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9.27.불날. 맑다고 하긴 시원찮은

조회 수 1115 추천 수 0 2005.09.29 00:10:00

2005.9.27.불날. 맑다고 하긴 시원찮은

하이고, 이제 좀 뭐가 돌아간다 싶은 날들입니다.
제대로 시작하는 아침들이란 말이지요.
도대체 지난 반년을 어이 보냈길래, 쯧쯧쯧...
7시 30분을 넘기지 않고 열택샘이 아이들을 학교로 좇아내려(?) 보내면,
간장집을 지나며 아직 이불 못 갠 류옥하다를 불러 일으켜
(하다는 이제 2학년 준비 해얀다며 늦잠 쫓기 하고 있거든요),
마치 어린 날 학교 가며 동무 집 돌고 돌아 짝을 이뤄가듯이,
큰 마당으로 쏟아져 들어오지요.
요가를 밀어내고 아침마다 국선도로 몸을 깨우는 요즘에,
오늘 아침부터는 명상을 끝낸 뒤 큰 마당 뜀박질도 보탰습니다,
지리산에서 결의한대로.
우리 도형이를 위한 모두의 기꺼운 선택이었지요.
찐 살이 죄라거나 추함이 아니라
다만, 둔하니까, 만사 귀찮아지니까,
그 살을 함께 해결키로 한 겝니다.

이번 학기는 손풀기가 좀 달라졌답니다.
자세히 들여다보며 그리던 그림을, 세밀화라고 하던가요, 정밀화?,
이제 전체 덩어리로 바라보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이번 학기의 새로운 과목 '역사'가 들어있는 불날이네요.
아주 옛날에는 사람이 어떻게 살았을까 묻습니다.
넘치는 그림이지요,
우리는 그림을 그리면서 역사 공부를 시작했답니다.
검도도 하고 한국화도 하는 불날, 오늘도 이어졌지요.

아이들은 호두를 줍다가 고구마 밭에 나갔습니다.
열택샘이 낫으로 자른 순을 저들은 꺾고
그 줄기로 채찍놀이도 잠시 하다가
감나무 아래 평상에 모여 순 껍질을 벗겼지요.
저녁답엔 희정샘이 잘라놓은 토란대에서 잎을 떼 내
빨래바구니처럼 빨래를 담아오기도 하고
도시락 놀이도 하고
우산놀이도 하고...

조릿대집 윗채 구들공사도 했지요,
열택샘과 젊은 할아버지 겨울이 걱정이더니.
천덕의 보건소장님댁 황토를 구해 와서
남자 식구들이 매달려 뜯고 바르고 하였더이다.
구경하던 우리 아이들한테도 좋은 공부였네요.

아이들이 본관 정리를 하는 시간,
어른들은 고래방에서 판굿연습을 했더랍니다.
빠른 손으로 정리를 한 아이들도 어여 오마했지요.
저들도 이번 흙날부터 익혀나갈 굿입니다.
일채에서 휘몰이로 자진모리로, 다시 휘몰이로 확 몰았다
동살풀이로 넘어가 동서남북 그리고 가운데를 밟고
다시 자진모리로 진을 짜고 풀 때
아, 저 아이들 좀 보셔요,
가락을 타고 진 꼬리를 따라 덩실덩실 춤을 추며 따릅니다.
흥이 준비된 아이들,
소리를 들을 줄 아는 녀석들,
몸이 안된다는 하다조차 춤이 됩디다려,
어데서고 저런 흥을 내며 살 수 있게 지켜줘야지 다짐합니다.

어른 모임이 있는 밤입니다.
아이들이 밖으로 자주 나가면서 쓰게 되는 값이 만만찮아지자
그걸 어떤 식으로 해결하면 좋을지,
달골 진행, 아이들 밤에 건사하는 시간흐름,
겨울 땔감을 어떻게 마련할까,
그리고 시월 움직임 따위를 의논하고 확인했더랍니다.
상범샘과 희정샘은 남은 연구년을 쓰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지요.
잔잔한 밤입니다.
이 안정감이 참으로 좋습니다만
안정은 다시 불안정으로의 내리막을 준비하는 것일 테고
불안정의 끝에선 다시 안정을 향해 오를 테지요.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
도를 닦고 돌아온 열택샘은 오늘도 명언 하나 건넵디다.

참, 그제, 달골 공사가 또 한 차례 난항을 겪었더랬는데,
분할측량을 하려니 건물 한 동이 들어가네 못 들어가네 하며
설계를 다시 해야 할 운명이라고 공사 맡은 정부장님과 현장소장님 전갈이 있었지요.
그런데 직접 담당자들이랑 통화를 하겠다 학교가 또 나서고
그들에게 사정도 하고 소리도 지른 뒤
어이 어이 안들어간다던 건물이 들어가게 되었더랍니다.
안된다면 끝까지 안될 일도 결국 또 되는,
목소리를 키울 수밖에 없는 이 나라를 잠시 슬퍼한 어제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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