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불날 비 얼굴만 봬주고

조회 수 1464 추천 수 0 2005.09.24 12:23:00

9월 13일 불날 비 얼굴만 봬주고

나현이가 꿈을 꾸었습니다, 교실 반만한 돼지 꿈.
"팔아라!"
그 꿈 학교가 샀습니다요.

아이들이 까준 생밤을 먹었습니다.
목이 메였지요.
위로고 사랑입니다.
어떤 선물에 비길까요...
("옥샘 가질래요?"
채규는 그가 주워 모은 밤 50개를 상자에 보물처럼 안고 다니다 내밀었지요.)

간장집 앞 박꽃이 곱기도 합니다.
아침에 그리러들 갔지요, 꽃이야 멀건 대낮에 오무려져 있지만.
이 풍성한 아이들의 어린 날 풍경들을 놓치지 않게 하고픕니다.

지난 학기에 이어 아침마다 읽어주던 <핵전쟁->이 끝을 맺었습니다.
목소리가 떨렸지요.
아이들에게 권하는 책을 세권만 꼽으래도 들어갈 책입니다.
물꼬이야기를 처음 담았던 '글터소식' 첫 호의 여는 글 마지막에 다루었던 책이기도 하지요.
물꼬가 생각하는 '배움'이 그랑 다르지 않겠습니다.
"아이들에게는 읽고 쓰기와 산수보다도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고 나는 확신하고 있다.
폭력이나 도둑질, 싸움이 없는 사회를 만드는 것, 서로를 소중히 여기고 어려울 때에는 서
로 도우며, 무슨 일이 일어나면 서로 협력해서 해결하고, 그리고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것.
우리는 평화로운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설령 이 세상이 별로 길게는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변함없이 공부는 계속됩니다.
숨꼬방이며 즙방에선 포도일이 계속되고
달골에서 공사도 계속됩니다.
밥상머리공연도 하였지요.
그리고 '이'축제도 계속됩니다.
글쎄 무슨 '이'일까요?
게다 축제는 또 뭐일까요?

큰 일 하나 벌어졌댔지요.
그런데 아이들이 넷이나 떠나는 난리통에
그만 쑤욱 들어가버리고 말았던 겝니다.
어제였지요.
아이들 귀를 닦아주는 아침이었습니다.
나현이가 다녀가고 채규가 다녀가고 지용이가 다녀가고 예린이가 다녀가고
그리고 채은이가 무릎을 베고 누웠습니다.
"어!"
세상에, 귀를 보려고 머리를 들치는데,
서캐가 와르르 쏟아질 듯 대롱대롱 하고 있었습니다.
어마어마했지요.
서캐와 이미 이로 태어났을 죽은 서캐알까지,
적어도 2-3주 이상은 진행된 걸로 보입디다.
가려워도 한참 가려웠을 것을 왜 이적지 몰랐던 걸까요?
그런데 이의 등장조차 축제가 되는 아이들 세상이더랍니다.
아, 아이들의 유쾌함이라니...
갑자기 하던 공부가 중단되고
아이들은 이에 관한 자료를 찾아 떠나고
저는 목이 빠져라 아이들 머리를 헤집고...
"여기도 있어요."
최근에도 어느 교실에서 아이들 사이에 이가 나왔다는 기사가 실린
잡지도 들고 오고 조사한 자료들을 공유도 했더랍니다.
성충이 되는데 7일 정도 걸린다 하니
채은이 머리가 이럴 지경이면 줄잡아 두 주 이상은 된 거다,
이 한 마리가 알을 세 개에서 다섯 개는 하루에 낳는다 하니
그로보아서도 한 달은 족히 됐겠다,
그렇다면 방학 때 일일 텐데 어디 가서 옮아온 거냐,
물꼬 오기 전에 미장원에서 머리도 잘랐다면서 몰랐더냐,
엄마는 모르냐,
모두 추적을 하고 있었지요.
머릿니며 몸니가 다른 것도 알게 되고
결국 잡아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배움방이 끝나고 책방에 몰려들어 베개를 베고 누웠고
은순샘과 정미혜엄마가 제 바통을 이어 애들 머리카락 사이를 비집었지요.
우와, 이도 몇 마리나 나왔답니다,
머리 긴 녀석들 가운데는 혜연이 빼고 다 있었는데
(야, 얼마나 더러우면 이도 안가겠냐 혜연이가 되레 놀림도 받았댔지요),
채은이를 빼고는 겨우 이 두어 마리에 서캐 열 안팎이라니
방학하고 돌아와 딱 한 주일간 함께 지낸 흔적이겠습니다.
축젭니다, 축제, 이 축제!

점심에 손님 셋 왔습니다.
94년 국립극장에서 연극을 함께 했던 친구가
그의 동료 둘을 데리고 손 보태주러 들린 참입니다.
포도밭에 나가 어둡도록 일하고 돌아갔지요.
귀한 걸음, 고맙습니다.

그리고 저녁,
모든 식구들이 고래방 객석과 스크린을 내리고
크리스토프 바르티에의 <코러스>를 보았습니다.
위로가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네요.
'죽은 시인의 사회' '굿 윌 헌팅' '꽃 피는 봄이 오면'
'뮤직 오브 하트' '홀랜드 오피스'와 궤적을 같이 하는,
그러나 낡지 않은 영화였습니다,
음악이 아이들을, 세상을 구원한다?
'아이들을 지키는 선생일 수 있게 해주소서.'
"저 선생님도 엄마처럼 아이들을 가르치고 싶어 하지?"
곁에 앉은 류옥하다가 속삭입니다.
"감동적이네."
자막이 오를 때 기지개를 켜며 그가 한 말이지요.
낼 아침 아이들은 그 감동을 무어라 공책에 옮길 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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