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23.쇠날.하염없이 눈 / 매듭잔치

조회 수 1261 추천 수 0 2005.12.26 23:33:00

2005.12.23.쇠날.하염없이 눈 / 매듭잔치

눈이 하염없습니다.
사람들이 들어올 수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수 해째 해오던 대해리에서의 겨울 마을잔치를 올 해는 하지 않습니다,
작년엔 매듭잔치가 있던 날 했더랬는데.
"눈 이리 많이 올까봐 안 한다 그랬지, 선견이 지명이라고."
일찍부터 함께 하고프다 했던 종훈이네는 엊저녁 들어왔고,
가까이 산다고 유일하게 초대한 김천의 신기네는
차를 움직일 수 있으려나 모르겠습니다.
버스로 들어오신다는 김현덕엄마는 어이 됐는지,
다른 밥알들은 오고는 있는지....
예, '2005학년도 학술제가 있는 매듭잔치'가 있지요.

1시 밥상머리 펼쳐보이기
2시 길놀이와 작은 연극
3시 학술제
4시 국선도 수련
5시 한솥엣밥

"리허설도 한 번 안하고 무대에 서도 되냐?"
집에들 갈 짐도 싸고 청소도 하고 이것저것 전시를 하고나니
오전이 그만 후딱 가버렸습니다.
점심을 먹고 불가에서 도란거리다 2시를 맞았지요.
"시작해도 될까요?"
"할 사람들이 문제지, 뭐..."
"밥상머리공연이니까, 우리들은 지금 밥을 먹는 중입니다요."
아이들이 나와서 피아노를 쳤습니다.
의젓합니다.
도형이는 리타르단도와 늘임표를 어찌나 잘 표현하던지요.
연습들을 좀 한 모양입디다.
눈이 온 대해리는 외려 따뜻하였지요.
고운 날 아이들과 의미있는 잔치를 해서 더할 수 없이 기뻤습니다.
창은 풍경화를 온통 걸었더이다.

배움방으로 옮겨갑니다.
문 앞에 놓인 탁자엔 자그만 선물이 놓여있습니다.
'불이랑시간' 직접 빚고 바깥가마에서 구워낸 목걸이를 하나씩 가지라 합니다.
잔치에 온 이들에게 한 인사가 적힌 카드도
아이들의 한국화그림으로 채워져 있습니다.
(채은이가 마련한 대추차도 있었는데, 나중에 쓰이지요)
방 한가운데는 촛불 모둠이 있습니다.
"겨울이라 꽃 대신 준비했습니다."
채규가 설명하였지요.
양 편으로 놓인 상 위엔 아이들의 한 해가 고스란히 들어있습니다.
머리 위엔 불이랑시간의 단추등불이 켜져 있었고
배움방 뒤편엔 고대삼국까지의 역사가 담긴 거대한 종이학 한 마리 날고 있었지요.
창문에는 지난 칠월의 아이들의 시그림도 다시 나와 있습니다.
아이들이 한 줄로 나와 진행에 대한 간단한 인사를 하자
끝머리에 종훈이도 한 역할을 맡아 외쳤습니다.
"이제 고래방으로 가겠습니다!"
어른들이 아이들 살아온 시간을 들여다보는 동안
저들은 고래방으로 건너가 장구를 맸지요.

판굿이 벌어졌답니다.
일채로 호흡을 가다듬고 휘모리와 삼채로 방울진이며 태극진을 짜며 놀다
동살풀이에서 휘모리로 다시 동살풀이로 뛰고
한숨을 돌린 뒤 삼채로 미지기를 하고 놀았지요.
다시 굿거리로 넘어갔다 자진모리로 휘모리로 판을 끝냈더이다.
다들 벌개졌겠지요.
그리고 불이 꺼졌습니다.
"It's mouse"
아이들이 준비한 작은 연극입니다.
"모자를 두고 왔어요."
"됐어, 이제 있는 소품만으로 하는 거야."
아이구, 소란을 떠는 사이 '무대를 여는 음악'은 벌써 끝이나버렸답니다.
"I'm not strong."
첫 대사가 나오자
그제야 영어연극임을 알았챈 누군가 "어어!" 반응을 해주었지요.
음악도 나오고 조명도 쓰이니 제법 꼴새가 납니다.
바람이 나왔지요.
령이가 치마를 입고 손에는 살풀이 때 쓰는 적삼수건을 쥐고 춤을 추며 나오니
다른 배우들도 같이 쳐줍니다.
몇 차례 연습했더니 뻣뻣하기가 좀 낫데요.
자신이 약하다고 생각하는 쥐 청국장이 힘이 센 친구를 만나러 떠났지요.
해한테도 가고 구름한테, 그리고 바람을 지나 담한테 가지요.
"He can make a hole in me."
결국 쥐 홍국장을 찾아가 그와 좋은 친구가 된다는 이야기랍니다.
"우리 이번 잔치에서 춤을 추진 않더라도 손말은 해야지."
"마지막에 곰 노래 부르며 청국장이랑 홍국장이 퇴장하니까..."
그런데 '곰 세 마리'는 또 우리 수준이 아니랍디다.
잔치를 막 시작하기 전 이렇게 급조된 손말공연도 하게 되었지요.
무대에 오른 배우들이 절을 한 뒤
곧 '내가 찾은 아이'를 손말로 부르며 무대를 닫았더랍니다.

