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2.26.달날.맑음 / 자리를 털고

조회 수 1179 추천 수 0 2005.12.26 23:38:00

2005.12.26.달날.맑음 / 자리를 털고

사람들이 비운 학교를 기락샘과 젊은 할아버지, 그리고 류옥하다가 지켰습니다.

저녁답에야 눈을 뜹니다.
사경을 헤매다 이제야 정신이 돌아옵니다.
매듭잔치를 끝내고 까무라치듯 사람들이 다 돌아도 가기 전 이불 속에 들어가
해우소 가던 두어 차례를 빼면 자다 깨다 두 평짜리 방에서만 보낸 시간이었습니다.
식음을 전폐한 채 보낸 사흘.
무엇이 사는 것도 고만하고 싶도록 만들었던 걸까요?
몸과 의식이 좀 수습되고,
무엇으로 나는 사는가, 깊이 묵상했더이다.

한 주만 더 한 주만 더,
그렇게 버팅겨 오던 섣달 막바지였습니다.
급기야 지난 불날 열택샘과 병원으로 가서
왼편 갈비뼈에 금이 간 걸 확인했는데(그거야 일도 아니라지요, 그냥 붙는 다니까),
문제는 정작 오른쪽 어깨를 중심으로 한 근육과 신경이었더이다.
근전도검사란 걸(병원은 그놈의 검사라는 걸로 사람을 잡지요) 하고
약물치료를 않겠다며 나와 다른 길을 찾자 하고 있었지요.
병의 원인과 결과 들은 식구들과 아이들이 잘 도와주어
두 해의 마지막 학기를 그럭저럭 매듭지었답니다.
고맙지요.

더러 누가 '기'가 다 빠졌더라고 하던 게 바로 이러 했겠다 짐작합니다.
작은 집 하나 지으면서도 마무리하고는 다 드러눕는다더라며
하물며 이것저것 속이 어지러웠을 시간을 위로해준 어르신들도 계셨지요.
이렇게 몸이 망가져가며 제가 하고팠던 건 무엇이었을까요?
(그나마 몸에 잘 귀 기울여와서 이적지 버텼을 겝니다)
물론 무엇보다 내적 평화의 결여가 저를 허물었겠지요.
숱한 뜨거운 영혼들이 좋은 세상을 위해 움직이다 결국 지치고 마는 건
일상에 치여 그것이 갖는 중요성을 잃어버려서가 아니라
자신의 행동을 삶 속으로 되가져갈 수 있는 내적인 힘,
즉 평화가 모자랐기 때문 아니더이까.
사람이 자신의 필요 때문에 움직이는 거야 누구도 부인할 수 없겠지만
남은 내가 떠나는 이들과 다른 건 내 필요가 아직 남은 게 먼저가 아니라
너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이야,
작년 가을 막바지 무릎으로 고생을 하던 시간도
올 해 그 격동(?)의 시간과 아픈 어깨를 움켜쥐고 있을 때도
'그대를 향한 지지'가 저는(다른 누가 아니 '나') 아쉬웠습니다.
정말이지 위안이 필요했나 봅니다.
누구 때문에 사는 게 아닐 진대 남이 해주는 게 무슨 소용 있을까만
사람살이 재미가 별거던가요,
"힘들지요..."
"정작 누구보다 당신이야말로 힘들었겠습니다, 힘이 되고 싶습니다."

그러나,
죽지 않고 살 바에야 뭔가를 해야겠지요.
살 까닭이야 많을 겝니다.
'날' 의지해서 들어오는 식구도 있을 테고,
'날'보고 빚을 내준 그들의 빚도 갚아야 할 테고,
미움으로 살지 말자며 식구모임에서 결정했던
(궁한 살림으로 곡물이야 나누기 어려워도)
같이 농사 지었던 떠난 이들에게 애썼다며 은행이라도 나눠주자 하고는 보내지도 못했고,
공동체에서 태어날 아이를 위해 갚아야할 빚도 크고,
어느 순간은 다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싶던
그 숱한 저버리지 못할 약속들도 있을 겝니다.
무엇보다,
그 무엇보다도 말입니다,
이 커다란 우주 속에서 현재의 시간 안에 들어와 살게 된
제 '소명'이 있지 않을 지요,
calling이라고 하는 그 '부름' 말입니다.
버리며 더 큰 자유를 찾았을 순간들을 떠올립니다.
다시 생의 한 기점에서 자리를 털고 일어납니다!

