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11.16.쇠날. 맑음 / 백두대간 제 9구간

조회 수 2101 추천 수 0 2007.11.21 18:33:00

2007.11.16.쇠날. 맑음 / 백두대간 제 9구간


산에 올랐습니다.
가을학기 마침 산오름입니다.
백두대간 제 9구간(추풍령~큰재)을 탔지요.
천왕봉에서부터 구간 구간을 끊어 오르고 있습니다,
간간이 큰 산을 올랐다 내리기도 하면서.
이번 학년도 봄학기 시작 산오름은
대간 8구간 16소구간(괘방령~추풍령),
봄학기 마침 산오름은
4구간 8소구간 중재~영취산,
가을학기 시작은 가지산(1,240m)를 올랐더랬지요.
낙엽방학을 앞두고 23일 쇠날에 가는 것이나
김장준비로 한 주를 당겼습니다.
24-5일 김장하기로 날 받아둔 참이지요.

8시 직전 교문을 나섰습니다.
멀지 않은 곳이라고 상범샘이
일행을 실어 오고가기로 하였습니다.
추풍령 표석비에 40분에 도착했네요.
“저기 봐, 되게 희안하게 생겼다.”
오는 길에 한 쪽은 움푹 패이고 다른 편은 남아
산이 파도의 한 부분처럼 생긴 곳을 가리키며
아이들이 소리를 쳤댔습니다.
“저게 도 경계인데,
한쪽은 개발이 허락되고 다른 쪽은 안돼서 그렇다네.”
채석장 이야기입니다.
충북 영동 쪽은 더는 깎을 게 없도록죄 깎아 평지가 되었고
김천은 그대로 남아 있는,
금산의 흉물스런 모습이었지요.

10여 분 금산을 오르니 너럭바위가 맞습니다.
낭떠러지를 이룬 꼭대기에 안전시설을 위해
일꾼들이 오르내리고 있었지요.
김천시에서 나온 공무원들이 지도를 들고도 나와 있습니다.
“이쪽도 개발이 돼야 영동 김천 간에 하나로 되어...”
“무슨 말씀을...”
곳곳에서 대간길이 이리 파헤쳐지고 있는 거지요.
사람 살자고 다른 존재들이 사는 곳을 그리 해치고 있습니다.
그냥 가기 섭섭하여 바위에 벌러덩 누워봅니다.
“아름다워...”
아이들도 감탄입니다.
하늘,
그 너른 바다로 바람이 떠올린 마른 잎들이 풀풀거립니다.
저 생의(이승 너머) 어디메쯤 가는 길 같습니다.
낮은 흰구름이 바삐 가고 있습니다.
“가자.”
저 편으로 깎아지른 낭떠러지를 옆으로
이 편의 금산 길을 따라 주욱 주욱 밀고 가기 한 시간여,
이번엔 다리쉼을 제대로 합니다.
“한 번도 안 쉬고...”
수차례 쉬어가는 종훈이는 이내 합류를 했네요.
그 아이 또 성큼 자라 있었지요.
10:05.

‘천황봉 기점 200km 통과 구간’
어느 홀로 걷는 산꾼이 지난 3월 세운
작은 나무 표식이 있습니다.
확실치는 않지만 그쯤이겠다고 다른 이를 위해 해준 안내입니다.
‘이 산길에서도 생각이 많구나...’
처음엔 그저 걷고 걷던 길이
어느 순간 고요의 틈으로,
자꾸 붙잡는 아이들의 말소리도 없으니
(류옥하다만 열심히 따라오고 있었지요),
생각이 끼어들기 시작했지요.
어느새 길 위가 아니고
머리 안에서 누군가를 만나고 있기 일쑤입니다.
그랑 보낸 시간들, 그랑 나눈 이야기들...
저승길이 길고 길다더니 그럴 밖에요.
살아온 생을 이처럼 낱낱이 보라는 게지요.
네 행적을, 네가 만났던 사람들을 보라는 게지요.

산에 들면 마치 파르티잔이 된듯합니다.
‘세석평전의 철쭉 꽃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시라’(이원규님 시에서)던
세석평전 아니어도
‘꽃 그려 새 울려놓고 / 지리산 꼴짜기로 떠났다는 / 소식’(서정춘님 시에서)처럼
봄날의 파르티잔이 됩니다.
그래요, 스무살 뜨거운 나이에 목청껏 불렀던
‘오월의 노래’처럼 마구 달려가게 되지요.
지체할 수가 없습니다.
마치 내가 꼭 찾아야만할,
사흘 굶은 이가 달겨드는 밥상처럼.
“산에 들면 나는구나...”
어느 산길을 같이 걷던 선배의 평처럼 마구 달렸지요.
산이 오라 하거든요.
어린 날 먼 나들이에서 돌아오는 어머니 품에 안기듯,
젊은 날 사무치게 그립던 이름자를 향하듯,
피 뜨겁던 시절 거리에서 꽃병을 던지듯 온몸으로 산을 향하게 됩니다.

