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계자 이튿날, 2007.12.31.달날. 또 눈

조회 수 2353 추천 수 0 2008.01.03 06:44:00

122 계자 이튿날, 2007.12.31.달날. 또 눈


아직 동도 트기 전 샘들이 먼저 해건지기를 합니다.
아이들을 건사할 사람들이니까 몸을 미리 풀고,
또 아이들이 들어와 아침을 열 공간이니까
먼저 온기를 채워둡니다.
아이들이 왔고,
익숙한 녀석들이 많으니
몸을 푸는 것도 고요하게 바라보는 것도
무척 자연스럽습니다.

‘손풀기’도 그러합니다.
사흘 동안 아침마다 진행할 것인데
가운데 사물을 가져다 놓으니
열심히 한껏 그려넣습니다.
크게,
눈에 보이는대로,
말없이.

‘열린교실’.
‘살아있는 그림책’에는
영범 진석 정식 상헌 민상 현정이가 들어가
이야기들을 그림책에 담고
입체책이 되도록 여러 장치를 하였습니다.
만들면서도 즐거웠겠지만
들여다보면서도 감탄이 절로 나왔지요.

‘한땀두땀’.
찬슬 수민 해온 재은 슬찬이는 바느질을 하였습니다.
아, 슬찬이는 신청만 해놓고
난롯가 단추랑 노는 아이들 틈에서
가만히 몸을 좀 쉬어주었지요.
쿠션을 만든다 하였는데,
삐질삐질 솜이 삐져나와도 마냥 즐겁습니다.
제 손으로 한다는 건 그런 거지요.

‘다시쓰기’에는
형식 세원 세현 우재가 들어갔습니다.
날이 차서 아이들 이름표 비닐이 찢어졌더랬는데
그걸 고쳐주고 만들고 싶은 것도 만들었지요.
세원 세현이는 평소에도 집안 살림을 잘 도우는 아이들답게
거침없이 쓱쓱쓱 하고 있었습니다.
무슨 공장처럼 끼우고 만들고 찾아주고...
우리 필요한 것 수선한 뒤
요구르트병으로 잘 놀고 좋았다지요.
어린 우재도 재밌게 하고 있더랍니다.
허드렛종이 상자에서 홈티켓인쇄테스트종이가 나와
그걸로 기차를 만든다다가
어느새 텔레비전으로 바꾸어
오즈의 마법사 동화 장면이 담긴 달력을 붙여두고 있었지요.

양현지 경준 유나 유 지인은
뜨개질을 하는 ‘한코두코’에 갔습니다.
경준이는 실다루기를 하고 싶다고
실을 가지고 있는 이 교실에 합류했지요.
같이 코를 잡고 있다가
어느새 홀로 매듭을 엮고 있었습니다.
유는 아직 어려 힘들어했지만 할려고 엄청 애를 썼고
의욕이 앞서서 금새 지치기도 하던 유나는
어느새 익숙해지고 있었지요.

‘뚝딱뚝딱’에는
성수 용하 김현지 상훈 온 동하가 들어갔습니다.
“돛을 달아요!”
사공이 많아 산으로 와버린 배 한척이 마당에 있지요.
어쩜 그런 생각을 했을까요,
그 배에 돛을 달고 싶었던 겁니다.
흥이 곁으로 곁으로 번져
눈 속에 추위에 아랑곳 않고 신나게 뚝딱거리고들 있었지요.

물꼬 곳간엔
세 해 열심히 쓰고도 이적지 단추가 쌓였습니다.
세인 세빈 하수민 용범 자누가 단추랑 놀았지요.
해봤던 수민이는 첨부터 신나서 63빌딩을 만들겠다 시작하고
온 가족들 장신구도 장만했습니다.
세인 세빈네는 조용히 탑을 쌓고
자누는 악세사리를 만들었고
중간에 나타난 용범이도 뭔가 몇 개를 만들었지요.
조금이라도 예쁘고 특이한 단추를 보면
서로 자랑도 하고 쓰라고 권하기도 하며 찾아도 주고
참 사이좋게도 놀데요.

겨울에 ‘연’을 빼놓을 수 없지요.
민규 현규 단아 수현 범순 철순이가 함께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대표작 하나만 만들어
날리는 것까지 했다네요.
아이들이 조마조마하며 보고 있고
종대샘이 열심히 뛰었지만
끝내 날아오르지 않았습니다.
왜냐면 그때 바람이 잠들었거든요.
"10년 동안 물꼬 연이 그래다니까."
오랜 계자 식구들이 한 마디씩 약을 올렸지요.