살며 더러 실족을 하기도 하지요.
강건하게 나아가는 이도 있으나, 우리는 보통 사람이니까요.
실족한 내게 돌을 던지는 이가 있기도 하겠지만
구렁텅이까지 내려와 일으켜주는 이도 있을 것입니다.
"물꼬 일을 그만 두면 뭐할 생각이야?
이제 일 좀 접고 글 쓰지."
"나 편차고 그만 두면 그게 무슨 의미야.
혹 물꼬 일을 안하더라도 social work 하겠지."
남편과 나눈 얘기지요.
물꼬를 떠나더라도 가난한, 버려진 아이들과 함께 할 소망은 변함이 없을 겝니다,
이 지상에서의 소명이라 믿으니까.

매듭잔치를 끝내고 밥알들과 자리를 함께 하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끊임없이 살려주던, 충만했던 두 해였지요.
무엇을 위해 싸웁니까, 무엇을 얻자고?
헤어지더라도 우리들에게 두 해는 지울 수 없으며
우리가 한 조직 안에 있든 없든 필요한 얘기들이 있었을 테지요.
어른들의 참 나쁜 모습 하나는
다른 이의 허물을 더 부각시켜 제 들보를 감추려한다는 거라 합디다.
적반하장이라고 되려 큰 소리를 치며 물고 늘어지는 거라데요.
누구라고 달랐겠는 지요.
그간 아이들 믿고 맡겨주셔서 고맙습니다.
두 해 동안 모두 애썼을 것이며,
너무 자주 잊었지만, 행복했습니다.
더 성숙한 관계로 얼굴 뵐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덧붙임;

보는 관점에 따라 안이했다는 표현이 나올 수도 있음을 인정하지만
나도 하느라고 했다, 사정은 이러저러했다,
밥알도 식구라면 식구의 허물을
메일을 통할 수도 있을 텐데 공개적인 자리에서 어찌 함부로 말할 수 있느냐,
사과의 글과 함께 게시판에 올린 글을 삭제해 달라,
정신을 수습하고 쓴 글을 다시 읽어봐라...
밥알 식구 하나가 '무상교육에 대한 다른 이해'를 읽고 메일을 보내왔습니다.
오늘 저녁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훑어봅니다.
네, 앞 뒤 없이 읽으면 고스란히 몹쓸 밥알이라고 읽겠습디다.
화가 났겠데요, 그러게요, 어쩌자고 그토록 화가 나서 막 쏟아냈을까요?
일반대중과 또 앞으로 함께 할 밥알을 향해 하고픈 얘기를
지금 밥알 팔려 한 셈이었더이다,
제가 좀 과해도 용서해줄 편하고 만만한 우리 밥알 말입니다.
한편, 저는 저대로 이제 더는 서로 말이 안 된다 접었던 게 있었던 모양입니다.
누구보다 무상교육에 대해 잘 이해하리라는 이가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밖에 나가면 넘들도 너들 뭐 먹고 사느냐 묻는데 이제야 재정을 알았다는 게 말이 되느냐,
사람들과 그토록 힘들어 하루 하루가 살기 힘들었던 시간들에
그대는 정녕 무엇을 하였나,
욕이 아니라 힘이, 지지와 위로가 되어줄 수는 없었는가,...
그런 감정을 더 많이 말하는 게 옳았겠데요.
아, 물론 제 모든 생각의 큰 배경에는
밥알들이 분명 '안이'했다는 데는 다른 말이 들리지 않음이 있습니다.
명예에 때를 묻혔겠습디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저는 목숨이 걸린 문제마냥 절박했습니다.
이렇게 보람 없고 부질없는 일로 만들어질 걸 왜 하자고 들었는가,
힘이 빠지고 더는 살아갈 수가 없었던 게지요.
더한 얘기야 얼굴보고 하다보면 그래도 두 해를 애들과 살아낸 공이 있는데
아주 얘기가 안 되기야 할까요.
잘 되겠지요, 다아...
허물이 깊어 일어난 일이니, 나은 그대가 더 너그럽기를.
지금같은 관계로는 물꼬에서 나아갈 힘이 제겐 없습니다,
마침 이번에 매듭잔치 끝에 바로 그 얘기를 나누고자 하였더이다.
복잡할 것 없습니다.
애를 맡기고 부모로서 할 만치 애를 쓰면 될 것이고
애를 맡길 수 없을 정도로 교사가 혹은 학교가 형편이 없다면 떠나면 되며
(이거야말로 젤 속 편하고 쉬운 길이지요)
그래도 애정으로 바꿔나가며 함께 살자 하면 바꿔나가면 될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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