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물꼬.

나는 돌아왔다! 어떤 것에도 견줄 대상이 없는 기쁨이었다.

제도학교의 분교는 방학식을 했고,

그곳 소읍을 떠나 장을 보고 대해리로 들어왔다.

기락샘과 하다샘이 점심부터 들어와 햇발동과 창고동 청소를 하고,

창고동은 이 더운 날에도 여러 시간 장작난로를 피워 습을 없애주었다.

어제였다.

 

긴 비 끝이었다. 담주 또 태풍이 비를 몰고 온다했다.

그런데 이 반짝한 하늘 아래 청계라니!

고마운 날씨, 고마운 하늘, 고마운 물꼬.

아침뜨락을 걷고 기숙사인 햇발동과 창고동을 둘러보고

기락샘과 하다샘한테 두어 가지 일을 일러주고 학교로 내려선다.

 

물꼬 대문에 천으로 된 가방부터 하나 걸었다;

코로나 19로 외부인 출입제한이라고 썼다.

보미샘이 보내온 물건들 가운데 하나였다.

사람들이 이곳으로 챙겨다주는 물건들은

때때마다 그렇게 적절한 자리를 잡고는 해왔다.

지금부터 계자가 끝나기까지는

더 각별하게 사람들이 드나드는 데 신경을 써야 할 것.

 

청계다.

11시면 낮밥 준비부터 해야 하는.

그런데 들이닥친 곰팡이들을 무찔러야 하는.

적어도 부엌을 중심으로 한 공간에서는 미룰 수 없는.

어제부터 이 아침까지 하고도 아직 보이는 곳들이 있는.

사람들이 왔을 때 바쁘게 움직여야 하는 시간이 되지 않도록 하는 부엌인데,

결국 밥을 준비하는 등을 보이겠는 이번 청계일세.

 

사람들이 들어섰다.

기존 청계라면 먼저 참가해본 아이들, 또 물꼬의 오랜 인연들이 함께해서

내가 큰 줄기만 잡고 밥에만 집중하면

저들끼리 꾸려가는 부분이 컸는데,

이번은 또 특별한 청계다.

집안의 애경사로, 혹은 아직 하지 않은 방학에 대한 부담으로,

이제야 기말을 끝내고 기진맥진해서,

여러 까닭으로 걸음들이 어려웠다.

계자(초등)에 새끼일꾼으로 신청해놓고도

그 준비과정이 되는 청계를 오지 못하는 경우까지 있었다.

게다 서울과 경기에서 오기로 한 사촌 둘도 오지 못할 사정이 생겼다.

초등 저학년 때 계자를 신청하고도 못 오기를 두 차례나 했는데,

이번 역시... 인연 맺기가 때로 그리 어렵다.

그런데 참가자 둘이 남원과 구례에서 온다!

전라도 쪽이라면 퍽 어려운 물꼬 걸음인데,

이번에 두 곳, 그것도 바로 맞대고 있는 지역에서 오다니.

청계가 아니 물꼬의 계자도 그렇고, 여러 일정도,

진행하다보면 딱 그 일정에 참가한 아이들에게 맞춤하게꾸려진다 싶음에 놀라고는 한다!

이번 상황도 그 둘에게 이렇게 만나는 게 꼭 필요했달까.

오고가기를 한 집씩 맡기로 했다.

 

맞이를 끝내고

부모님과 함께 물꼬 한 바퀴, 낮밥과 차까지 같이 먹고 마셨다.

결국 해석이다!”

우리가 맞닥뜨리는 모든 정황, 상황에서 우리의 반응은 결국 해석이다.

세상이 어때도 상황이 어때도 그걸 바라보는 것은 나이고, 내 해석이다.

이번 청계만 해도 재미가 있다거나 무료하다거나 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해석입니다.”

어떻게 해석할 지는 자신이 하는 것,

내가 흥미로우면 흥미로운 거고, 내가 가치 없다 싶으면 가치 없는 것.

어떻게 지낼지는 결국 우리 자신이 결정하는 것!”

아마도 너무 신명날 것 같은 이번 청계라.

 

물꼬투어 때면 안내자도 또 다시 되새겨보게 되지.

우리가 이 거친 상황에서 무엇을 하는가, 왜 하는가.

물꼬의 지향이 어떤 의미가 있고,

그것을 아이들에게 혹은 어른들에게 어떻게 전하고 있는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언제나 긴장하고 살 수는 없지만 순간순간이 우리 삶을 이루므로

정성스럽게 살기로.

 

부모님을 보내고, 두멧길을 나섰다.

오랜만의 맨발이었다.

몇 가마니의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이다.

꽃을 따다 가마솥방 안에도 자연을 들이는데,

이번엔 꽃 한 송이 들일 짬이 없더니

우리 걷는 길에 있는 꽃을 따 들였다.

어디쯤서 철퍼덕 앉았는데,

물소리 새소리 벌레들 소리...

낙원이었다!

고민들이 있었다.

학교를 계속 다녀야 하는가,

또 필리핀으로 유학을 가 있다 코로나19로 발이 묶여 이제 어째야 하나,

저마다의 무게를 꺼내놓았다.

고작 하룻밤이나 이곳에서 보내는 시간이

어떤 길을 선택하는데 보탬이 되기를.

 

돌아와 쉬다 밥상 앞에 앉았다.

상을 물리고 아이들이 설거지를 하고.

()단법석부터 있었지.

기타를 치며 물꼬 노래집 <메아리>에 담긴 노래들 몇 같이 불렀다.

서로에게 들려주고픈 노래도 불렀네.

준비해 온 이야기로 시작하는 실타래’.

아이들이 어른들 못잖게 한 생을 사느라 욕보지.

자신을 둘러싼 세계에 대해 저마다 할 말들이 많다.

좀 더 자신을 들여다볼까.

자기에게 숨은 감정 찾기 일정이 이어졌다.

진짜 맞아요!”

정말 자기 바닥의 문제들이 모습을 드러냈고,

혹 그것을 우리가 어떻게 통제할 수 있는가 방법을 찾기도 했다.

자정도 훌쩍 넘었더랬지.

적어도 오늘 밤은 잠을 편안하게 잘 수 있겠다 했다.

내일은 내일에 맡기기로.

오늘 안녕.

 

* 소나기 지난 뒤 저녁 여섯 시를 갓 지난 시간

달골에 무지개 떴노라고 아침뜨락에 일을 좀 하러 들어간 하얀샘이 사진을 보내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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