / 무상교육에 대한 다른 이해

이번 밥알모임은 여느 때와 달리
교무와 서무행정을 맡은 상범샘이 소집한 모임입니다.
'자유학교 물꼬'는
논두렁들의 후원회비와 '물꼬 생태공동체(물꼬생태)'의 지원으로 살아가지요.
그런데 지난 9월부터 학교가 줄어든 후원회비로 어려움을 겪어 왔는 데다
물꼬생태공동체가 달골에 집을 짓기 시작하면서
학교쪽으로 하던 재정지원을 한정 없이 해갈 수는 없는 지라
이 문제를 학교에 관계한(그래 보아야 학부모, 즉 밥알이겠지요) 이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야만 하겠다 했습니다.
위기의식의 공유쯤 되겠지요.
그런데 학교로서는 문제를 인식하는 출발점에 이견이 있었는데
실무적인 면, 궁한 살림에서 출발하는 편이 있었는가 하면
'도리가 아니네'라는 '감정'에서 출발하는 이들로 나뉘어 있었더라지요
(아이를 맡겨놓고 있는 부모 편에서 그동안 너무 안이했다),
사실 뒤섞여있었다가 더 정확한 표현이겠지만.
할말이 없어서도 그랬고
어쩜 '감정'에 더 무게가 실렸던 저로서는
그 감정이라는 것이 사실 서로 '얘기를 나누'는 데는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기에
결국 이번 밥알모임은 실무모임의 양상을 띠는 속에
저는 나가지 않았습니다.
실무 쪽에선 모임을 '재정난 타계를 위한 논의'로 본다면
한편에선 '재정난을 바라보는 다른 눈에 대한 인식 좁히기'를 핵심으로 삼았던 듯합니다.
형식이냐 내용이냐의 싸움쯤으로 읽을 수도 있겠네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
그러나 지난 이십여 년 물꼬에서 살아오며 어떤 일을 수행하는데 있어
마지막 이르러는 길이 같다고 해서 그 길이 동일한 길일 수는 없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밥알들이 돌아갔습니다.
식구한테서 단 한마디를 줏어들었지요.
무상교육을 이해하는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예견했지만
오늘 결국 그 거리를 확인했다고 합디다.

흔히 대안학교라 불리는 공간들에서 대부분이 겪고 있는 1차적인 갈등은
누구말대로 '낭만적 기대'이겠습니다.
"어떻게 저런 인간이 대안학교 부모일 수가..."
"아니, 어떻게 저런 사람이 대안학교 선생일 수가..."
물꼬는 또 하나의 산이 있지요.
무상교육에 대한 천박한 이해가 한 몫 거듭니다.
"무상교육이라는 게 부모가 이렇게 무책임해도 된다는 건 아니지..."
"무상교육이라 해놓고 결국 돈 내놓으라 하고..."

"무상교육은 단지 학비를 내지 않는다는 사실을 넘어 연대의식과 사회환원의식을 형성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육을 투자의 개념으로 보는 현 세계의 가치관이 달라지지 않는 한은 경쟁의식, 보상의식(투자했으니 뽑아야 한다), 그리고 특권의식(계급의식)을 벗어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물꼬는 터무니없이 무너져 내렸던 삼풍백화점(1995년)과 같은 부실한 세상, 거짓된 세상에 바로 현재의 교육이 거대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고 보며 그것에 대해 저항하고 새로운 가치관,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는 한 길이 무상교육이라 믿습니다.
십년 전 고작 서너 곳에 불과했던 것이 이제 100여 군데 가까이 대안학교라는 이름을 걸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결같이 높은 기부금 출자금 입학금 등록금으로 또 하나의 계급사회를 만들고 있습니다.
물꼬는 무상교육을 하는 유일한 대안학교로서(이하, 산골공동체배움터) 가난이 교육의 수혜를 방해하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실험의 기초를 잘 다져나간다면 무상교육이 보다 확대될 수 있을 것입니다."

(거칩니다만) 물꼬가 어느 재단에 낸 글을 빌어오자면,
그 내용 가운데서 돈을 내지 않는다만 남고
그것이 구현하고 싶은 세상에 대한 소망도 사라지고
그런 교육을 구현하기 위해 우리가 함께 어떻게 움직여야 하는가는 빠진 건
무상교육에 대한 무식한 이해를 고스란히 드러낸 꼴이지요,
그게 가능하려면 부모 또한 어떤 노력이 있어야 하는지는 없이.

예, 물꼬가 하는 나날의 교육에서는 배움값을 받지 않습니다.
무상교육이지요.
그러나 학교를 위해서 보시할 의무를 지웠습니다.
보시가 무엇이더이까?
자비심으로 남에게 재물이나 불법을 베푸는 것이라 하였습니다.
"아주 적은 돈도 자신의 이름으로,
까무러칠 정도로 많은 것도 이름 없이 낼 수 있는 자유로움으로"
경박한 이 땅의 문화 위에서 그게 가능하겠냐고
많은 이들이 우려를 했습니다.
"당신이 어렵게 내는 오천원은
다른 누군가 여유로이 내는 기천만원과 그 크기가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적어도 물꼬를 선택하여 오는 이라면 이 말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으리라 기대했지요.
"그대가 할 수 있을 만치 마음을 다해 나눠주시면 좋겠습니다."

