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2일 나무날 비

조회 수 1028 추천 수 0 2005.09.27 00:16:00

9월 22일 나무날 비

학교에서 포도 작업을 밤이 늦도록 계속할 동안
류옥하다랑 함안에 머물렀습니다.
한가위(늦었지만)같은 명절의 최고 덕목은
이렇게 먹고 자기를 반복할 수 있다는 것 아니나 몰라요.
아주 가끔 책을 두어 페이지 읽기도 하지만
잠은 자도 자도 쏟아지지요.

저녁엔 마산에 나가 고교 은사님을 만났습니다.
물꼬의 큰 논두렁이기도 하시지요.
7시 10분 저녁 시간 끝이라는데 시계는 훌 넘습니다.
"가셔야 되지 않아요?"
예서도 다 보인다길래 그제야 고개 드니
창 너머 4층 건물이 온통 불을 밝힌 고등학교가 보입디다.
십수 년 만에 (알고야 있었지요, 듣기도 안했을라구요) 처음 보는 광경이었지요.
'야자'라는 겁니다.
1, 2학년은 9시, 3학년은 10시까지라지요.
그것도 다른 학교는 더하답니다.
아니, 그리 공부하면 천재가 되던가 세상이 더 좋아지던가 해야지,
왜 지구는 더욱 피폐해져간답니까?
아, 그건 못 배운 사람들 탓이라구요?
그대, 멀쩡한 사람 맞아요?
"미친 짓들이예요."
"그런데, 전국의 고등학교들이 다 하니까..."
고 3 담임을 맡고 계시다는데
10시에 퇴근해서 7시 출근이시랍니다.
그러니 할 사람이 없을 밖에요.
'야자(야간자율학습. 이런 저만 잘 몰라서 이리 풀어쓰고 있나요?)'!
무슨 짓들을 하고 있는 건가요?
혹 그대는 알고 계셨습니까,
그런데 왜 분노하지 않고,
아님 왜 다르게 살지 않으시는지요?
저 아름다운 시절에 도대체 우리는 무슨 짓을 가하고 있는 겁니까?
좋은 책을 읽고
모여앉아 밤새도록 토론을 하고
함께 춤을 추고 노래 부르고
때로 깊이 알고자 하는 바를 치열하게 찾아가는 시간,
아니면 홀로 자신의 내면을 뚫어지게 볼 시간을
그들에게 정녕 줄 수는 없는 건지요?
전 지구적으로 생산력이 고도로 발달한 이 시대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생계를 걱정해야 하고,
밤잠이고 새벽잠이고 설치며 저렇게 많은 이들이 공부를 해도
세상은 어리석음을 더해만 가는 걸,
떨쳐 일어나 다른 깃발 아래 모일 이들은 왜 없는 것인지요?
죽지 않고 살아나갈 바에야 뭐라도 해야 되지 않느냔 말입니다.

귀한 손님이라고 달려와 주신 사부님께 넘겨지고,
샘은 10시까지 아이들을 감시(?)해야는 거지요,
샘의 친정 오라버니도 달려와 주시고(제게 아버지 같으시지요)
그리고 샘의 식구 주희도 좇아왔더랍니다.
제 삶의 궤적을 기억하고 함께 추억할 수 있는 이들이지요.
20년도 넘는 시간들인가요.
그 밤, 조개를 맛나게 구워먹으며
저는 영락없이 대해리 우리 새끼들을 생각했다지요.
산골에서 우리가 같이 부대끼며 사는 긴 날들이
우리 아이들 삶의 궤적에 어떻게 새겨질지를 그려보는 게지요.
그러면 막, 마악 아이들이 그립다 못해 엉덩이 들썩여진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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