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워라. 밤 최저기온이 영하10도라고 예보되고 있었는데,

영하 6도일 거라고 한다.

최저기온조차 영하권으로 예보했던 날씨들이

오늘에 이르자 흙날 1, 해날 3도로 알리고 있었다.

흙날 밤만 해도 영하 6도라더니.

그러리라 낙관하긴 하였으나 정말 물꼬 날씨의 기적이란 말처럼...

아이들이 따뜻하게 잠자리에 든 걸 보고 방문을 닫았다.

고단할 만도 할 것이다.

새벽부터 집을 떠나 기차타고 버스 탄 먼 걸음에,

더하여 날카로운 추위와 가볍지 않은 노동에 지쳤을 만하다.

사나흘 전부터 내내(영하 15도까지 떨어졌던) 매우 추웠다 하나

이 골짝 추위는 살던 곳의 추위랑 질이 다른.

 

청소년 계자!

24시간 만 하루의 일정이지만 질감으로는 사나흘 족히 될 게다.

영동역발 대해리행 11:10 버스들을 모두 무사히 탔다는 연락을 받았다.

정오 제습이와 가습이가 먼저 마을에 버스가 들어옴을 알렸고,

곧 아이들이 나타났다.

수능을 끝내고 마지막 청계를 위해 들어선 12학년 건호부터

일곱 살 때부터 어느 해도 빠지지 않고 저 대문을 들어선 9학년 채성,

그리고 청계 첫걸음을 뗀 7학년들 태양 현준 도윤,

금산에서 오기로 한 8학년 남자 아이는

결국 낯선 곳에 오는 것을 포기하고 말았네.

 

안내모임에 이어 물꼬 한 바퀴’.

공간을 둘러보며 물꼬의 생각을 나누는.

새로운 걸 발견하기도 하고

새롭게 보게도 되더라고들.

건호, 큰 해우소 문 앞에 남자(서서 오줌 누는 사람) 쪽에 걸린 어린왕자를

여자(앉아 오줌 누는 사람) 쪽에 걸린 빨강머리앤을 발견해주다.

욕실 문 앞에 단 발도 알아봐 주었더라.

 

일수행 1.

잔치국수와 김치부침개가 중심인 낮밥을 먹고

귤을 실컷 까먹고

일곱이 올라 달골 길 눈 쓸기.

다는 아니고 필요구간마다.

확실히 형님들의 몸씀이 다르다.

물꼬에서 보낸 시간을 생각하였네.

그건 마음씀이기도 하였을.

 

돌아와 새참을 먹었다. 통단팥죽.

어제 동지였다.

한 가정만 팥죽을 사다 먹었다 했다.

팥을 통통하게 삶고, 계피생강시럽을 만들어 섞고,

마지막에 찹쌀가루를 풀어 휘젓다.

소금 한 꼬집 넣고.

태양이는 먹지 않는다는 팥죽인데도 맛나게 먹었다.

적잖은 양을 싹싹들 다 먹었다.

 

일수행 2 - 이불 털기.

어마어마한 양.

거의 계자 미리모임 수준이었어요!”

채성이가 그랬다. 어른들이 열 가량 모여 하는 일이라는.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움직임일 거라 예견했는데,

아쿠, 아이들이 내리 밖에서 한 번에 이불을 털고 있었다.

옷들이 가벼웠는데,

그예 7학년 셋은 발이 깨진다고 난롯가에 앉았다.

(얼른 뜨거운 물주머니들을 안겨주었고, 두꺼운 양말들을 내주었다.)

, 나는 보았다, 저 아이들이 얼마나 마음을 내고 있는지.

형님들이 부른 것도 아닌데 도윤이가 다시 나가고,

현준이가 곧 천근같은 몸을 일으키고 있었다.

태양이는 계속 마지막 마무리 행동(문을 닫거나 신발을 바로 놓거나 하는)을 잊으면서도

알려주면 바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불을 내리고 올리는 일은 내가 맡았다.

이번에 이불 개는 구조를 바꾸어 보려지.

아랫것을 빼는 경우가 있는데 그때 덜 힘들려고

전체 이불 크기를 줄이는. 그래서 한 번 더 접는.

하지만 요는 각이 잘 나오지 않았고,

이불은 굳이 그럴 필요가 없었다. 아랫것을 빼는 경우가 거의 없으니.

결국 올렸던 이불들을 내려 다시 예전처럼 펴서 올리고.

아주 무거운 겨울이불은 이불장이 아니라 옷방 맨 끝 바닥에 정리했다.

이미 여기 이불들을 옆방인 모둠방으로 옮겨놓고 공간 청소를 끝냈던 터였다.

관리할 공간이 많은 물꼬에서 일하는 방식 하나는

손댄 김에 다시 손 가지 않도록 한 번에 청소를 내리 죽 이어서 하는 것.

어딘가 물건 만졌으면 죄 꺼내 그곳 청소까지 하는.

오늘 작업은 이불을 살피고 정리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너무 낡은 것은 버리련다.