왼쪽으로 충북 영동을, 오른쪽으로 경북 김천을 둔 경계를 타고 가는 길,
2시간여 걸으니 ‘사기점고개’가 나타납니다.
도시에서라면 이 긴 길들을 어찌 걸었을까요.
낙엽 위, 흙길, 나무 사이들이라 걷지요.
이십 여분 더 걸으니 도로와 만납니다.
여간해서 차를 만나지는 않겠는 길이라
또 벌덩 누워봅니다.
흰구름 다 흩어지고 파아란 하늘이 거기 있습니다.
그림처럼 비행기 한 대 지나갔지요.
도로 따라가면 ‘작점고개’에 이르는 줄이야 알지만
넓고 편한 길의 유혹을 던지고

다시 산길로 들어갑니다.
두어 차례는 이 도로와 만나고 어긋지고 할 테지요.
대로를 앞에 두고도 굳이 험한 길을 돌아가는 사람들이 있듯
오늘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갔습니다.
다시 도로를 만나 걷는데, 이게 대간길이니까요,
곧 신애정신병원을 만나고
그 마을에 들어 물도 채우고 다리쉼을 또 했지요.
다시 산으로 접어들어 1킬로미터쯤 가니 작점고개입니다.
십여 년 쯤 됐을까요,
백두대간 종주팀들이 붙인 고개 이름입니다.
충북 쪽에선 고개 너머 경상도 땅에 여덟 마지기 전답에 농사를 지었다고
‘여덟마지기고개’라 하고,
능치마을에선 고갯마루에 성황당이 있었다고
‘성황데이고개’라 부르는 곳이지요.

시계는 막 1시를 지나고 있습니다.
작점고개 육모정에 엉덩이를 걸친 아이들이 점심을 먹고 가자 합니다.
그런데 지금 속을 채우면
오름길이 여간 불편치 않을 것입니다.
사이 사이 허기를 채우기도 했으니 견딜 만도 할 거고.
매달아 흩날리는 리본들이 길을 잘 잡아줍니다.
예전에는 그것도 오염이려니 했는데,
먼저 가면서 이렇게 길을 밝혀준 이들이 고마웠지요.
앞서가는 이의 바른 발걸음은 뒷사람들의 길눈이지요,
삶이 그러하듯이.
어디께였더라,
주욱 나있는 길을 걷다 어느 순간 의심스러워 고개 드니
길이 삐져들어가 대간길이 이어지더군요.
역시 무수히 달린 리본 때문에 쉬 찾았던 길입니다.

1시간여를 더 걸어 갈현 이르기 직전
473m 꼭대기에서 도시락을 폈지요.
“여태 니네 집에서 해온 김밥 가운데 최고다!”
박진숙엄마가 이른 아침 싸준 것입니다.
올해, 번번이 그랬습니다.
이미 떡국을 끓인 뒤이긴 하였으나
아침식사를 준비하는 번거로움도 피하라고
김밥에서 잘린 꼬타리며 몇 줄을 아침상에 넣어주기도 하셨더랬지요.
늘 고맙습니다.
“용문산은 어디예요?”
봉우리 두 개가 보이고 있었지요.
“이게 이 봉우리, 이게 용문산!”
등고선지도를 펴서 우리가 오른쪽으로 휘며 밟아갈 길을 살핍니다.
1시간여 내달리니 용문산(710m).
사진 한 장 찍습니다.
국수봉을 지나 큰재까지 이르게 될 길인데,
야간 산행길을 더하면 굳이 못갈 것도 없지만
이미 걸은 거리가 만만찮습니다.
길이 수월하긴 하나 추풍령에서 큰재까지가 18.5km.
“우리는 용문산 기도원 쪽으로 내려갈 거야.”

국수봉을 향해 40여 분을 가서 길을 꺾습니다.
굳이 이 길이 나 있는 길 아니어도
지도상으로 아래로 향하기 딱 좋은 지점이라며
쉬면서 목을 축였지요.
그런데 물을 마시느라 고개를 들자
나무 저 위에 용문산기도원 버스 타는 곳 간다는 안내지가 붙어져 있었네요.
“햐아, 저리 높은 곳에다가...”
삼촌의 마뜩찮아 하신 음성이었네요.
큰재를 4킬로미터 남긴 곳이었습니다.
조금 걸으니 길이 훤해집니다.
“맞네요.”
1킬로미터면 버스정류장이 나타날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500여 미터를 갔나요,
기도원 땅 가운데로 신작로가 나타났지요.
5시 30분을 막 지나고 있었습니다.
김천시 어모면 용문산 기도원.
1950년 목사 나운몽이 세운 한국 최초의 기도원으로
한국기독교 부흥의 원천으로 볼 수 있다 들었습니다.
50여만 평 넓이의 부지에
신학교, 신용협동조합, 구판장, 우체국, 대성전, 애향원이 자리하고 있었지요.
약수터에서 물을 마시고
버스정류장, 그러니까 기도원 들머리로 내려갔지요.

많이 걸었네요.
“길이 너무 좋아서...”
아직도 몇 킬로미터는 가뿐히 더 걷겠는 아이들 목소리입니다.
작점고개에서 노닥거리고 용문산기도원으로 내려온 길을 더하니
산길 16길로미터를 걸었더이다.
고마운 가을 끝입니다.
우리 생의 아름다운 한 지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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