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의 날들에도 한 번씩 하늘 열린다.

깊은 밤하늘, 남서쪽 하늘에 별 둘 반짝였다.

 

오늘 하루해가 한 번 환하게 나왔는데

그때 대해리로 저녁버스 들어오고 있었다.

계자 준비위 태희샘과 하다샘이 가마솥방에 들어와 잠시 숨 돌리자

깜짝 놀라 돌아볼 정도의 거센 기세로 소나기 땅을 때렸다.

내일은 정환샘도 들어온다.

 

오늘 아주 뜨거운 시간이 있었다.

장애를 가진 친구가 물꼬에 오고 싶은 마음이 너무 간절하여

아주 사무치게 울었다 했다.

장애아에게도 열어둔 계자지만

물꼬의 열악한 환경은 지체장애아를 오라 할 수는 없는.

세 자매 가운데 둘째인 그는

지난해 여름 가족들과 산마을책방 일정에 와서 하룻밤을 보냈다.

그도 이곳을 알고 부모들도 이 불편함을 알며 나도 그 아이를 봤더란 말이지.

어렵게 워커(목발?)를 짚고 다니고 휠체어에 의존도 해야 한다.

그런데도 이곳이 너무 그리웠다고.

언니는 오는데 말이다.

오늘 엄마가 쉬는 날이라 바로 통화가 가능한데도

소리를 들으면 목 놓아 울 것 같아 전화를 못하고 있노라고,

어제 그 어린 것이 사무치게 한 섞인 울음을 토해내 엄마도 같이 울었다고.

그 아이가 내년 여름에는 올 수 있도록

여기 여건(화장실이라도 조금 더 개선된 형태로)부터 만들어보겠다고 문자를 보내고,

백년 뒤 우리는 세상에 없다. 어쩌면 매일 그럴지도. 오직 지금만 있다.”

오늘 그런 말을 하고 있는 한 책을 권하는 구절을 읽었던 참이라.

우리 수연이 전담 돌봄이가 있다면 가능하지 않을까,

한 번 우리 시도해볼 만하지 않을까,

여기 사정으로서도(아이들 수가 적고, 샘들은 물꼬의 정예구성원이라 할)

이번에 가능하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 어쩌면 이 아이 올 수 있도록 맞춤한 계자 아니겠는지.

물꼬의 일정들은 언제나 그때 모이는 이들을 위한 맞춤한 일정이더라는 생각을

요새 한창하고 있었던 참.

혹 하다하다 어려우면 돌아갈 수도 있다는 여지를 두면 되지.

그렇다고 그게 실패이겠는가.

그래도 도전한 우리들은 성공이라.

게다 특수교사가 둘이나 있다.

휘령샘과 아이에 대한 상황을 나누다.

한 세상을 그 아이에게 주고팠다.

물꼬 현재 낡은 구조에선 다시 오기 어려울 기회일 것.

그런데, 언니 지윤이 마음이 괜찮은지,

장애를 가진 동생과 이곳에서 보내는 게 괜찮은지 물어봐 주셔요.”

그리고 언니도 기뻐했다는 소식으로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고 수연이가 오게 되었다!

다음은 물꼬에서 그 아이를 맞을 상황을 최대한 만드는 일.

이 정도의 규모이면 아예 밥바라지를 받지 않고 내가 밥하며 진행할 텐데

든든한 밥바라지 정환샘에 특수교사 휘령샘까지 있어 가능한 시도.

수연이가 오기에 최상의 상황.

날마다의 기적을 이리 체험하는 물꼬라.

 

오늘 책을 소개하는 기사 하나를 읽다.

사소한 것에 목숨 걸지 말라. 세상 모든 것은 사소한 것이다.’

정말 중요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미리 중요한 것으로 정해놓은 것 외의 사소한 것에는

너무 애쓰고, 마음 쓰지 말기.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좀 더 편안하게 바라보는 습관을 갖게 될 때,

비로소 결코 해결할 수 없을 듯했던 문제들이

사실은 쉽게 다룰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을 발견할 수 있다.

