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 이국을 다녀온 듯하다.

목포에서 혼례잔치가 있었다.

가는 데 하루, 잔치 하루, 오는 데 하루.

아주 먼 시골에 사는 친척 마을을 가

사흘 밤낮 잔치를 벌이고 온 느낌.

 

2012년 여름 화목샘의 품앗이 첫걸음이 있었다.

그로부터 여러 계절에 물꼬에서 화목샘을 보았고,

교단에 선 뒤로도 온 그였다.

그리워하다 막상 버스에서 내려 물꼬 대문을 쳐다보는 순간,

, 내가 여기 왜 또 왔지...” 하게 된다던 그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화목샘.

손발 보태는 품앗이였던 그는 경제적 후원도 하는 논두렁까지 되었다.

 

화목샘이 처음 왔던 그 여름 영훈샘, 태환샘이 동행했더랬다.

그 태환샘도 잔치에서 해후라.

연이어 겨울과 이듬해 여름까지 왔던 태환샘.

2013년 여름 태환샘은 후배 다섯과 동행했더랬다.

그리고 10년 만에 본.

그 사이 결혼도 한.

장례식이 그러하듯 혼례식이 또한 그렇더라.

그런 일이라도 있어야 모이게 되는.

그리고 물꼬 부엌의 '원톱 주인공 혹은 베스트'라 할, 

그 역시 품앗이였고 논두렁인 정환샘도 만났다. 같이 온 수인샘도.

우리들은 지난 시월에 이미 그곳에서 보기로 했던 바.

 

첫날 아침 930분 비를 가르고 남도로 달렸다.

기락샘이 함께했던.

3시간 여의 온라인 회의가 잡혀있어

부지런히 달려가 숙소에 자리부터 잡았다.

청년 하나가 목포항구를 주제로 한 향을 만드는 곳에 초대돼 

향을 만들어 보기도 했고,

포르투갈로 이주를 꿈꾸는 또 다른 청년의 칵테일바에서 우리들의 포르투 경험도 나누었다.

게스트하우스도 운영하고 있는 청년실업가였다.

원도심이라고는 하나 비 오는 겨울 저녁이어 그런가, 길이 텅 비었더라.

다른 때라고 그리 붐비는 것도 아니라고는 했다.

지방 소도시, 그것도 서울로부터 아주 먼 곳의 쇠퇴를 고스란히 보여주는 풍경.

도시를 다 날려버릴 것만 같은 바람이 돌아다닌 밤이었다

 

이튿날 오전에 해안가를 걸을 참이었는데거친 바람과 함께 우박이 떨어지고 있었다.

1시 혼례식장에 겨우 도착.

신랑은 늠름했고, 신부는 아름다웠다.

화목샘 부모님께 꼭 인사를 드리고팠는데, 놓쳤다.

잔칫밥을 먹은 뒤 정환샘 수인샘과 나와 차를 마시러 갔다.

눈보라가 집어삼킬 것 같았다.

둘을 만난 따뜻함으로 마냥 신이 났다. 매우 그리웠던 그들이라.

같이들 오후에 해상케이블카를 타고 고하도에 들어가 전망대도 오르고 곰솔숲을 걸을까 했으나

정환샘들은 장성과 광주로 돌아갔고,

숙소로 돌아와 방에만 있었다.

 

사흗날 눈보라가 더 기세등등해졌다.

숙소에 같이 든 숙박객들에게서 주차해 둔 차가 얼어 문을 열지 못했노라는 소식을 들었다.

늦은 아침을 먹고 천천히 길을 나섰다.

서해안고속도로는 함박눈이 펄펄거렸다.

 

스무 두어 살 언저리 여행길에 목포에 있었다.

대입시험을 막 끝낸 어린 청년 둘을 만났다.

같이 유달산에 올랐고, 한 청년의 형이 안좌도의 고교 교사로 있기

그들의 길에 동행해 학교 숙직실에서 하룻밤을 얻어자고 하숙집 밥을 얻어먹기도.

그때 시를 쓰던 나는 시를 잊은 지 오래인데

그때 만난 한 청년이 그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신춘문예에 당선도 되고 시집도 내고 시인이 되었다.

유달산 아래서 옛적을 그리네.’

오랜만에 문자를 주고받았다.

뜻밖에도 나는 잊은 많은 시간을 그가 또 꺼내주기도.

결국 공간도 사람으로 남더라.

 

사흘이 걸린 화목샘 세련샘 혼례잔치 걸음이었네.

함께 걷는 비단길이시길.

 

영하 10도의 저녁 대해리.

계속 떨어지는 기온.

불과 한 주 전 봄날이었는데. 덥기까지 한 한낮이었는데.

달골 길 끝의 마지막 굽이길 꼭대기 눈부터 쓸었다.

그래야 겨우 녹는 이 언덕빼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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