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5-6일, 지리산 천왕봉 1915m - 둘

조회 수 1394 추천 수 0 2005.09.24 12:30:00

9월 15-6일, 지리산 천왕봉 1915m - 둘

"자..."
새벽 네 시, 아이들을 깨웁니다.
이미 사람들이 부시럭거리고 있었지요.
가방은 두고 아침 요깃거리만 챙겨서들 장터목산장 문을 나섭니다.
이미 길을 먼저 잡은 사람들이 제법입니다.
불을 중심으로 네 덩어리로 나뉘어 천왕봉을 향해 올랐지요.
용케도 아이들은 으레 가는 거려니 하고 오릅니다.
더딘 도형이도, 툴툴이 채규조차도 말입니다.
어느새 아이들은 굳이 우리 어른들 아니어도
낯선 사람들 틈새에서 저마다 오르고 있습디다.
그런 아이들에게 어른들은 또 물이며도 아끼지 않았지요.
어느 틈에 제석봉도 지나고
통천문에 이를 즈음엔 동이 트고 있습니다.
"여기요, 여기."
먼저 간 녀석들이 소란입니다,
거긴 줄 다 아는데.
법계사 쪽에서 오른 이들도 있으니 사람 없다 해도 오십은 넘지 싶습디다.
입술을 달달거리는 삼십여 분 동안,
해가 오르려고 만들어내는 하늘 기운을 보는 동안,
오직 한 곳을 응시하며 우리들은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요.
녹록찮은 삶에서 이 새벽이 우리를 또 얼마나 살려줄지요,
눈시울이 붉어집디다.
아이들 얼굴 하나 하나를 오래 건너다보았지요.
"해다!"
예, 이미 해는 둥실 올랐데요.
누군가 우리들 틈에 낀, 3대에 걸쳐 적선한 이가 있어 그 덕을 본 게지요.
몇 차례 오르고도 보지 못하였다는 천왕봉 일출을 보았더랍니다.
우리는 그 산꼭대기에서 목 터져라 노래를 불렀지요.
그제야 사방팔방 둘러보았습니다.
저어기 여인의 둔부 같은 반야봉이며 그 너머 노고단이며...
한껏 감흥들을 나누고 장터목으로 돌아와 아침을 먹었지요.
다시 내림길,
령이랑 채규는 열택샘이랑 앞서서 두 시간도 채 못되어 백무동에 닿았다지요.
나머지들은 노닥거리며 앞서거니 뒤서거니 참샘이 이르렀고
앉았으니 도형이랑 주훈이 삼촌 젊은 할아버지도 금새 내려오셨데요.
산 아래 왔더니 령이들은 벌써 한숨 자 두었습디다.
맛난 집에서 밥 한끼 잘 쟁이고
달려달려 대해리 들어오니 여섯 시가 좀 못되었데요,
한가위 쇠러 갈 어른들과 만나기로 한.
우르르 달려가 또 무언가로 소란을 떠는,
지리산 오르고 온 것들 맞나싶게 힘 펄펄 넘치는 우리 새끼들...

...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거든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 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시려 거든
불일폭포의 물 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 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 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 피아산방의 시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가운데서

그런 날을 기다립니다.
산청 시천의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오르고
장터목을 뒤로 얼레지 지천인 연하봉 지나 촛대봉에 섰다가
수로처럼 깊게 패인 길 따라 세석산장과 세석 평원을 지나 영신봉 넘어,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라는 바로 거기를 거닌 뒤
노고단 거쳐 성삼재로 그리고 정령치로 고기리로
그렇게 더듬어 아이들과 백두대간 종주에 오를 날!


식구들이 지리산에 올랐을 때도
공동체에선 은순샘 희정샘 상범샘 포도, 포도즙 작업을 계속했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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