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8.16.쇠날. 흐림 / 그대에게

조회 수 471 추천 수 0 2019.09.19 10:49:10


오전엔 안에서 오후엔 밖에서 보낸다.

물꼬의 전형적인 하루흐름이다.

책상에 앉는 것과 몸을 쓰는 일이 균형을 이루도록 하는 것.

물꼬가 상설학교 과정을 밟을 때도 하루 속틀이 그리 엮여 있었다.


주말에 있을 산마을 책방을 위한 청소 이틀째.

달골 햇발동과 사이집에서 내려온 카펫이며 빈백이며를

수행방과 모둠방으로 넣고,

어제 하던 교무실 청소를 이어간다.

녹이 슨 창틀, 거기서 떨어진 쇳가루가 창문 선반에 어느새 또 흩어져 내려있다.

남쪽 창틀을 털어내고 쓸어내고 닦고,

그리고 기름칠을 했다, 붓으로. 재봉틀에 쓰던 기름, 식물성이다.


하얀샘과 기락샘이 달골 햇발동 거실의 걸레받이 떨어진 것을

새로 붙였다. 나무 아니고 접착테이프 같은 거.

미궁에 풀도 뽑았다. 몇 개 눈에 걸리는 큰 것만 뽑자 싶더니

앉으니 또 내리 일이 되지. 특히 이 멧골 일이란 게 그렇다.

근데, 또 벌레에 쏘이네.

왼쪽 발목이 붓기 시작한다. 얼른 사혈을 하였네.



그리고, 그대에게.


오래 소식이 멀었다.

하지만 잊혔던 순간이 없는 그대일지라.

물꼬 바깥식구들을 통해 그대를 향해 계속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그런데도 연락을 않은 것은 마음먹은 일종의 태도였다.

여느 때처럼 통화하고 만나고 얘기 듣고 그리고 얘기를 했더라면

그대가 겪는 어려움을 덜 힘들게 했을 수도 있을 것.

하지만 번번이 같은 문제를 또 겪는 그대를 보면서

이번에는 달라야겠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어려움을 겪고 있는 순간에 조차

거기에서 성장할 힘은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다.

고통이 지나가고 새로운 것들이 싹을 틔워 자라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을 스스로 해낼 때 가장 힘이 있다.

내가 자꾸 끌고 나올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교사는 또 상담자는 문제해결적 관점에서 일을 보도록 훈련되어 온 사람,

어느새 내가 또 그대를 문제로부터 끌어내 올까 봐 경계되었다.

스스로 자신을 만나는 시간을 확보해주고 싶었다.

행동마다에 쉬 평가하지 않고 그저 든든하게 그대를 지켜봐야겠다 생각했다.

무언가를 하지 않고 그냥 있기,

그대를 향해 그저 있기.

내적 힘이 회복되기를 기다리는 게 돕는 거라는 생각.

우리가 우리 생애에서 만나는 어려움은 그것을 겪을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것.

그걸 다 겪게 되면 흘러가 어딘가에 닿으리.

그걸 도와준다는 명분으로 혹여 방해할까 봐 걱정했더란다.

안전한 시간과 공간을 만들어서 자기 경험을 충분히 누리도록 지켜주기.

다만 우리의 침묵 뒤 그대가 하고픈 말을 하리라 생각한다.

지금쯤 그대는 어디에 와 이르렀을까...

나는 기다린다, 늘, 여기서, 그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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