일이 흘러가는 대로 맡길 것.

그리고 인생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평온하고 품위 있게 반응하기.

삶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훨씬 부드럽고 온화하게 받아들이기.

어떤 문제에 맞닥뜨렸을 때 온 힘을 다해 저항하는 대신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

평범하고, 우리 알지만, 또 안 되는 많은 일들 가운데 하나라.

 

샘들 상황도 급박하게 돌아가는 게 있었다.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인 세 샘들이 못 오게 되어

그 자리를 갑자기 메울.

신청대기자가 없던 게 아니나 이번에는 아이들이 얼마 안 되니

교사들이 현재 상황에서 빠져도 새로 충원하지 않고 가겠노라 했던 바

아마도 다들 다른 일정을 잡았을.

이리 되면 이번 계자에는 줄 수 없다던 새끼일꾼 자리도 하나쯤 줘도 되겠다.

현진 형님이 붙기로 한다.

결국 교사 자리는 둘 없애는 걸로.

하여 아이 열넷에 어른 아홉이 꾸리게 될 166계자.

여행자보험 건도 상황 끝.

 

이번에는 계자 준비 차례를 좀 바꿔보고 있다.

나중으로 하던 아이들 오기 전 부모 통화와 부엌청소를 앞으로.

일꾼 미리모임을 하는 날, 그러니까 아이들 오기 전날에 보는 장도

하루 더 앞으로 당기기로.

그런 다음 안에서 확 집중해서 일정을 준비하는 걸로.

많지 않은 아이들이라 하나 할 건 또 다 해야지.

이미 왔던 아이네는 시간이 밀리면 통화 한 번 못한 채 그냥 지나가고는 했다.

어제부터 시작해 오늘 저녁 세 가정을 끝으로 부모님들과 통화도 끝.

 

계자 준비위의 가장 큰 소임은 미리모임에 들어올 샘들을 안내할 준비.

시간이 허투루 새지 않게 지체 없이 움직일 수 있도록

청소할 곳을 미리 보고 청소도구를 챙기고 청소법을 정하고 공간을 안내하고...

하여 학교아저씨까지 네 사람이 먼저 공간을 돌며 일 목록을 짜다.

책방을 들어서서는 위험한 한 곳에 버릴 책도 좀 뽑고 소파 위치를 바꾸고 안전라인을 설치하고.

엊그제 낡은 소파를 덮을 천을 좀 샀더랬는데, 자로 잰 것도 아닌데 대략 길이를 재보는데,

세상에! 딱 떨어지는 길이인 거라, 조금도 남은 부분이 없이, 소름끼칠 만큼.

이러니 안 될 일도 된다고 하잖겠는지, 물꼬에서는.

하하 별게 다 신명이 되는 이곳이라.

없이 사는 사람들이 이런 일에조차 이런 신남이 없다면야...

밥상을 준비하는 동안 세 사람이 욕실과 옷방을 살피고.

설거지 뒤 옷방을 마저 정리하고,

나는 남아 있던 교무실 한 켠을 마저 정리하고 허리를 폈다.

 

열 시면 학교를 나올 줄 알았더니 웬걸, 역시 또 자정이었다.

일단 글집은 달골에서 마무리 합시다.

모든 걸 이 상태로 그대로 두어 내일 이어가기로.”

이런 날 하필 차가 없다니.

여름과 겨울 계자 앞에서는 혹 다급한 상황이 생길 때를 대비하느라

낡은 차여 더욱 꼭 점검을 하는데,

마침 아침뜨락 풀을 좀 정리해주고 나가는 준환샘 편에 차를 보냈네.

대신 두고 간 화물차가 없는 건 아니었으나

그걸 꼭 끌고 오를 만치 먼 곳도 아니고.

