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6.24.달날. 맑음

조회 수 458 추천 수 0 2019.08.13 11:38:17


천막을 걷었다. 잔치는 끝났다.

사람들 간 자리 정리하고

부엌에 나와 있던 그릇들을 창고에 넣고

치워져 있던 교실 물건들도 제자리로 보낸다.

다음은 쓰레기를 치우는 일.

사람은 가고 쓰레기는 남으니까.


또 한 친구를 곧 장가보낸다.

보육원 아이들도 자라고 혼인을 한다.

그 아이들이 다시 보육원을 가는 일은 드물어도

물꼬에는 여전히 걸음을 한다.

엄마로 부모 자리에 앉거나

어른으로 주례를 서 달라 부탁해 왔다.

그 아이 다섯 살에 만났다.

위로 누나도 둘 같이 있었다.

요새는 보육원에 오는 아이들도 고아는 드물다.

대개 연고가 있다는 말이다.

부모가 있는 경우도 있고, 나중에 그 부모가 다시 데려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이들은 영영 부모 소식을 몰랐다.

고맙게도 견실하게 잘 커서 대학도 가고 직장도 자리를 잡았다.

그리 크는 동안 간간이 물꼬에 와서 보냈을 뿐인데,

해준 것도 없이 부모로 혹은 어른으로 설 영광이라니!

미안하고, 고마웠다.


연어의 날이 끝나고 몇이 남았다.

시인 이생진 선생님 일당(ㅎㅎ) 승엽샘과 초설도.

이생진 선생님은 속이 불편해서 아침을 걸렀으면 하셨다.

야채죽을 끓였다.

끓여놓으니 너도 나도 한 번 먹잔다.

“밥 있잖아!”

그래놓고 덜어준다.

“죽이 뭔지 알어?”

‘죽은’ 사람 소원 들어주는 거라네. 내참...

또 실없는 승엽샘의 소리, 아재 개그다.


이생진 선생님 일당도 보낸다.

여기 오면 내내 밥 얻어먹는다고

옥선생 부엌에서 떠나게 하자며 황간으로 나가 밥을 사시는 선생님.

머리가 긴 승엽샘, 손끝이 여성 같은 초설, 그리고 이 여자,

여자 셋 거느린 선생님이시라 농을 하며 유쾌한 밥상 되었다.

나는 내 안에 남자 사는데... 하하.


하얀샘이 정리를 도와주러 들어왔다.

교문의 현수막부터 떼 주었다.

달골로 올라 아침뜨樂 미궁의 느티나무에서 아래로 물도 주었네.

그야말로 남은 식구 셋이 늦은 저녁밥상에 앞에 앉았다.

인사도 남았고, 정리글도 남았지만,

사람들이 다 나가고 비로소 연어의 날이 끝났을세.


앗! 오늘부터 마을 수도를 아침저녁 한 시간만 공급하기로 했단다.

가뭄 오래였다.

아이들 드나드는 곳이라고, 혹 물 사정 안 좋을 때 곤란할까 하여

학교 부엌에는 늘 예비로 채워두는 커다란 물통 하나 있다.

덕분에 꼭 물이 나오는 시간에 얽매이진 않는다.

그나저나 사람 많았던 어제도 아니고 오늘이어 얼마나 다행한가.

고마운 삶이라.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sort 조회 수
6596 2024. 3. 5.불날. 비 그치다 / 경칩, 그리고 ‘첫걸음 예(禮)’ 옥영경 2024-03-27 132
6595 2024. 2.11.해날 ~ 3. 4.달날 /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옥영경 2024-02-13 422
6594 2024. 2.10.해날. 힘찬 해 / 설 옥영경 2024-02-13 223
6593 2024. 2. 8~9.나무~쇠날. 맑음 옥영경 2024-02-13 203
6592 2024. 2. 7.물날. 어렴풋한 해 옥영경 2024-02-13 190
6591 2023학년도 2월 실타래학교(2.3~6) 갈무리글 옥영경 2024-02-13 146
6590 실타래학교 닫는 날, 2024. 2. 6.불날. 비, 그리고 밤눈 옥영경 2024-02-13 184
6589 실타래학교 사흗날, 2024. 2. 5.달날. 서설(瑞雪) 옥영경 2024-02-13 141
6588 실타래학교 이튿날, 2024. 2. 4.해날. 갬 / 상주 여행 옥영경 2024-02-11 164
6587 실타래학교 여는 날, 2024. 2. 3.흙날. 저녁비 옥영경 2024-02-11 159
6586 2024. 2. 2.쇠날. 맑음 옥영경 2024-02-11 152
6585 2024. 2. 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4-02-11 158
6584 2024. 1.31.물날. 안개 내린 것 같았던 미세먼지 / 국립세종수목원 옥영경 2024-02-11 149
6583 2024. 1.30.불날. 맑음 옥영경 2024-02-11 141
6582 2024. 1.29.달날. 맑음 / 그대에게 옥영경 2024-02-11 143
6581 2024. 1.28.해날. 구름 좀 옥영경 2024-02-11 142
6580 2024. 1.27.흙날. 흐림 / 과거를 바꾸는 법 옥영경 2024-02-08 162
6579 2024. 1.26.쇠날. 맑음 / '1001' 옥영경 2024-02-08 155
6578 2024. 1.2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4-02-07 152
6577 2024. 1.24.물날. 맑음 / 탁류, 그리고 옥구농민항쟁 옥영경 2024-02-07 14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