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는 옥상 위 낙엽을 쓸고 내리고

학교 담 너머 남도의 한 산사에서는,

 

스물 가까운 이들이 이른 아침부터 모여 종일 일했다.

너른 산비탈에서 잔디를 심고 돌계단을 만들었다.

못줄을 잡듯 양편에서 줄을 길게 잡고

역시 모를 심듯 잔디들을 심었다.

자꾸 미끄러져 내리면서 자신에게서 나오는 소리 뿐만 아니라

서로 일의 박자가 맞지 않아혹은 방식이 달라 

엇소리들이 나왔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떠나온 이들도 있었다.

수행이고 일이었다.

청장년과 노년 남녀들이 여러 도시에서 모였다.

작은 사회가 되었다.

저마다 산 세월이 있노라고 역시 저마다 말이 많았다.

패와 패가 만나면 뭔가 기선을 잡으려는 움직임도 있고,

거기 조율자 한 사람 쯤은 있다.

작은 헌신이 그 사회를 어떻게 만들어내는가를 본다.

같이 일을 해보면

내가 조금 덜 자고 타인을 위해 주전부리를 챙겨온 이가,

내가 좀 더 몸을 써서 타인의 힘을 덜어주려는 이가,

내가 분위기를 살펴 기꺼이 해서 일이 덜 고단하게 해주는 이가,

갈등이 일면 그걸 풀어주는 이가,

때로 자기가 좀 우습게 되어도 모두를 웃게 하는 이가 있다.

누군가의 너무나 재미없는 표정이 타인들에게 건너가려 할 때

얼른 알아차리고 그에게 다가가 말을 붙이는 이가 있고,

자꾸 자신의 고단을 밀치며

마음을 끌어올려 분위기를 처지지 않게 애쓰는 이도 있고,

여기 있으나 여기 없는 이(몸은 있되 콩밭에 가 있는)도 있다.

어떤 사람일지는 자신이 결정할 수 있다.

말재주가 딱히 없어도 보다 밝은 태도를 유지할 수는 있다.

얼마든지 그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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