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3.10.불날. 비

조회 수 438 추천 수 0 2020.04.12 04:11:32


 

가마솥방 창 아래 꽃밭에선

수선화가 비가 내려도 벙글고 있다.

엊저녁부터 내리던 비는

아침에 부슬거리다가 오후에는 비바람이 되었다.

바람을 타고 이 밤도 내리고 있는.

 

한동안 좀 게을러진 몸이었다가...

이렇게 멧골에 비라도 내리면 그게 더 하다가...

수행을 하고 씻고!

내 시작은 언제나 수행이다.

그러면 힘이 나고,

그래서 또 하는 수행이다.

 

엊저녁에 출판사로부터 

이번 책(<모든 사람의 인생에는 저마다의 안나푸르나가 있다>)의 표지시안이 왔다.

썼던가, 이번 책의 디자이너가 내가 95년 전후께 청담동에서 글쓰기를 가르치던 제자였다고?

그가 공을 들여 세 가지로 그려 보냈다.

몇 사람에게 의견을 물으니 모두 1안이 낫다고. 내 마음도.

이제 마지막 교정본이 넘어오고 내 확인절차를 거치면 인쇄 준비 끝.

코로나 불황이 조금 나아지면 내기로 어제 출판사와 협의.

 

김장독에서 김치를 꺼내왔다.

하다샘과 학교아저씨와 같이 김치를 짜고 비닐에 넣고,

김치통에도 얼마쯤 담았다.

비닐의 것들은 달골 햇발동 냉장고의 냉동실로,

통에 넣은 것은 한동안 먹을 수 있도록 가마솥방 부엌 냉장고에.

다음 김장 때까지 묵은지가 할 일이 많다.

그것은 여름계자에서도 훌륭한 먹을거리가 될.

겨울을 여미는 시간이었다.

 

‘...될 뻔하였던 무언가가 되지 못한 사람들이, 갈 뻔하였던 곳 대신 오게 된 곳에 모여

 하고 싶은 말 대신 해야 되는 말을 나누며 살아갑니다

 일어날 뻔했던 일들은 객관식 문제의 지워진 보기들처럼 그들 곁을 스쳐지나갔습니다

 그런 것들이 보이는 나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습니다.’

짧은 단편을 쓰는 장주원의 글이었다.(원문과 달리 읽기 편하시라고 행갈이)

식구가 물어왔더랬다.

장주원 알아요?”

몰랐다.

sns에서 아주 유명한, 초단편을 쓰는 작가라고.

재밌고, 생각게도 하는 작가랄까.

찾아보니 2014년에 낸 그의 책에는 이런 글도 있었다.

책을 아직 읽은 건 아니고 인터넷에서 본.

 

간만 가려다가(* 이 글 역시 읽기 편하도록 본문과 달리 행갈이)

 

  늘 간만 가라는 어머니 말씀 받들어 키도 딱 간으로 커 

교실에서 간에 앉아 앞뒤의 어이떠이들과 섞이지 않고 공부에 집해 얻은 상위 성적으로 앙대학에 진학한 뒤 

이십대 반에 군대에 다녀와 견기업에 취직하고 삼십대 반에 매로 만난 여자와 결혼해 

아들 건이를 낳아 한 집안의 심이라는 막한 사명 아래 일 독자처럼 살다 보니 어느새 후한 년이 되었는데 

한 덩치의 아내는 이제 일 나갈 때 마조차 않고 

아들은 꾸도 힘든 학생이라 앞으로 갈 길이 첩첩산이요 젊은 날의 꿈은 오리무중이지만 

그래도 소한 가족을 위해 연무휴 죽어라 일해 마침내 산층이 되었노라 감격스레 외치는 도中 

문득 거울을 보니 웬 우충한 노인의 늙은 뺨 위로 흥건한 눈물

 

코로나19로 도서관도 문을 굳게 닫고 있다.

문 열면 찾아보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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