배움방.
학술제가 이어집니다.
건조하게 연구한 바를 알리는 거라면 지루하지 않겠느냐,
시카고 드폴이라는 데서 한국을 소개하는 프리젠테이션을 한 얘기를 전하며
인터넷에서 충분히 구할 수 있는 자료를 넘어
뭔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전달해보자 하였더이다.
(그때 저는 한국의 유명한 몇 편의 시와 그 배경이 됨직한 엽서 몇 장으로
대단한 반응을 얻은 경험이 있다지요)
저도 적잖이 궁금하더이다.
나현이는 정성스럽게 그린 그림으로 하나 하나 연구했던 것을 전하였고,
소나무재선충에 대한 질문에 파일을 꺼내와 답변을 잘 마쳤습니다.
그 자료를 그대로 읽는 게 아니라
정리해서 들려주지 못한 게 조금 아쉬웠지요.
채은이는 자신이 만든 대추차를 예서 돌리며 얘기를 하자던 것이었는데
후식으로 내겠다했습니다.
대추에 관한 연구를 잘 요약해서 짧게 전달을 하였는데,
예쁜 시 읽기가 더 잘 어울리는 친구란 생각을 늘 하게 되지요.
다음으로 이어간 채규는 OX 퀴즈로 사람들을 일으켜 세우고
벌에 대해 이것저것 청중에게 물었더이다.
너무 세부적인 것이라 정보전달보다는 나중엔 눈치로 문제를 풀게 하여
적이 아쉬웠지만
벌을 직접 키웠다는 손님 정운오님과 채규의 열띤 공방이 아주 재미가 있었더랍니다.
"공동연구네."
정운오님의 말씀처럼
영락없이 올 해도 스스로공부시간은 공동 연구가 되고 있었습니다.
연구자 대신 다른 발표자가 대답을 하고는 하였지요.
도형이는 나름의 퀴즈백과사전을 만들어
개에 관한 질문을 한 뒤 그것에 대해 충분히 설명을 해주고 있었습니다.
령이는 달마다 대해리에서 볼 수 있는 곤충을 그려
2006년도 달력을 만들고 그 곤충에 대해 얘기해주었지요.
원래는 갤로퍼로 사람들을 데려가 후드를 열어놓고 설명을 하겠다던 류옥하다는
차가 돌아오지 않아 계획을 수정한 게 '그림'이었습니다.
4기통을 그려놓고 점화가 실린더에서 일어나는 과정과
그것이 크랭크축으로 전달되어 어찌 차가 움직이게 되는가를 들려주고
후드 안을 그려놓고 휴즈박스에서 휴즈들을 임시로 변통하는 법도 일러주더이다.
늘처럼 좀 시끄러웠지요.
학술발표를 지켜보며
아직 자기가 모은 정보를 정리하는 힘이 좀 약했고
무엇을 전달할지 가리는 것에서도 부족함이 많았으나
저러며 공부하는 법을 잘 익혀가겠다 싶습디다.
사실은 그제 그간의 스스로공부 시간을 허투루들 쓴 건 아니냐 야단 좀 맞았지요.

5시. 학술제가 무려 시간 반을 흘렀고
그때 마침 준비된 듯
대해리 들머리 흘목에서 국선도샘들이 미끄러운 길에 발이 묶여있다는 전갈이 왔습니다.
곧 샘들이 닿아(예정보다 1시간이 늦었지만 일정이 자연스레 연결되어)
고래방에서 국선도 수련이 있었지요.
함께 즐기는 시간으로 마련한 자리입니다.
영동대 국선도학과 김기영교수님과 물꼬 국선도샘 종찬샘이 같이 걸음 하였지요.
눈보라를 뚫고 오셔서 국선도 도맥을 전하였더이다.
물꼬의 국선도 수련은 새 학년에도 이어질 량이랍니다.

저녁, 밥알들이 싸온 것들이며 준비한 음식들을 나눴습니다.
떡국에 잡채에 동태전에 고구마튀김, 쿠키, 갓 빚은 만두며
미국에서 온 머쉬멜로우 꼬치구이도 있었고
채은이가 준비한 대추차도 마셨지요.
쌓이는 눈으로 마음이 바빠
갈무리를 못하고 자리들을 털어야 했더이다.
부족한 자리, 함께 앉아 좋은 잔치를 만들어주신 모든 분들 고맙습니다.

사람들이 나가는 것도 다 못보았네요.
친정나들이 가는 희정샘과 상범샘,
기제사에 가는 열택샘도 나가고
눈에 묶여 아직 남았는 아이도 있고 먼저 떠난 아이도 있었습니다.
"방학 숙제는요?"
"미안해, 며칠 쉬고 보낼게."
하나 하나 안으며 미리 인사를 나눕니다, 가는 것 못 보겠다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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