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하늘 좀 보아요!

저렇게 깨끗할 수가, 가을이 벌써 담겼습니다.

아는 게지요, 오늘 산마을 책방(‘우리는 산마을에 책 읽으러 간다’)을 처음 여는 날.

그 시작을 하늘이 같이 해주겠답니다.


해보고 싶었던 일정이었습니다.

일하거나 쉬거나 공부하러 들어오는 멧골에

뒹굴며 책만 읽으러 와도 좋겠다, 그렇게 시작된 일입니다.

책모임을 하는 이들이 같이 와도 좋고,

여기 와서 책모임이 꾸려져도 해도 좋고,

출간기념회도 하고 북토크도 하고

차츰 그리도 넓혀갈 수 있을 멧골 책방.


언제나 아이들은 선물입니다.

얼마 전 여름 계자(164 계자)에 다녀간 언니가 있고,

장애아도 가능한 계자라고 신청을 했다가

지체장애만 가능하단 걸 알고 실망했던, 다리에 어려움을 겪는 동생도 있고,

네 살밖에 되지 않아 혹 다른 이의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될까

엄마가 걱정하는 막둥이가 있습니다.

장애우도 부모가 함께하는 주말학교에는 가능하겠다 했고,

그의 상태가 어느 정도인지 가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다른 가정이 있다면 서로 불편할 수도 있겠다 싶어

한 가정은 다음 일정으로 조율해

다섯이 가족 구성원인 한 가정만이 산마을 책방 그 시작의 문을 열어젖히게 되었습니다.


물꼬의 아이들 일정이 안식년과 한국에서의 제 부재로 지난 2년을 쉬는 동안

손꼽아기다려준 사람들이 여럿이었습니다.

지윤이네만 해도 그렇습니다.

낮버스가 들어오는 정오에 시작하는 모임,

일하는 지현샘과 중복샘은 자꾸 지체되어 애가 닳았다지만

기다리는 이는 기다리는 데 힘 빼지 않고

덕분에 한 곳씩 보이는 구석 먼지를 닦는데 요긴하게 쓴 시간 되었더라지요.

들어오면서 장 목록에서 빠진 걸 챙겨오기까지 하면서

바로 물꼬 내부자 되어버렸더라는!


느지막히들 들어와 떼오 오랑주를 마시고,

마치 오렌지주스인 양 한 망고주스였지만

시럽과 망고와 홍차와 민트와 얼음의 조합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다식으로 놓인 과자에 주영이가 배가 다 불렀습니다.

자, 이제 숨 돌렸으니 물꼬 한 바퀴.

아무리 윤을 내도 윤이 나지 않는 낡은 살림,

그러나 안 하면 바로 표가 나는 오랜 살림,

질서가 있는 이곳을 말이지요.

지윤이가 그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새 것은 새 것의 냄새가, 오래된 것은 오래된 것의 냄새가,

도시는 도시의 냄새가, 시골에는 시골에서의 냄새가 있다고.

엄마냄새처럼 물꼬의 냄새도 있는데, 그게 좋다고!

“지윤이도 지윤이 냄새를 가졌고, 그게 좋단다.”

저녁밥상을 물리고 책을 읽고.

“그래도 책 한 페이지는 봐야지요!”

책에서 눈을 들 쯤 멧골 어둠으로 걸어갑니다.

“괜찮아요, 눈이 밝혀줄 거예요.”

가로등 불빛에서 사슴벌레도 보고.

하늘도 선물을 내주었습니다.

어둠이 내릴 때 빗방울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그래서 장작을 세워두고 우산을 씌웠는데,

밤마실에 나선 우리들에게 말간 얼굴 보여준 하늘.

워커에 몸을 맡겨 밀고 가는 수연,

교문으로부터 1.6킬로미터 오르막길을 그예 끌고

두멧길 너른 데서 드러누워 사람의 소리를 접고 세상을 채운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밤 열한 시에야 학교에 닿았군요.

거의 두 시간에 가까운 밤길이었습니다.

그걸 또 수연이와 주영이가 해냈네요.


학교 마당 쌓인 장작에 불을 붙였습니다.

노래를 답처럼 부르지요.

할 말이 너무 많은 우리들입니다.

이곳은 들은 귀가 많으니까요,

나무도 돌도 사과와 만화도 그리고 사람들도 귀를 쫑긋거리니까요.

아이들과 같이 와도 좋았지만 가족이랑 와서 또 다르게 좋다는 지윤,

이만큼이나 좋을 줄, 이렇게나 좋을 줄 몰랐다는 수연.

재밌다는 주연,

그리고 사람이 그리 많은 게 필요한 게 아니라는 사실을 새삼 되낸다는 중복샘.

지현샘도 말이 넘쳐 말을 잇기 어려웠더랍니다.

만나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만났더랬지요.


자정에야 달골 이르고,

아침 수행에 참여는 어렵겠다고,

깨울 때까지 자 보는 건 어떤가들 하였네요.

그리고 책을 읽다 잠에 들었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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