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9.22.해날. 비바람

조회 수 465 추천 수 0 2019.10.31 23:15:26


이 바람에도 가을의 작은 마지막 달맞이꽃들이 언덕배기에 서있다.

새벽 3시 기준으로 서귀포 남남서쪽 약 380km 부근 해상에서 시고 30km로 북상 중.

강도 강의 중형 태풍이라 했다.

04:30 옥천과 영동에 후우주의보.

04시 현재 영동은 72.5mm로 충북 일대에서 가장 많은 비가 내렸다 했다.

순간풍속 역시 충북에서 가장 강한 9.9m.

시간당 20mm 이상의 비가 내리겠으니 침수와 범람들에 유의하라는 당부가 이어졌다.


비바람...

북쪽에서 남쪽을 향해 스크린이 넘어가듯 비가 바람을 타고 옮아간다.

영화 <매트릭스>의 한 화면을 보는 듯하다.

창고동을 살피고 햇발동 창문들을 점검했다.

사이집을 둘러보다 눈앞의 작은 산을 올려다본다.

나뭇잎일까, 무언가 난다.

크다 해도 나뭇잎일리야.

그제야 새라는 걸 안다. 작은 새다.

작은 몸체가 비바람을 가르고 난다.

새 한 마리 날아오른다.

또 한 마리.

이편에서 아주 작은 새가 또 한 마리 곤두박질치듯 날아 내린다.

비바람에도 일상이 있다.

비바람에도 삶은 계속된다.

비바람에도 밥을 버는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는 일은, 생명을 살아내는 일은, 숭고할 만하다.


키 낮은 풀들이 온몸으로 바람을 탄다.

사이집 가는 편백나무들이 온 세상 바람이 다 닿듯 흔들린다.

지주대가 빠진 나무 하나 있었다.

저러다 뿌리를 드러내고야 말겠다.

이런 비바람에는 우산이 소용없다.

모자가 달린 점퍼를 입고 나서서 창고로 간다.

지줏대 하나를 들고 나와 망치 대신 두드려 박는다.

거기 편백 한 그루를 묶어준다.

사는 일이, 넘어지려할 때 누군가 손 하나 잡아주면 힘이 덜더라.


저녁이 되자 바람이 수그러졌다.

일본과 한반도 사이로 빠진다는 태풍이었다.

북쪽 하늘이 희멀그레했다.

떠나가는 비바람이겠다.

비가 먼저 가고 바람이 따르고 있었다.


자정을 넘기자 바람도 떠났다.

새날이 온다.

날이 밝으면 우리는 비바람이 할퀸 세상에서

다시 살 것이다, 무너진 것들을 일으켜 세우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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