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 10. 15-6. 밥알모임

조회 수 1390 추천 수 0 2005.10.18 02:19:00

2005. 10. 15-6. 밥알모임

며칠 전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사진집에 실린,
마치 일본의 하이쿠같은 시편 하나를 들었습니다.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체리향기>며의 감독 말입니다.
"내 죄를 용서해주기를
잊어주기를
그러나 나도 다 잊을 만큼
깨끗이는 말고."

달마다 둘째주에 있던 밥알모임이 셋째주로 날을 옮겨와 했습니다.
자리도 옮겨 숨꼬방에서 했지요.
쌀자루 기대고 앉았습니다.
고구마자루며 호박이며 얼면 아니 되는 것들 들어찬,
사랑방 구실을 하던 달빛 아래의 외가의 아래채가 생각키데요.
다사로운 밤이었습니다.

어느 때보다 긴 명상을 했고, 늘처럼 거울보기부터 하지요.
보지 않았던 시간들 속에 각자들 어이 살고 무슨 생각들을 하나 들여다보는 시간입니다.
먼저 삼풍백화점 무너졌던 이야기부터 꺼냈습니다.
502명이 죽고 1000여명이 다친 한 해 뒤 그 현장에서 추모제를 지낼 때
많은 이들이 왜 하필 어두운 것들을 굳이 아이들과 들춰내느냐 부정적이었지요.
그런데 바로 그런 지점이 물꼬를 설명하는 한 면이기도 하겠다 했습니다.
5월 하늘 아이들이 날리는 오색풍선으로만 우리 생이 채워지더냐,
밝은 길이면 더할 나위 없겠으나 어두운 길도 있더라,
문제는 우리 아이들이 생의 무수한 질감들을 다 보고서도
아름다운 길을 만들며 가는,
혹은 더러 바람직하지 않다는 길을 한참 가서도 씩씩하게 되돌아오는 힘을
물꼬는 기르고자 한다 했지요.
"(심란한 9월을 보내고)시간이 갈수록 정리가 안되더니 학교 와서 아이들 지내는 것 보니까 안정돼 있고, 학교 분위기도 그렇고, 오히려 지내면서 정리가 되었어요."
분위기란 것에 얼마나 휩쓸리기 쉬운가,
내가 중심을 잘 가지고 가야겠구나, 그간의 심란함을 누구는 그리 털었습니다.
"동료들이 앉아 하는 아이들 얘기 들으며 얼마나 어른 중심으로 보고들 있는가를 생각했어요. 애들은 정말 쿨한 게 맞아..."
그러지 못하는 어른에 대해,
그리고 여태 내 중심으로 보던 걸 남의 눈으로 보는 계기가 된
지난 두어 달을 고백하는 이도 있고,
"부모에게 휘둘리지 않겠다(우리는 누구의 기준으로 사는 게 아니다)는 학교의 말에 동의하고...,(지난 두어 달)일을 풀어내고 하는 것 보며, 흘러가는 것 보며, 이렇게 밀고 가면 된다 생각했습니다."
그리 지지해주는 이도 있었지요.
"내 아이에게 좋은 길이면 간다!"
그간 마음이 시끄럽지 않은 게 아니었을 걸,
가뿐하게 나름의 원칙으로 나아간다고도 했습니다.
내가 원치 않고 내 구미가 아닐지라도 내 아이에게 좋은 길이라 판단되면
기꺼이 안고 가겠다는 말씀 아니셨을까,
그래서 당신 기준을 '내'가 아니라 '아이'로 놓고 학교를 본다는 말씀 아니셨을 지요.
작년 가마에 18만원하던 쌀이 현재 14만, 전라도 어데는 13만,
정부수매가 없어지고 정말 쌀대란이다,
이제 관행농에서 50 이하는 쌀농사를 놓지 않을까 걱정도 합니다.
"(뜨거운 9월을 보내고) 들어와야 할 아이들을 어찌 받아야 하나, 실은 학부모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보고 만나야 하는가를 고민하고 있습니다."
학교 식구 하나는 2006학년도를 준비하는 마음을 내놓았네요.