‘다좋다’.
다 싫어서가 아니라
하고 픈 게 너무 많은 아이들이 모이지요.
윤준 채현 승엽 현진 태오 재준 재현입니다.
뭘 할까 의논하며
재료 고려하고 시간 따져보고 양보할 것 하고
다들 잘도 하더라지요.
“학교에 도움이 되는 걸로 해보자.”
그래서 지붕이 너덜거리던 쫄랑이집을 고쳤답니다.
온 학교를 다 뒤져 재료를 구해 오더라지요.
“쫄랑이랑 좀 놀아도 주구요...”
다음은 고래방에 있는 탁구대를 누군가 보았다며
탁구교실도 열자 했다나요.
마침 상오샘이 탁구장집 아들이었던 적이 있던 터라
자세를 잘 배웠던 아이들은
펼쳐보이기 시간에 시범을 멋있게 보여주었지요.

점심 시간, 다시 축구 열풍입니다,
아니 광풍입니다.
“날 추운데 바람 거친데
저것들이 제정신이 아니네.”
희중샘이며 영환이형님을 중심으로
재현이 동하 상헌 민규 성수...
그때 승엽이가 앓아 숨꼬방에 눕히고
열을 내릴 수 있게 약을 만들어 이마에 얹어주었고,
내내 앓았던 슬찬이가 살만해져서
누룽지를 끓여 멕였지요.

교실 한켠에선 잠시 팽이도 돌렸습니다.
형길샘이 깎아 만들어 준 것입니다.
하수민이 단추로 만든 것들을 목에 손목에 걸치고
몇과 무당놀이를 하고 있었는데,
용하가 물었습니다.
“저 애가 칠 수 있을까요?”
“일년이 지나도 못 치게 돼 있어.”
그러다 용하도 팽이가 치고 싶었겠지요.
“저는 칠 수 있을까요?”
“그런 걸 내가 어떻게 알어?”
정말 별 게 별 게 다 놀이랍니다.
아이들 속에 있으면
그래서 더욱 유쾌해지나 봅니다.
무엇이나 놀이로 만들 줄 아는 힘!
(그 팽이 저도 때리느라 혼쭐이 났습니다.
으윽, 팔...
"와!"
"이 걸로 우리 교장 정했거든.")

‘우리가락’이 이어졌습니다.
판소리를 들려주는데
언제나처럼 공연관람자들의 태도는 대단히 우수하지요.
뱃노래도 같이 불렀습니다.
참 잘합니다.
아이들은 정말 빨리 배웁니다.
일어나서 온 몸으로 풍물도 익혔지요.
고래방까지 가서 악기를 들고 올 것도 없이도
손바닥을 치며 앞 사람 등을 치며
원을 그려 돌며 풍악을 울렸지요.
하지 않고 놀던 아이들조차
칠판 앞에서 상 위에서
딱딱거리며 박자를 맞추고 있었더랍니다.

오늘 저녁은 아이들이 잔치음식을 준비해서 먹습니다.
‘보글보글’.
많이 와 본 아이들의 노하우가 드러나는 시간이지요.
“저는 숫자 적은 데 가요.”
해온이도 그럽니다.
(칼질이며 반죽이며)많이 할 수 있고,
또 많이 먹을 수도 있다지요.
경준 윤준 유 태오 승엽이는 부침개를 부쳤고,
찹쌀부꾸미는 진석 현지 온 우재 세원 세현이가 부쳤습니다.
김치핏자에는 용범 상헌 하수민 용하 형식 현정이가 들어갔고,
해온 자누 수민 지인이는 수제비를 끓였지요.
고구마맛탕은
세인 세빈 철순 범순 수현 단아 영범이가 만들었습니다.
단아는 칼을 무서워하면서도 하기를 주저치 않았고
언니와 오빠, 샘들한테 음식을 먹여도 주었지요.
수현이는 칼질이 안 된다며 조금 하다 관두더니
다른 애들 열의에 다시 도전했습니다.
떡볶이는 민상 현진 재준 재현 재은 민규 정식이가 만들었는데,
하도 시끄러워서 흐름을 자꾸 깨는 민상이와 정식이,
만나기도 별스럽게 병원에서 맺은 연이랍니다.
“하나 둘 셋, 흐음!”
“우와!”
지나가다 들으니
음식이 잘 됐나 냄새를 맡는 소리라 하데요.
아이들이 모두 잘 만들고 잘 정리하고 잘 평가하고,
배가 고팠을 텐데 배달되어오는 것들을 잘 기다리고,
다른 모둠에 더 예쁜 것을 주고 있었습니다.
기특한 아이들입니다.
아, 이름 없는 아이들요,
불난(?) 호떡집에 죄 모였댔지요.
호두 호떡!

