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25.쇠날.얄궂은 날씨 / 월악산(1097m)

조회 수 1400 추천 수 0 2005.11.27 07:54:00

2005.11.25.쇠날.얄궂은 날씨 / 월악산(1097m)

화창했던 하늘이 눈이라도 뿌릴 듯하다
다시 환하게 맞은 월악산 아래였습니다.
가을학기 갈무리 산오름이지요.
한국의 5대 악산 가운데 하나를 오르자 한 날입니다.

자유학교 물꼬의 살림은 논두렁들이 보태주는 후원금과
물꼬생태공동체에서 지원해주는 먹을거리로 살아가지요.
달골 아이들집을 짓는데 집중하느라 힘에 부친 게 아니라
정작 나날의 살림이 요 두어 달
수입과 지출의 큰 불균형으로 버거웠던 때라
얼마 전 식구모두모임에서 아이들과 그 사정을 나누게 되었더랍니다.
그런데 이 아이들,
영동역에 나가서 그간 갈고 닦은(?) 안마 기술로 돈을 벌어야 한다는 둥
석유난로를 쓰지 않겠다는 둥
규모를 줄일 수 있는 곳은 없는가 살림을 살피데요.
삶의 그늘도 유쾌하게 만들어버리는 이들의 재간에
시름이 또 한켠 달아나는 거지요.
오늘만 해도 차를 두 대 움직이는 건 무리가 아니겠냐며
갤로퍼 한 대에 구겨 타는 걸로 의견을 모았더랍니다.
되는 일은 되고 안되는 일은 안되며 날이 가는 가고
아이들은 또 성큼성큼 자라갑니다.

올 한 해 물꼬 산오름길에 함께 하기로 한 논두렁 주훈이 삼촌은
오늘을 위해 이틀 야간숙직을 했다지요.
이번 산오름은 오르는 곳과 내려오는 길을 달리 계획하고 있어
산 아래서 차를 움직여줄 어른 하나 더욱 필요했습니다.
아이들의 움직임 하나 하나에 얼마나 많은 어른들이 늘 함께 하는 지요.
이렇게 드리운 품이 어찌 아이들에게 사랑으로 닿지 않을 수 있을까요.

달리는 차에서 준비한 지도와 간단한 안내 자료를 돌리고
함께 짚어봅니다.
"월악산국립공원에는 1000미터가 넘는 산들이 되게 많대."
그만큼의 높이가 안되면 상대 않는다는 이이들이니 신이 납니다.
신라 말 마의태자와 덕주공주가 마주보고 나라 잃은 한을 달랬다는
중원미륵리사지의 석불입상도 지나게 될 겝니다.
"저게 뭐예요?"
"으응?"
연풍 나들목을 향해 달리던 고속도로에서 아이들이 급히 물어옵니다.
"돌에 부처님 같은 게..."
"아하, 마애불?"
돌벽에 새긴 부처,
그러니까 마애불이 이번 학기 해오던 '역사'와 물려 얘깃거리를 낳습니다.
"우리가 오늘 내려오는 길에 또 다른 마애불을 볼 거야."

달이 뜨면 영봉에 걸린다 하여 '월악'이라는 곳입니다.
백두대간이 소백산을 지나 속리산으로 연결되는 그 사이에
기세 좋게 치솟은 월악산은
송계8경과 용하9곡을 좌우에 거느리고 충주 제천 단양 문경을 걸쳐있지요.
동창교 쪽에서 먹을거리를 나누고 수다 떨고 화장실을 들락거리며 채비를 마치니
어느새 11시가 지나 있습니다.
오르기 시작하니 마주한 바위봉우리가 기운을 꺾을 듯 버티고 서있었지요.
150미터에 둘레가 4킬로미터나 되는 암반덩어리에 지레 겁도 먹겠습디다.

차츰 앞과 뒤의 거리는 벌어지지요, 언제나처럼.
300미터나 올랐나요,
하늘이 물먹은 얼굴을 내밀더니 빗방울이 떨어졌습니다.
날이 푹하니 비지요, 영락없이 눈을 맞을 뻔했지요.
"여기 산양을 풀어놓았대요."
안내판을 들여다보다
그 순간부터 우리들은 산양을 찾아 산을 올랐습니다.
가파르기가 이만저만 아닌 계단이 눈앞에 서있었지요.
산오름에서 힘들다는 말을 해본 적 없던 류옥하다도
좀 쉬었다 가잔 소리를 다 합니다.
나현이랑 하다랑 걸터 앉았으니 머잖아 령이와 채규가 모습을 드러냈고
채은이도 닿았네요.
역시 도형이와 주훈이 삼촌은 한참을 뵈지 않습니다.
잠시 얼굴을 풀었던 하늘이
우박을 떨어뜨리기 시작하는데, 아직도 아직도 소식이 없습니다.
능선까지만 가 있으라고, 그런데 1시가 넘어서면 가던 길에서 멈추라고
대장을 뽑아 시계를 채워 아이들을 먼저 올려보냅니다.
산오름에서 오랜 기다림은 또 사람을 지치게 하니까요.
능선을 만나고 나면 길은 수월해지니 게까지 가서 밥을 먹자 보냅니다.
무슨 일이라도 생겼나 내려가 볼 참에야
두 사람이 보였습니다.