솜이불은 무겁고 관리도 쉽잖은. 이제 그만 쓰자고 그 역시 이불방에서 뺐다.

마지막으로 베갯잇 벗기기. 빨려고. 가을에 못한 일이었다.

매우 추웠다. 같이 해서 견뎠다. 할 만했다. 했다. 서로가 서로를 일으켰다.

 

다른 땐 나머지 일을 맡기고 밥을 하러 가는데,

같이 움직여야했네.

셋은 7학년, 청계 첫발이라 아무래도 서툴.

하여 밥이 좀 늦어진 저녁이었더라.

째개와 국 네 가지 가운데 고르랬더니 아이들이 김치짜글이를 골랐다.

서리태밥과 김치와 깍두기와 콩나물무침과 떡볶이, 감자볶음, 고기볶음, 과일야채샐러드, 그리고 귤.

싹싹 긁어먹다.

7학년들은 설거지를 새롭게 익히다, 이제 주도적으로 할 수 있게.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음식물 찌꺼기 버리기, 마지막 행주 빨기, 물기 닦기,

바닥 물기 닦기, 행주 널고 장갑 제 위치 보내기, 속장갑 난롯가에 너는 걸로 마무리.

 

저녁밥상을 물리고 케이크를 먹다.

기락샘이 이맘 때, 더구나 이 추위에 어렵게들 모였다고

읍내 나가 사다준 케이크였다.

우리는 왜 성탄절과 석탄일을 기념하는가.

그 성인들이 사랑과 자비를 가르쳤기 때문임을 짚어보다.

도윤이가 속이 불편해서 저녁도 조금 밖에 먹지 못했는데,

케이크 또한 그랬다. 한 조각 남겨두었다, 내일 괜찮으면 먹기로.

, 은행을 못 구워먹었다.

도윤이가 특히 좋아했던 은행알.

청계를 위해서 한 바가지 더 줍고 씻어두었던 은행인데.

 

밤마실은 매추 추운 밤이라 접기로 했다. 달골까지 걷기도 할 거니까.

달골에 도착해 선걸음으로 명상돔으로 갔다.

둘러앉아 자기 고민을 털다.

이 추위에 아늑한 게 신기하다고 했다.

30센티미터 아래에서부터

비닐을 깔고 흙-모래-보도블럭-아이스핑크-알류미늄깔개-체육관매트를 깔았다.

아직 방석까지 가져다 놓지는 않았는데,

없이도 공간을 쓰기에 불편치 않았다.

 

실타래’.

믿음의 동그라미 안에서 깊은 경청과 솔직한 말, 진심과 따뜻함이 있었다.

때로 책이었고, 자신의 이야기도 있었다.

어떻게 힘을 계속 낼 수 있는가?’, 채성의 숙제가 있었고,

특수교사가 쓴, 그래서 쓸 수 있었을 장애인에 대한 책 한 권이

자신에게 전한 말을 도현이는 전했다.

여행지에서 만난 어른이 알려준 지혜를 우리들에게 나눈 건호.

그걸 또 잘 알아듣고 다시 자신의 언어로 정리해주었더랬다.

지난여름에도 읽었던 철학책 하나가 이 겨울에 읽으니 또 다르더라는 현준.

덕분에 우리는 칸트와 스피노자와 괴테의 사상을

가볍게 자신의 삶에서 만났던 바로 나누기도 했네.

태양이가 이미 졸음에 겨웠는데,

9학년 채성이가 자기도 7학년 때 모르겠고, 졸립고, 재미도 썩 없고 그랬노라고,

그러나 이제는 이 시간이 얼마나 힘이 되는지,

무엇보다 가장 재밌다고 하며 7학년들을 끌어올려주고 있었다.

내가 준비한 책 <나쁜교육>은 내일 오전에 짧게 나누기로.

늦은 시간이었다.

여느 청계처럼 넘치는 노래는 없었다.

씻고 23시에야 잠자리들.

거의 무박이라는 청계인데, 이번에는 7학년들이 있는 관계로다가.

 

하루를 톺아보니 그런 아쉬움은 있었다.

아마도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갑자기 몰아친 추위에 노출되어

(이른 아침 움직인 데다 이불을 털며 너무 오래 밖에 있기도 했고)

7학년들 춥다고만 하지 춥지 않으려는 노력에 대해 부지런하지 못한 부분이 있었다.

출입문을 닫고, 실내화를 신고, 양말을 더 껴 신거나 두꺼운 걸 신거나,

목을 보온하거나, 옷을 더 입거나, 도움을 요구하거나, ...

어떤 면에서 요즘 아이들의 특징 하나일지도 모른다.

잘 참아서라기보다 적극적으로 그런 움직임을 챙길 줄 모르는.

물꼬 아이들은 더 나은 편이라 하나

청계에선 7학년들이 또 꼬래비라.

추우면 거의 아무 생각이 없어지는 나여서 이해가 되기도.

우리 정신 챙기고 우리 자신부터, 그래서 나아가 아이들을(초등) 건사합시다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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