그런데 수로에서 내몰린 흙이 만든 뻘 구간이 있었던 거라.

슬리퍼로 걷던 하다샘이 미끄덩, 살짝 긁혔다.

아고, 그대가 액땜하네. 어릴 때도 꼭 그랬는데...

자전거랑 밭으로 날아가고, 낫에 발가락 베고, 손바닥에 나뭇가지 박히고, ...

넘의 애가 다치면 그 마음이 어떨 거야, 내 새끼가 다치는 게 낫지.”

엄마 맞나?”

어제부터 뭔가에 불안이 살짝 스미는 게 있었는데,

하하, 그걸 그가 털어준 듯한, 정말 그런 마음이 들은 거라.

딱 고만만 슬리고 까져 다행한.

한 시간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일일란 게 기본으로 필요한 시간이 있는 거라.

모둠을 짜느라 시간을 좀 들이고

2시가 다 돼 일이 마무리되었던가.

이걸 긴 시간 희중샘이 들어오면 혼자 밤을 새며 하던 일이었더라.

이제 하다샘이 이어가고.

 

소연샘과 현택샘이 함께 못하는 대신 마음을 더한다며

수박을 한 통씩 보냈단다.

어제는 수진샘이 유기농과자를 보냈다더니.

여기 거의 모든 일정이 그러하듯 166계자에도 마음들이 쌓이고 있는.

아이들에게 겹겹의 안전망을 두르는 듯한.

 

더워서도 안 되겠네, 길어 무거운 머리를 한밤에 자르다.

외국에서는 당연했던 일이 한국에서는 꼭 미용실로 가게 되었는데,

이번에는 그리.

가벼워진 머리로 가볍게 계자의 장도에 오르리.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6596 2024. 3. 5.불날. 비 그치다 / 경칩, 그리고 ‘첫걸음 예(禮)’ 옥영경 2024-03-27 104
6595 2024. 2.11.해날 ~ 3. 4.달날 /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옥영경 2024-02-13 387
6594 2024. 2.10.해날. 힘찬 해 / 설 옥영경 2024-02-13 201
6593 2024. 2. 8~9.나무~쇠날. 맑음 옥영경 2024-02-13 177
6592 2024. 2. 7.물날. 어렴풋한 해 옥영경 2024-02-13 158
6591 2023학년도 2월 실타래학교(2.3~6) 갈무리글 옥영경 2024-02-13 122
6590 실타래학교 닫는 날, 2024. 2. 6.불날. 비, 그리고 밤눈 옥영경 2024-02-13 157
6589 실타래학교 사흗날, 2024. 2. 5.달날. 서설(瑞雪) 옥영경 2024-02-13 118
6588 실타래학교 이튿날, 2024. 2. 4.해날. 갬 / 상주 여행 옥영경 2024-02-11 144
6587 실타래학교 여는 날, 2024. 2. 3.흙날. 저녁비 옥영경 2024-02-11 133
6586 2024. 2. 2.쇠날. 맑음 옥영경 2024-02-11 125
6585 2024. 2. 1.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4-02-11 133
6584 2024. 1.31.물날. 안개 내린 것 같았던 미세먼지 / 국립세종수목원 옥영경 2024-02-11 128
6583 2024. 1.30.불날. 맑음 옥영경 2024-02-11 113
6582 2024. 1.29.달날. 맑음 / 그대에게 옥영경 2024-02-11 121
6581 2024. 1.28.해날. 구름 좀 옥영경 2024-02-11 120
6580 2024. 1.27.흙날. 흐림 / 과거를 바꾸는 법 옥영경 2024-02-08 134
6579 2024. 1.26.쇠날. 맑음 / '1001' 옥영경 2024-02-08 126
6578 2024. 1.2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4-02-07 129
6577 2024. 1.24.물날. 맑음 / 탁류, 그리고 옥구농민항쟁 옥영경 2024-02-07 131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