다음은 우리 아이들 이야기가 한창이었지요.
누구에게 어떤 걸 집중하고 있는가, 그걸 어떻게 가지고 가는가,
요새 무슨 일들이 아이에게 일어났는가...
그래요, 우리가 뭐하러 함께 앉았느냔 말입니다.
아이들을 통해 우리를 읽고 우리 삶을 돌아보았지요.

"학교가 아니라 교사에게 부모는 무엇을 바라는 걸까 묻고 싶었습니다."
소박했지요, 더 바랄 게 없다는 이도 있습니다.
이것을 기억하자 했습니다.
이게 되면 되지 더 바라는 건 과한 거 아니겠는가,
흔들릴 때 지금 이 말들을 기록해두고 읽자 하였습니다.
공동체의 장점으로 꼽는 게 여럿 있겠으나
'내' 덕이 모자라면 '그'가 있는 거 아니더뇨,
교사에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말라 당부하였습니다.
낭만적 기대 내려놓기!

무상교육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내리기도 하였습니다.
현실적으로 궁한 물꼬 살림에서 흔히 말하는 현장학습이라고 하는 범주의,
현금 체계 안에서 이뤄지는 일들은 부모와 학교가 어떻게 해야는가 같은 문제들.
2006학년도 입학 설명회(학교 안내하는 날) 준비도 하고
계자 준비도 하고, 김장 계획도 짜는 사이
거진 이야기는 막바지입니다.
"현실감있는 얘기들이 좋았습니다."
"구체적으로 학교 얘기, 우리 얘기 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젤 유쾌하고 실속 있는 밥알 모임이었어요."
왜 우리는 진즉에 이리 웃을 수 없었을까요...
마치고 가마솥방을 그냥 스칠 수 없어 들렀다들 나오니
시계는 4시 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곧 첫닭 울겠지요.

이튿날,
김준호아빠 생신이라고 잔칫상이 있었지요.
산국이 함께 놓였습니다, 좋은 가을날입니다.
다시 축하드립니다!
무슨 컨베이어벨트처럼 연탄을 올리는데,
령이도 도형이도 나현이도 줄을 섰는데,
같이 호흡해온 가락들이 무섭습디다.
금새 다했다데요.
볕이 저토록 고운 빛이었더이까, 가을이 천지를 참말 바삐도 댕깁니다.
어른 몇과 아이 몇은 차를 덖겠다고 산국을 따러들 다녀오고
류옥하다 선수는 삽자루를 메고 흙투성이거나 딴에는 안다고 창욱이를 돌보고(?)...
오후엔 볏단을 세우러들 갔습니다.
작년에는 꼬박 한 주를 아이 열을 다 끌고 했다는데
반나절에 일이 끝났답니다.

해질 녘 갈무리를 합니다.
"잔인하게도 저는 9월의 소란이 끝났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남은 우리들이 싸늘하게 나눠야할 일이 적지 않습니다."
밥알 1기가 가지는 태생적 한계를
(귀농이나 공동체 식구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여전히 삶터는 학교로부터 먼 곳인)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도 무겁게 짚었습니다.
"마음에 들지 않아 나가는 거야말로 가장 쉬운 길입니다.
같이(또 하나의 공동체 아니었나요) 어찌 할까 고뇌하고 해결해가는 게 정말 어렵지요.
우리 '함께' 문제를 풀어갑시다, 사랑합니다!"

그리고 못다한 한 마디.
어려운 시간 힘이 되는 서로가 되면 좋겠습니다.
같은 모임을 꾸렸던 이들을 잃고, 그것도 밥알이라는 같은 처지에 서서,
누구보다 마음 복잡했을 것을
더 위로가 되지 못해 죄송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따뜻할 수 없어 안타깝습니다.
잘 살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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