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1.29.불날 / '플로렌스'인의 목소리

조회 수 1286 추천 수 0 2005.12.01 22:36:00

2005.11.29.불날 / '플로렌스'인의 목소리

춘천나들이 다녀왔습니다.
"나 채규형네 가보면 안돼?"
류옥하다가 채은이네 가고프다고 달포 가까이 노래 불렀지요.
그렇게 다투면서도 사는 게 궁금턴 모양입니다.
푸진 저녁 밥상이 있는 하룻밤을 묵고
(마음 써서 김주묵 아빠 사들고 오신 것도 어찌나 고맙던지요)
늦도록 잔 뒤 놀고 있던 티코에 채규랑 채은이 하다를 태워
소양강 뱃길타고 거슬러 올라 오봉산이 품은 청평사를 다녀왔습니다.
인형극장과 화목원을 가자고 나온 걸음이
소양댐 팻말을 보고 길을 꺾었던 거지요.
"눈이다!"
"첫눈이네."
눈인가 싶게 내리더니 배를 타고 돌아올 제 눈발은 굵어지고 있었습니다.

펑펑 쏟아지는 첫눈을 맞으며 4시에 채은이네 아파트를 나섰는데,
서글픕디다, 낯선 도시에서 떠나는 기차 뒤로 누구도 없어 그랬을까요.
택시를 타고 남춘천역,
청량리행 기차에 올랐다가 다시 전철을 타고 서울역으로 이동,
이어 영동행 기차를 타고 내려와 택시로 황간역에 이르렀지요.
참, 밤 10시도 넘은 영동역에서
영동으로 이사 나와 택시운전 하는 정근이네 아빠를 만났습니다.
삐질삐질 눈물이 나오데요.
같이 보낸 고생한 시간들이 있을 것이니...
"정근이네 아빠랑 지용이네 아빠는 꼭 한 번 봤음 싶더니..."
봐서 좋았고, 잘 지내고 있어 기뻤습니다.
잘 자리 잡고 사니, 그저 고마웠지요.
아이들도 건강하답니다.
한사코 '태운 보람 없다'며 안받는다는 걸,
태워주신 거 맞다, 그런데 이러면 다음에 또 어찌 타겠냐,
애들 맛난 것 사주라 택시비만큼을 손에 쥐어드렸습니다.
받아주어 고마웠지요.
한 번 오라 했고, 한 번 가마 합디다.
우리가 뭘 서로 주지 못해도, 멀리서도 잘 사는 게 돕는 거 아닐 지요.
그저 고마웠습니다.
"이제 피곤해. 엄마를 지켜주느라..."
눈 뎅그랗게 뜨고 7시간을 꼬박 오던 하다는
비로소 갤로퍼를 타서야 드러누웠지요.
집에 돌아오니 자정이 다 돼가는 시간,
바로 바로 이어서 갈아탄 길인데도 참말 멉디다.

춘천에서의 하룻밤,
전해들은 오만 때만 얘기는
떠난 이들에 대해 그나마 남아있던 살가움을 후련히 날려주었지요.
이제 더는 속상할 일이 없을 만치 전해 들었고,
충분했으니 앞으로는 고만 들어도 되겠습니다,
얘기 하는 가운데도 들을 마음이 많지 않았습니다만.
지난 봄학기부터 이게 무슨 짓인지, 정말이지 이제 좀 고만 했음 좋겠습디다.
다만 우리 존재들이 측은할 뿐이지요.
제 허물이 깊었으며.
그게 갈등의 까닭이라면 문제 해결은 더 쉽지요.
자신을 바꾸는 것만큼 쉬운 건 없는 까닭입니다.
늘 상대를 바꾸겠다는 길이 험하지요.
궁극적으로 '내 변화가 네 변화를 가져올' 것이니...
꼬랑지가 길었던 '9월'이 모퉁이를 돌아 비로소 더는 보이지 않는 밤이었습니다.
길기도 하였지요.
2005학년도도 그리 가뿐히 보낼 수 있을 것이며
2006학년도의 아침은 틀림없이 새로운 날일 겝니다.
아, 물론 새로운 문제들이 우리를 맞을 테지요,
그러나 그처럼 처참하진 않을 수 있겠지요.
죽은 것들이 산 것을 붙들고 있었다던가요.
학교와 학부모의 관계에 대해 보다 명징함을 얻은 귀한 시간이었더이다.
지난 봄학기가 조금 재미가 떨어지긴 했으나
그간 물꼬에서 살아오며 열심히 했고 충분히 즐거웠습니다.
누구보다 아이들의 가슴이 다사로왔으리라 믿습니다.
남는 장사한 게지요.
맑스가 <자본론>의 서문에서 단테의 <신곡> 연옥편의 한 구절을 그리 옮겼던가요.
"너 자신의 길을 가라, 누가 뭐라든."
지옥의 문 앞에서 그리 소리쳤을 플로렌스 인을 생각했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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