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10.14.쇠날. 3주째 흐린 쇠날이랍디다, 애들이

조회 수 1236 추천 수 0 2005.10.17 00:34:00

2005.10.14.쇠날. 3주째 흐린 쇠날이랍디다, 애들이

청출어람을 들먹이며 시작하는 아침입니다.
저를 가르쳐준 이들을 이기는 장기판이랍니다,
령이가 도형이를 이기고 채규가 령이를 이기고.

홍사숙샘의 특강이 있었습니다.
들깨 한 줄기를 들고 와 놓으며
우리 모두를 하나하나 안아 주셨습니다.
이렇게 많은 별을 본 게 어릴 적 밤하늘을 바라본 뒤 얼마만인지 모른다며
간 밤 대해리의 밤을 보며 이곳 아이들이 부러웠노라고 말씀을 시작하셨지요.
"이것 한 꼬타리에 안에 몇 알의 들깨가 들었을까요?"
그러시며 들깨를 들자 익을 대로 익은 그치는 마구 방바닥으로 뛰어내렸겠지요.
채규가 얼른 달려 나갑니다.
침 묻혀 검지로 열심히 주워 먹는 거지요.
류옥하다도 나가고 령이도 나가고...
한 꼬타리씩 따 들고 헤아리니 대개 네 개가 들었습니다.
"이거 다 다시 들깨가 된다면 이 세상이 온통 들깨밭이겠지요?"
그렇다면 도대체 자손을 이어가는 일 말고 무엇 하러 들깨는
그토록 많은 씨앗을 만드는 걸까요?
다른 존재에게 베풀기 위해 그렇지 않겠는가는 말씀이십니다.
"우리도 벌어서 하나만 남기고 다 줄 수 있겠어요?"
들깨의 뿌리를 통해 우리의 부모를 연결하고
꽃이름들을 통해 우리가 가진 이름자를 되짚어보고
(야, 우리 애새끼들, 예 살았다고 들꽃 뫼꽃을 어찌 그리 많이도 아던 지요)
마지막으로 씨앗도 되지 못하고 베풀지도 못한 채
땅에 떨어져 그만 죽어버릴 운명에 처한 마당의 볍씨를 구출하러나갔더랍니다.
어쩜 지리할 법도 한 이야기를 잘 듣고 있는 아이들한테 감탄하고
사숙샘이 전하고자 한 말씀에 감동하고...
어떻게 불씨를 만들 수 있는가를 조사하고 따지고
우리가 다음 시간에 할 불 피는 법을 그림으로 그리며 '불이랑'을 할 때도
샘이 주신 말씀이 떨림을 만들었더이다.

쇠날 오후 공부는 시간이 넘칩니다.
오늘은 30분을 당겨 점심 때건지기를 잡아먹고 1시30분에 공부를 시작합니다.
모자를 만들어 쓰고 연극놀이부터 했지요.
령이는 친구를 잃고 그를 위해 장례식을 치뤘고
나현이는 밀짚모자를 쓰고 벼를 벴으며
류옥하다는 썬캡이란 걸 쓰고 바닷가에 놀러를 갔는가 하면
도형이는 무속인 흉내를 내고...
채은이는 꽃모자를 어찌나 정성스레 만들었던지,
채규는 정말 듣도 보도 못한 모자를 내밀었지요.
요새 빛그림 시간에 보는 한 만화영화에서
마침 아이들이 당나귀에게 만들어준 모자가 빚어낸 사건이 나오는데,
이런 절묘한 연결들이 주는 공부들이 기분 좋답니다.

손말 시간은 오늘부터 영상자료도 함께 봅니다.
품앗이 선진이모랑 태석삼촌이 자료를 구하는데 애를 써주었지요.
말이 어려운 게 좀 허물이다 싶긴 했으나 큰 도움이다마다요.
지화로 이미 익혔던 홀소리 닿소리를 복습 잘했습니다.
"그래도 사람이 하는 게 훨씬 좋아요."
아무렴 아니 그렇겠는 지요.

"Will you be my friend?"
넘의 나라 말도 하지요.
몸으로 손으로 낱말도 익히고
둘씩 짝을 지어 역할놀이도 합니다.
분명 어려운데 '할만 한' 것도 넘어 재밌다니 고맙고 즐겁지요.

농사짓는 집에서 비 오는 날이야 한가롭지요.
농사부랑 가마솥방도 덕분에 쉬엄쉬엄 하였더랍니다.
홍사숙샘은 점심을 드신 뒤 곧 또 오마며 떠나셨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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