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자 열 이틀째 1월 16일 쇠날

조회 수 2166 추천 수 0 2004.01.17 10:28:00
< 편지 왔어요 >

저녁을 막 다 먹었을 무렵, 3년 예님이가 저쪽에서 여섯 살 하다를 부릅니다.
"어디가?"
일어서는 하다에게 물어보았겠지요.
"바빠, 모임이 있어, 도서관에서."
그러고는 휘익 나가버립니다.
오늘 저녁 책방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샘들 하루재기에서 아직 어른들은 아무 정보도 갖고 있지 않더이다. 낼이 기대됩니다.

정말 아이들 저마다 너무나 바쁘네요.
지선, 현주, 홍주, 찬종, 승종, 정한, 석현, 채규들이 들어간 점자는 진도가 너무 잘 나가서 놀라웠다 세이샘이 전했습니다. 외국어의 한 영역으로 점자를 골랐던 아이들이지요.
"다른 곳에서도 이런 걸 하는 곳이 있을까?"
이 땅 어데고 손으로 하는 말, 점으로 하는 말을 가르치고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오늘 우리가락에선 동주가 온몸으로 판소리를 했지요. 끝나고 나서도 모둠방에서 흥에 겨워 몇 차례나 불러대더랍니다. 판소리 시간 앞 잠깐 울먹일 사건이 있었던 동주는 그만 소리하는 흥으로 그 마음 다 풀어버렸습니다.
기태한테 매듭을 해주고 있는데 호준이도 해보겠다 나섰다나요.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 다부진 손놀림에 눈이 댕그래졌다네요.
재헌이는 집에 기념품으로 가져간다고 구운 은행 몇 알을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어떤 녀석은 심지어 초코파이 껍데기를 챙겼다고...
대바늘뜨기는 어려워하던 도형이 매듭에 관심을 보이더니 잘하기까지 하더랍니다. 동주는 틀려도 꾸역꾸역 했다는데 너무 많이 틀려서 풀고 다시 해보자 하니 세 차롄가 풀고서도 끝까지 해내더랍니다. 곁에서 예린이도 차분하게 잘하고.
소곤소곤방은 부엌 난롯가에서 책을 읽다 들어와서는 큰 놈들 수학 역사 지리 도덕하는 틈을 기웃거렸지요. 얼른 수학에서 규칙영역에 쓰고 있던 색칠하기 종이를 나눠줘 놓으니 암소리 없이 열심입니다. 게다 무지샘의 방귀이야기 특선으로 신이 더 났습니다.
진만이는 어제 한데모임 파장이 컸던 모양이지요. 오늘은 어찌나 점잖을 빼고 다니던지... 다들 너 왜 그러냐 물어보았더랬지요.
승진이가 가진 껌 한 통이 있었습니다. 학교 들어서는 순간 가방에 있는 모든 먹을 것들을 다 꺼내놓는데 빠뜨렸던가봐요. 달래느니 안준다 씨름하는 걸 봐버렸지요. 내노라 했습니다. 자연스레 주욱 한 줄로 서데요. 한 입에 하나씩 털어 넣어줍니다. '하다'가 하나 먹고는 또 내밀었는데 주었다가 어, 아까 받았단 걸 깨닫고 얼른 도로 달라하니 입에 톡 털어넣어 버립니다. 씨익 능글맞게 웃더니 돌아서서 가버리네요.
승종이는 늦은 생일상을 받았지요. 손전화에 남겨져있던 승종의 어머니 음성을 어제야 확인했지요. 지난 8일에 들어온 거였는데, 9일이 생일이라고 축하한다 전해달라는.
"승종아, 넌 생일이 언제니?"
"1월 9일요."
"왜 얘기 안했어?"
"그냥요."
승종이는, 지났으니 안해도 된다 하고 찬종이는, 그래도 해야한다 박박 우긴 게 저녁 먹을려고 줄 서 있을 때였지요.
먹을거리를 만드는 모둠에서 때마다 한가지씩 내놓는 요리가 밥상을 더 풍성히 합니다. 씻고 벗기고 깎고 자르고 썰고 다지는 속에서 환한 아이들이 있는 풍경도 재미난데 보아서 좋고 먹어서 더 좋다지요.
점심 때를 막 건지고 겨울살이 시간이 시작되기 전, 예린이며 희영이며 한무리의 아이들이 과학시간에 만든 온돌을 둘러싸고 있었습니다. 황토로 구들을 마감하고 불을 피우니 정말 굴뚝에서 연기 핍니다. 다예랑 다온이는 장승을 붙들고 있구요, 사택쪽으로 영후, 호준, 석현이 저미 까미를 좇아 뛰어가고, 개울가에는 승찬이랑 도형 기태 한무데기 머스마들이 몰려다니고 있더랍니다. 모둠방에선 나지막히 얘기들을 나누며 배운 것들을 다시 해보고 있고, 책방에선 책장 넘기는 소리만 있었지요.
참, 고요함을 유지하자는 본관에서 뛰지 못해 강당으로 달려온 우리 선수들이 있었지요. 저녁 먹구요. 경민이가 그만 유리창을 깼더랍니다. 그걸 치우는데 우리의 석현 선수도 같이 쓸고 있더라네요.