한데모임에 모여 하루 지낸 시간도 나누고
구들방에서 겨울 저녁을 노래로 채웠습니다.
손말도 배웠지요.
아, 이번엔 다시 오지 못할 6학년들에게
진행의 기회를 주기로 하여 재은이가 먼저 시작했습니다.
“강강술래.”
노래집에서 누군가 강강술래를 부르고파 했는데,
강강술래, 참 좋은 노래입니다.
놀이로도 그만한 것이 없는데,
노래만으로도 신명이 납니다.
우리 가락이 흔히 그러하듯
얼마든지 상황에 따라 가사를 달리할 수 있고
앉아서도 춤도 추고 손뼉도 치며 놀 수 있지요.

대동놀이.
“오늘은 너무 추우니까
고래방으로 건너갈 게 아니라 예서 하겠습니다.”
엎드려서 팔씨름, 앉아서 눈싸움, 서서 손바닥밀기를 하고
이어달리기도 합니다.
데굴데굴 구르는데 와아, 대단한 속도전이었습니다.
그리고 링 위에서 엉덩이들이 맞붙었지요.
샘들이 더합니다.
온 방이 열기로 터져나가는 줄 알았답니다.

늦은 밤,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고
어른들은 하루를 돌아보며 불가에서 아이들 얘기를 합니다.
참 아름다운 일입니다.
“지난 여름 제가 진행하였던 뚝딱뚝딱을 형길샘이 오늘 진행하는데
참여한 아이들이 신나게 추운데도 활발한 움직임을 보여주더라구요.
형길샘이 지나가며
‘선생님, 뭐하세요?, 우리는 애들이 다 하는데...’ 하는데,
애들은 구경하고 나는 열나게 혼자 연을 들고 뛰고 있어요.
아이들 참여, 스스로 하는 것, 대수롭잖게 생각했는데
그때 좌절 비슷한 걸 느꼈습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아무나 그렇게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아이들 가르치는 일, 많이 노력하고 생각할 직업이구나,
직업이 아니더라도 일이구나, 굉장히 섬세하고...”
약간의 참담함이 스쳤다는 종대샘의 오전은
다시 비슷한 오후를 맞았더랍니다.
두 녀석의 싸움에 중재자로 나섰는데 별로 할 게 없더랍니다.
그래서 또 우울해진 오후였다구요.
“그래도 다시 내일은 밝아올 것이고
또 저는 내일 연을 날리기 위해 운동장을 뛰어다닐 겁니다.”
그간 참 안 어울리는 일이라 생각했는데,
문득 종대샘이 참 좋은 교사가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민화샘은 그러데요.
“아침에 일어나는 것만 빼면 다 좋아요.”
누구라고 안 그럴까요.
저도 그렇답니다.
늦은 밤까지 이렇게 평가하고 준비하고
동도 트기 전에 눈을 뜨는 일이 어찌 쉬울라구요.
그런데도 고단함을 밀고 일어나는 걸 보면
샘들이 참 대단합니다.
무슨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니고...
승현샘은 오후에 눈길을 헤치고
흘목에서부터 걸어와 합류했지요.
“저는 어디 가면 사진 안 찍어요.
그러면 사진으로 위안하고 다시 안가거든요.
그런데 사람이 그리우면 꼭 갑니다.
사람이 좋으면 가요.
그래서 옵니다.
샘들도 아이들도 그리워서 옵니다.”


해가 바뀝니다.
가마솥방 난롯가에서 갈무리를 하던 샘들이
자정에 맞춰 징을 세 차례 칩니다.
산마을의 자정, 징소리가 번져갔지요.
모두 마음을 모아 소원을 빌었습니다.
그게 무엇이었건
잠시의 경건의 시간이 우리를 세상의 번민으로부터
한 해를 잘 지켜내 줄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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