그제야 서둘러 앞선 아이들을 따라갑니다.
발이 시원찮은 채은이가 함께 있으니
같이 간 아이들이 잘 도울 것이라 해도 합류해얄 것 같았지요,
오늘은 산을 오르는 이들이 몇 뵈지 않으니
곁에 지나는 이들이 도움을 줄 거라는 기대도 크게 기댈 게 못되니.
길고 긴 가파른 계단을 지나니
나무 사이 사이로 지그재그길입니다.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이 한 장면을 떠올리며
신나게 걸어 올랐지요.
"옥샘이다!"
아이들이 먼저 발견하고는 능선 오름에서 다시 만난 계단을
총총이 달려 내려왔지요.
바람을 좀 피해 앉았는데,
아이들이 차린 밥상에 먼지 앉도록 또 두 사람은 감감입니다.
산을 날아다니는 산사나이 주훈이 삼촌, 욕 좀 먹고 있겠습니다.
우리가 올랐던 산들의 추억을 다 더듬었을 즈음에야
도형이가 보인 모양입니다.
아이들이 달려가 가방을 받아 올라왔지요.

배를 채우고 다시 오릅니다.
송계삼거리에 이르니 두 시가 지났네요, 2.8킬로미터 오른 건데.
바람이 심하니 등산객을 위해 마련해둔 작은 천막대피소가 고마웠지요.
도형네와는 너무 멀리 떨어진 듯하여 곧장 영봉을 향해 오르자 했습니다.
700미터를 더 가 만난 신륵사삼거리부터는
드디어 오기를 불러일으키던 암반을 오르는 일입니다.
둘레를 돌려치며 계단이 이어지고 또 이어지지요.
텅텅텅텅텅... 그러다 한숨 돌리고, 다시 텅텅텅텅텅..., 그러다 한숨 쉬고...
채은이가 너무 무리겠단 생각도 듭니다.
500미터를 더 가니 보덕암삼거리, 이제 300여미터를 남기고 있었지요.
세 패로 나뉘어 뒷 패가 보여야 앞 패가 움직이는 방식으로 나아갑니다.
너무 힘들겠다 싶은 지점,
발이 불편한 채은이에게 선택권을 넘깁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랬지요.
먼저들 올라가라 그럽디다.
나현 류옥하다 채규 령이가 이어서 정상을 밟고 잠시
채은이가 비지땀을 흘리며 모습을 드러냈지요.
"못오를 것 같앴는데
가는 데까지 가보자 하고 오니
정상에 닿았어요."
꼭 정상을 밟는다는 게 아니라 하는 데까지 하니 거기 정상이 있었다 합니다.
다만 가다보면 정상에 이르기도 하겠습니다,
무슨 대단한 도전이 아니어도.
3시가 다 되었습니다.
"최소한 3시 20분에는 내려서야 하는데..."
그만큼만 기다리기로 했는데, 정말 그 시간 도형이네가 닿았습니다.
"도형아, 애썼어. 주훈형, 고생했어요."

왔던 길로 되돌아가 차를 가지고 덕주골에서 우리를 기다리기 위해
주훈이 삼촌은 먼저 길을 내려서고
잠시 숨을 돌리며 우리도 내림길에 섰습니다.
령이와 채규가 도형이랑 발을 맞추기로 했지요.
어제, 어른이 저만 남을 때
어찌 움직일지를 의논해놓은 터였습니다.
그런데 송계삼거리에 다시 이르렀을 때
령이랑 채규가 도형이를 얼마나 닦달했을지 충분히 짐작하고도 남았지요.
령과 채규는 일찌감치 간이천막 앞에 닿았으나
책무가 있으니 바람찬 데도 들어오진 못하고
뒤에 오는 도형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이제 도형이 모습 보이니 들어와서 잠시 다리쉼을 하래도.
바람이 더 거칠어졌습니다.
도형이의 이 걸음이면 아무래도
산에서 맞을 어둠에 대비해야겠다 싶었지요.
비장해졌습니다.
어둠에서 여섯을 거느리고 있느니 한 놈을 남기는 게 낫지요.
"꼭 모두 함께 가야 한다!"
대장역을 한 녀석에게 맡기고 아이들을 먼저 보냅니다.
잘할 겝니다.
느린 아이가 있으면 달려가 가방을 받으며 오르던 지난 시간들이 있지요.
류옥하다가 남을 사람 걱정을 많이 합니다.
산에서 어둠을 만나지 않기 위해 우리가 서둘렀던 산오름의 경험들이 있지요.
그럴 때마다 산에서 맞는 위험에 대해 너무 힘주어 말했던가 봅니다.

