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6.나무날.아이들 소리 같은 가을 하늘

조회 수 1325 추천 수 0 2005.10.08 00:59:00

2005.10.6.나무날.아이들 소리 같은 가을 하늘

아이들의 소리는 가을 하늘입니다.
파란 물 뚝뚝 떨어지겠는 청아한 하늘입니다.

'불이랑'시간, 옛 얘기 하나로 시작합니다,
돌을 구워 떡이라며 내밀어 위기를 벗어난 지혜.
떡 만들러 갔습니다,
아니 떡 같은 손난로 만들러 갔지요.
호도도 열댓 알씩 깨먹고 그 껍질은 불쏘시개로 들고
고래방 뒤란 우물곁에 갑니다.
만일을 위해 물 곁에서 하자데요.
"돌후라이팬 있는데..."
령이가 보물을 들고 옵니다, 이따따만한 돌판입니다, 어른도 들기 싶잖을.
돌을 쌓아 아궁이를 만드는 동안 아이들은 나무를 안아 나릅니다.
제보다 젯밥이라고 얇게 쓴 감자를 돌판에 올려놓고 버터도 내왔지요.
"깨져요."
한참 지핀 불에 세상에, 돌이 좌악작 갈라집니다.
덕분에 우리는 불을 견디는 돌에 대해 공부할 수 있었지요.
가마솥 솥뚜껑을 들고 옵니다, 아이들이 살림살이를 다 알지요.
"이건 정말 칩스예요."
맛나게도 먹은 뒤 벌건 장작 위로 난로용 돌을 넣습니다.
"저거요..."
그을음이 생겼지요,
이제 어떤 조건이 손난로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 생각을 모았더랍니다.
물론 들어와서 글로 갈무리했습니다.
공부 좀 한다고 요새는
12시 30분이(12시부터 점심 때건지기) 넘어서도 배움방에 아이들이 앉아있습니다.

수영 갑니다.
과거 보러 가던 선비들 추풍낙엽처럼 떨어질세라
돌아서 넘었다는 괘방령을 넘어가지요.
불이야기가 들어간 새 노래도 하나 익히고
노래가 노래를 물고 날아오릅니다.
거울로 아이들 표정을 흘끔흘끔 보지요.
바람을 한껏 받으며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노래를 곱게 흥얼거리고도 있고
도란거리거나 멀리 산자락을 보기도 합니다.
저 환한 얼굴들 좀 보셔요,
그들이 고스란히 가을입디다.

우리 도형이 형님,
집에 다녀오면(방학) 그 여파가 젤 긴 그지요,
어제 그랑 심각하게 마주했더이다,
남자 동생들 땜에 자주 속상해하는 그거든요.
샘들하고도 얘기를 했다, 이제 그 다툼에 나서지 않으려 한다,
돕지 않겠다는 거다, 홀로 맞서보아라,
물론 물리적인 폭력이 나온다면 말릴 거다만.
그런 얘기들이었습니다.
그런 뒤 도형이는 나름대로 어제 가을 볕 아래서 결의에 차 있었지요.
오늘,
도형이는 집에 두고 왔다는 수영복을 여기서 찾았습니다.
"그런데요, 이거 찾아도 소용없어요, 작아요."
"그걸 왜 이제 말하니?"
작은 걸 왜 여태 찾았느냐 말입니다,
사든가 다른 대안을 생각해야지, 두 주나 수영복을 빌려 입으면서.
이렇게 되면 그 다음 반응은 화를 내거나 눈물이 핑 돌거나 그런 식이기 마련이지요.
어, 그런데, 우리의 도형 선수,
"죄송합니다. 다음엔 잘 챙길 게요."
이러는 겁니다.
그만 제가 눈물 핑 돌았지요.
'그래, 그렇게 하는 거야...'

어른들은 볕 좋은 가을 날,
호두물을 옷감에 들이고, 된장집 뒤꼍 고구마를 캐고, 포도밭을 살폈지요.

식구한데모임이 있는 날입니다.
"밖에 나가면 하나에 얼마씩 돈으로 사고 팔 텐데..."
젊은 할아버지는 감 얘기를 하십니다.
"입에 들어가는 건데, 아이들이 없고 사람들이 없어 그냥 물러터지고 밟히고..."
먹을 것이 지천인 자연은 무엇이고,
굶어 죽어가는 이들이 많은 건 또 무어란 말인가요?
"정리가 안돼 있으면 물건이 어딨나 모르니까 쓸 수 있을 때 못쓰기도 하고..."
정리하는 것도 연습이 있어야 한다는 희정샘 얘기도 듣지요.
"내년 피살이 안하려고 씨 떨어지기 전 뽑을려고 논에 갔는데,
벌써 씨가 많이 떨어져 있었어요."
다 때가 있는 법이니 때를 놓치면 힘들다고
나락 사이 피를 뽑고 돌아와 열택샘이 그랬습니다.
사람이 헤어지는 것도 그러하겠습니다.
만나 아름다이 서로를 살리며 같이 오래 잘 산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으나
너무 늦지 않게 헤어지는 것도 슬기일지 모르겠다 싶데요.
더러들 지독한 지옥을 산 뒤에야 헤어지다니요...

채규 이야기로도 논의가 길었네요.
채은이를 한 주쯤 동생 없이 누릴 수 있게 해주면 어떨까가 출발이었는데,
우리 채규의 심술이 장난이나 가벼운 짜증을 넘어
뭔가 다듬어줘야 할 품성 문제가 아닌가 의심이 든다는데 모두 동의를 했습니다.
아이들은 낮에 일찌감히 집에서 한 주 혼자 보내게 하자는데 의견을 통일했고
[처음엔 아무거나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좋겠다고들 하다가
아니라고, 아마 심심해서 학교 오고파 죽을 거라고 하데요,
정말 독방(영화 '코러스'의 독방 말입니다)일 거라고],
어른들은 어떡하든지 구제하려 애썼지만
자기가 의지를 갖고 얼토당토 않은 심술과 괴롭힘이 이는 마음을
한 번 버려보겠다고 하지 않으니 난감해하며 끝이 났지요.
그런데 젊은 할아버지(그 따듯하고 넉넉하신 어른)도 찬성표를 던졌다나요, 어쨌다나요.
"그러니 평소에 덕을 쌓아야지, 봐, 니가 어려울 때 아무도 안도와주잖아."
열택샘이 슬쩍 놀리기도 합디다.
주말에 춘천댁이 온다 하니 같이 의논해 보려지요.
농 섞인 엄포로 시작했으나 좋은 계기가 될 수 있지도 않을 지요,
채규가 정황을 명확하게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그 왜, 아이들이 자기가 왜 야단맞는지 모르고 혼날 때도 있잖아요,
그러면 그 야단, 잔소리가 되고 마는 거지요.
우리의 채규 선수는 남을 수 있을까요, 아님 한 주 정학(?)을 당하고 마는 걸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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