모둠들이 하루재기를 하는데 1모둠 상범샘네가 열심히 얘기를 나누다가 문득 2모둠이 곁에 없는 걸 알아챘더랍니다. 게다가 옆방까지 비어있는 듯하더랍니다. 다들 어딜 갔나, 무슨 일인가, 그래서 희영이가 건너가보기까지 했다네요.
"다 있는데요."
2모둠은 밤산책이라도 갔나 했더니 책방에 모여있더랍니다. 모두 본관에 들어있는데, 마치 몇 사람만 건물 안에 있는 듯 하더라고. 이제 아이들이 고요함에도 익숙해가고 있습니다.
아, 그리고 아이들 계자가 이제 사흘 남았다는데 너나없이 입이 벌어집디다. 언제 그 긴 시간 다 흘렀냐고.

오늘 한데모임은 지선이와 영환이가 사회를 맡았습니다.
"지선이가 한 번 해봤으면 좋겠어요."
사회를 하겠다고 손들을 들었을 때 멀리 있는 지선이에게 의견을 물었지요. 고개를 젓다가 말지도 모른다싶었는데 웬걸요 해보겠다 나서는 겁니다. 저 아이 저렇게 나오기까지 몇 해가 걸렸네요. 마음 참 좋습디다.
어제 결정된 일들에 대한 자기고백들이 먼저 있었고, 사회자들은 서로 주고받으며 상황을 잘 정비시켜나갑니다. 준비를 꽤 했나 부다 짐작했지요.
사탕을 먹지 않고 가방에 뒀는데 하나를 잃어버렸다는 윤슬이의 하소연, 언니 오빠들한테 너무 많이 업어달라하는 채경이와 경은에 대한 원성, 다음은 가마솥집 앉는 자리에 대한 얘기가 이어집니다.
"인석이가 기태 자리를 맡아뒀는데 기태는 한참 뒤에야 그 자리에 앉았어요. 그 사이 다른 사람이 서 있었는데도 그 자리에 앉을 수가 없었어요."
툭툭 튀어들 나옵니다.
"그러면 나빠요."
"서 있는 사람은 어떻게 해요?"
"인석이는 나가서 사과해야 해요."
얼른 인석이 죄송하다 했지요.
"공식적으로 나가서 제대로 해요."
그래 일어나서 깊숙이 절하고 사과했지요.
그런데, 그러면 서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예의가 아니지 않느냐고 그 사건이 있었을 때 상범샘이 그랬다는데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다, 라고 인석이 말했다지요.
"그래서 화가 났습니다. 그렇게 살면 안될 것 같애요."
역시 툭툭 한 마디씩을 뱉어내는데 인석이가 손을 듭디다.
"친구들이랑 그렇게 말하는 게 습관이 돼서 그런 말이 튀어나왔어요. 사과하고 싶어요."
담백하게 사과하는 인석.
다음은 형아들이 동생들 싸울 때 뒤에서 이런 말 저런 말을 시키는 문제에 대해 얘기가 길었지요. 그런 짓 하지 말자 하였겠지요.
욕설한 시킨 사람들이 앞으로 자진출두를 했는데,
"욕 안할 사람 들어가세요."
우리의 사회자 지선이가 그러데요.
한데모임 끝은 방을 정리하는 거였습니다. 오늘부터 우리는 정리(청소)에 집중하기로 했거든요.
"형아들이 좀 해보지요."
재헌, 승종, 영환, 인석, 승찬, 기태들이 나서는데
"저도 쓸래요."
혜린이와 채은이도 나서고
"나도 쓸고 싶어!"
채경이도 나오네요.
효석이도 손 번쩍 들며 같이 쓴다합니다.
청소도 얼마나 즐거울 수 있는지요...

유상샘의 편지가 닿았습니다. 엽서 한 장과 세이샘 수진샘한테 전한 편지랑 수표 두 장이 들어있습니다. 한데모임에서 읽어주었지요.

옥영경 교장선생님께.
여기 자장면 값을 동봉합니다. 아이들을 위해 쓰일 수 있다니, 제 마음이 참 기쁩니다. 혹 남는 돈이면 학교를 위해 잘 쓰였으면 좋겠습니다.
서울에 도착했는데, 아직까지 그곳 '영동'이 제 마음에 남아있습니다. '지금쯤이면 한데모임 하겠구나, 식사시간이겠구나, 목욕탕을 갔겠구나' 하는 생각에 자꾸만 시계를 훔쳐보게 됩니다. 축하만 받고 학교를 급히 나온 것 같아 마음이 편치만은 않네요. 눈싸움도 더 해보고 싶고 잡식축구 생각도 많이 납니다. 다른 샘들두요.(다들 자장면 곱빼기로 드세요!)
옥선생님이 불러주신 축하노래는 정말 잊지 못할 겁니다. 여러 샘들로부터 아이들로부터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공동체라는 울타리 안에서 부족한 제가 따뜻하게 감싸진 것도 참 감사하구요.
지금의 모습이 금방 금방 변하지야 않겠지만 다음 기회에는 좀 더 물꼬에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건강하세요.

추신: 이제 논두렁이 되어야겠네요.

유상드림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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