물꼬가 부모에게 지난 11월 처음으로 공식적으로 돈을 요구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들을 데리고 밖을 나가서 구체적으로 현금을 써야 하는 건
물꼬로서도 부담이지요."
여태는 흔히 말하는 현장학습이며 무에며 기름값 한 차례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먹고 사는 거야 예서 어이어이해도
현금지출은 물꼬도 부담스럽다마다요.
해서 입장료와 관람료, 그리고 고속도로통행료를 받았더이다.
그리고 앞으로 이 부분은 부모들이 내주었음 좋겠다고 전했지요.
물론 물꼬공동체 아이 혹은 부모 없는 아이야 물꼬가 맡다마다요.

물꼬의 논두렁은 꼬깃꼬깃 자기 용돈을 모아 내는 초등생부터
더 이상 경제활동은 않지만 자식들한테 받은 돈을 쪼개 내는 어르신까지
참으로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합니다.
물꼬로부터 어떤 이익도 있을 것 같잖은 사람도 뜻을 보태고 있기까지 한데
하물며 아이가 다니는 학교인데...
이것이 물꼬의 슬픈 기대의 출발이라지요.
실제 지난 두 해,
흔히 논두렁이 달마다 내는 그 만원이 없어 못낸 부모도 있고
언젠가 갚을 거라는 빚으로 생각한다며 큰 소리 치는 이도 있고
내 집 살림에서 할만치 했다는 이도 있습니다.
(교육비야 당신들이 안받는다고 했으니 안받는 게 당연한 거고
보육비로는 할 수 있는 만큼 한 거다, 이렇게 해석하면 되나요?)

자, 그렇다면 물꼬는 '밥알들 돈 좀 내놓지'가 지금 얘기하려는 본질일까요?
(여기에 '실무'와 '감정'의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감정'은 그대는 정녕 최선을 다했느냐 묻는 마음의 문제일 테니까요.)
그러면서 지금 학교의 어려움을 부모들 주머니 털어서 해결하려는
다른 대안학교랑 무엇이 다르냐 반문하려나요?
"다르지요. 물꼬는 교사 임금을 한 푼도 받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사립과 대안학교는
부모로부터 나오는 바로 그 학비에서 임금이 차지하는 비율이 80%를 웃돈다지요.
물꼬의 공동체 식구들은 학교가 아니라 물꼬생태로부터
달마다 오만원의 용돈을 받고 있을 뿐이지요."
학교가 서있기(히히, 사실 그리 호락호락하기야 하겠습니까만)힘들었던 지난 시월부터
그리고 특별건축기금을 마련하는 이 시점도
밥알들은 다만 우리 일은 다 했다는 듯했습니다.
아니 뭐 그렇게 받아들여졌다, '감정'으로 하는 해석이 이랬다지요.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보내는 애들 부모들은 뭐하냐고,
저거 애들 키우는 게 아니냐고,
저거 아이들이 들어가 살 집이 아니냐고,
버젓이 부모있는 애들 아니냐고.
다 사는 게 그러저러 하니까 그렇지요, 변호하지만 참 할 말 없었지요.

무상교육이 나몰라라 하는 무책임과 방만함을 의미하는 건 아니지요.
학교가 존립의 기로에 섰다면 함께 갖은 힘을 동원해서 세워내야지요.
돌이켜보며 밥알들이 너무 "안이"했다는데 이르렀습니다.
아이를 데리고 있으며 들만큼의 후원을 해야지 하던,
아이를 맡기는데 드는 힘만큼은 보탤 거라던,
입학만 할 수 있다면 어떤 힘이든 되어보겠다던 그 첫마음들은 얼마나 유효했더이까?
정말 만원을 낼 수 없었나요?
돈은 못보탤지라도 부엌일을 도우러 올 수는 없었나요?
한주를 이어서 못오면 일년에 사나흘이라도 할 수는 없었나요,
정말로 오실 수 없었나요?
물꼬에 지고 있다는 그 빚을 먼저 갚아주면 아니 됐나요?
문제는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물꼬가 고려대상의 맨 아래칸"에 가 있지 않았냐는 의혹이었습니다!

"차라리 교육비를 달라고 해라!"
밥알모임에서 나온 얘기 하나랍니다.
그건 근원적으로 물꼬의 존재를 뒤흔드는 일이지요.
같은 이불에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다?
물꼬의 밥알들을 싸잡아서 비난하려는 게 목적이 아닙니다.
이해시킬 수 있으면 좋겠고
설득시킬 수 없다면 또 그만이지요.
물꼬가 존재하는 한은 밥알은 있기 마련이고
(하기야 우리는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니 훗날엔 밥알이 없을 수도 있겠네요)
곧 새로운 밥알을 맞으려는 시기,
이제 '안이'하게 밥알이 되고자 하는 이가 스스로 물러나길 바라며
(알려진 대로 물꼬의 입학절차는 뒤로 갈수록 학교가 아니라 부모가 선택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셋을 뽑는데 육십이 지원했던(2005학년도 신입생 선발) 물거품의 숫자가 아니라
단 하나라도 물꼬와 생사를 같이 할 의지를 가진 이가 밥알로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오늘 아침 아이랑 이불 아래서 도란거리고 있었더랍니다.
"물꼬 일 그만 할까?"
"왜?"
"너무 힘들고, 또 몸이 아프니까."
"에이, 그래도 물꼬 일은 해야지."
"그럼, 무슨 일을 안해도 돼? 하다 엄마일?"
"아니지, 그거야말로 젤 잘해야지."
"그럼, 아빠 아내일?"
"그것도 해야 하는데..."

좋은 관계라는 게 별 건가요, 서로를 고무시키고 고양시키는 거 아니던가요.
건강했던 한 인간의 의욕이 꺾이고 있었더이다, 이 눈보라치는 겨울 한복판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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