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2.15.불날. 맑음

조회 수 319 추천 수 0 2021.01.13 23:51:58


새벽온도계는 -13을 가리키고 있었더랬다.

간밤에는 자정 가까운 시간에 마른 눈발이 흩날렸다.

02시에 내다보니 계속되던 눈발.

아침에 깨어서 문을 여니 살짝 밀가루처럼 뿌려져있었다.

이곳의 첫눈이라고 하자.

꽁꽁 얼어붙은 아침이었다.

말도 다 삼켜버릴 듯한 기세였다.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이 언 것 같은.

그래도 볕이 좋아 한낮에는 산 아래 쪽 눈은 거개 사라졌다.

 

습이들이 웃긴다.

둘이 하도 싸워 따로 산책을 시키는데,

대체로 형아인 제습이를 먼저 데리고 간다.

학교 가장자리를 빙 돌고 운동장 쪽으로 나왔을 적,

주머니에 있던 간식 하나 주었네.

그때 멀리서 보고 있던 가습이가 외쳤다왜 나는 안 줘요왜 걔만 줘!

그래서 나도 외쳤지기다려!

그래도 늘 성마른 가습이답게 몇 차례 더 소리치다

외면하니 제풀에 꺾였더라.

 

아들이 저녁버스로 들어와 저녁밥을 먹고 떠났다.

혼자서 밥해 먹어가며 공부하는 일도 쉽잖을 게다.

엄마 밥엄마 밥 노래하다가

오늘 새 차를 가지러 들어와 밥을 먹고 나섰다.

아비 차가 엊그제 고속도로 눈길에 다중추돌 현장 안에 있었다.

폐차하기로 결정했다사람은 말짱했다.

마침 차가 두 대 있는 상황이어 당분간 쓸 수 있도록 새 차를 가져가기로 한 것.

(16년으로 넘어가는배출가스 5등급차인 경유차는 환경오염 때문에도 폐차 계획이다.)

이 상황에 대한 준비였던 양 마침 지난 쇠날 새 차가 들어오지 않았겠는가.

이도 물꼬의 기적이라고 하자.

 

야삼경에 이 멧골과 저 남도에 사는 벗들이 문자를 주고받고 있었네.

세상이 아주 꽁꽁 언 며칠따숩게!

여기까지 꽁꽁 얼어붙었으니 거긴 말해 뭐해.

발이 시려서 그렇지 괘한터라.

최근 대처 식구 하나 눈길에 난 사고 소식도 전하고.

-어쨌든 마침 딱딱 잘 맞아떨어지고 다행하고 그런.

 눈길은 장사 없음그냥 안 움직이기정히 어쩔 수 없으면 대중교통.

-천만 만만 다행이다눈길사고.

 몸이 크게 안 상했다니 정말 다행많이 놀라셨겠다모두 다.

 그 와중에 차가 딱딱 맞아떨어진다는 무한긍정이렇게 훌륭한 사람이 내 친구다!!

별 것도 아닌 일로도 우리는 서로를 고무시켜준다.

친구니까나이 들어가는 우리에게 필수인.

벗이 엊저녁 영화를 하나 보고 잤는데 통 생각이 안 난다고 한탄하였네.

-생각 안 나는 영화별거 아니라서 그런 거임 :)

 정말 중요한 건 마음에 새겨져서 잊힐 수가 없음.

 우리 인생의 많은 것들은 그처럼 생각 안나도 별 중요치 않은 사소한’ 것임!

 우리가 늙어가면서 기억이 둔화되는 건

 생에서 꼭 기억해야 할 게 몇 개 없다는 뜻일지도.

 예컨대 예쁜 내 친구 얼굴그런 거~

-그래 그래 맞아!

 그 몇 개만 안 까먹으면 됨!!

 

강제순환모터를 돌리기도 하지만

혹 얼어버려 겨울 일정에 문제가 있을까 걱정한 학교아저씨는

영하 20도에 가까운 요 얼마동안 

아침저녁 본관 뒤란 화목보일러에 장작 몇 개씩 집어넣고 있다.

 

코로나19가 어느 나라 일인가 싶게 먼 이야기였다가

물꼬 겨울 일정들 때문에 계속 살피게 됨.

오늘 코로나 신규확진자 1,078

지난 12일 1,030이었다가 이틀 718, 880명 다소 주춤했다가 다시 1천을 넘은.

계자는 무사히 열릴 수 있을 것인가.

물꼬의 숱한 기적에 또 기대본다... 

물꼬는 늘 사람의 일이 아니었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596 에넥스 부엌가구 옥영경 2003-12-20 2460
6595 똥 푸던 날, 5월 6일 옥영경 2004-05-12 2459
6594 서울과 대구 출장기(3월 5-8일) 옥영경 2004-03-10 2440
6593 새 노트북컴퓨터가 생기다 옥영경 2003-12-10 2422
6592 6월 6일, 미국에서 온 열 세 살 조성학 옥영경 2004-06-07 2410
6591 대동개발 주식회사 옥영경 2004-01-01 2407
6590 성현미샘 옥영경 2004-01-11 2386
6589 122 계자 이튿날, 2007.12.31.달날. 또 눈 옥영경 2008-01-03 2359
6588 경복궁 대목수 조준형샘과 그 식구들 옥영경 2003-12-26 2357
6587 새금강비료공사, 5월 11일 불날 옥영경 2004-05-12 2341
6586 김기선샘과 이의선샘 옥영경 2003-12-10 2318
6585 장미상가 정수기 옥영경 2004-01-06 2306
6584 아이들이 들어왔습니다-38 계자 옥영경 2004-01-06 2301
6583 물꼬 사람들이 사는 집 옥영경 2003-12-20 2294
6582 장상욱님, 3월 12일 옥영경 2004-03-14 2287
6581 눈비산마을 가다 옥영경 2004-01-29 2275
6580 주간동아와 KBS 현장르포 제 3지대 옥영경 2004-04-13 2238
6579 1대 부엌 목지영샘, 3월 12-13일 옥영경 2004-03-14 2209
6578 3월 15-26일, 공연 후원할 곳들과 만남 옥영경 2004-03-24 2205
6577 [바르셀로나 통신 3] 2018. 3. 2.쇠날. 흐림 / 사랑한, 사랑하는 그대에게 옥영경 2018-03-13 2199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