도형이는 꾸준히 걷고 걸었습니다, 다만 더뎠지요.
앞엣 녀석들도 적이 걱정이고 뒤에 늦은 걸음으로 오는 녀석도 걱정입니다.
그런데, 산오름마다 앞서서 가느라 돌아보는 시간이 드물었던 시간에 견주어
도형이를 돌아보고 또 돌아보느라
등 뒤에서 월악산이 만들어내는 풍경을 음미할 수 있었지요.
귀한 시간이었습니다.
위험하진 않겠다는 길 즈음에선 저만큼 먼저 가서
한참을 앉아 글을 끄적이기도 하였지요.
그런데 것도 잠시입니다.
이런, 이제 2킬로미터라고 계산한 지점이 글쎄, 3킬로미터라고 적혀있습니다.
송계삼거리에 있던 팻말에 문제가 좀 있었던 게지요,
덕주사까지만 거리 계산이 들어있었던 겝니다, 덕주골까지가 아니라.
아찔했지요.
영락없이 야간산행을 한참이나 해야 하는 게지요.
"마애불까지만 어이어이 가면 게서부터는 길이 수월하니 걸을 만할 게다."
말이야 느리지만 속은 타지요.
더 서둘러보자 하지만,
저(자기)는 저대로 할 만치 하는 것일 테니 그걸 어쩐단 말인가요.
소요시간이란 게 참 재미납니다,
둔한 아이의 걸음을 계산하여 늦춰놓으면 또 그만큼 시간을 써버려서
언제나 내려오는 걸음은 더디고 맙니다.
오늘만 해도 도형의 걸음을 생각해서 넉넉히 잡았지만
웬걸요, 그 시간만큼 또 흘렀지요.

'아, 불빛!'
마애불이 있는 곳이겠습니다.
한 시름 놓지요.
그때 멀리서 파아란 불빛 하나와 함께 소리쳐 부르는 소리도 듣습니다.
주훈이 삼촌입니다.
걸음을 다시 추스르고 내려오다
그 와중에도 마애불 앞에 잠시 서 보았지요.
왈칵, 이건 또 무슨 설움이랍니까?
몇 걸음 내려 주훈이 삼촌이랑 만났습니다.
"애들은?"
덕주골 들머리에서 덕주사까지 차를 끌고 올라와 세우고
맞으러 올라오기 시작한 얼마 뒤 아이들을 만났답니다.
아직 어둠 깊지 않으니 아이들끼리 차 열쇠를 주어 보냈다데요.
다들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더랍니다.
덕주사까지도 1.5킬로미터가 아직 남았지요.
길은 널찍하고 평탄합니다.
아이들이랑 얼마나 도란거리며 걸었을 지요.
아쉬웠습니다.
어둠에 익은 눈으로 계속 걸어보려는데
(감각을 키우기에 좋기도 한 시간이지요),
뒤에서 걱정 많은 주훈이 삼촌이 곁에 바로 계곡이라며 잔소리가 많습니다.
"옥샘!"
멀리서 아이들이 불빛을 보고 달려왔습니다.
시계는 6시를 지나고 있었지요.
나현이랑 채은이가 울음을 터뜨립니다,
류옥하다도 울먹입니다.
"하다는요, 추운데 차에도 안들어오고 옥샘 기다렸어요."
10킬로미터 가까운 산길이 그리 끝이 났답니다.
"도형이 형아 땜에 엄마가..."
류옥하다가 도형을 노려보며 화를 냈습니다.
그럴 때 미안해, 하면 한풀 꺾이게 될 것을
도형이는 도형이 대로 최선을 다했으니 서운했을 테지요.
"야, 너..."
둘이 한바탕 다투고 함께 울음보를 터뜨렸습니다.
"엄마, 정말 걱정 많이 했어."
엄마 품에 들며 하다는 오랫동안 대성통곡을 했더라지요.
채은이를 사이에 두고 차에 타서도 한참을 실갱이를 한 모양입니다,
바로 뒷자석에서 일어난 일인데도 눈치를 못 챌 만치 음성을 낮추어.
"이제 그만 하지?"
채은이가 야단치는 소리 들렸지요.
"김밥이 안 넘어 가."
남은 김밥으로 출출함들을 달래는데,
그마저 사양하며 하다는 한참을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래, 마애불은 봤어?"
"아니요, 어두워질까 봐 막 내려왔어요."
"나는 봤다!"
그걸 보자고 이 길을 잡은 건데,
도형이에게 어둡더라도 잠시 삐져 나간 길을 따라 올라 기어이 보여주었지요.
그런데 아이들은 서둘러 내려오느라 지나친 겁니다.
아주 몰매 맞을 뻔 했겠지요.
말하자면 늦은 주제에 네가 그걸 자랑삼아 말할 수 있느냐 하는 거겠지요.

우리는 그렇게 또 한 산을 넘었습니다.
꼭대기를 향한 도전은 도전대로 의미가 있겠고
이르지 못하면 그것대로 또한 뜻이 있을 테지요.
오늘 우리에게 월악산 오름이 남긴 건 무엇일까요...
날이 또 크게 도왔습니다.
빗속이라면, 눈속이라면, 어둔 산길이 더 거칠었다마다요.
바람도 잦아들고 다만 어둠에서 걷기만 하면 되었지요.

아이들도 주훈이 삼촌도 하늘도 공동체식구들도 밥알들도
모다 고마운 또 하루가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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