흐렸다.

정오를 넘기며 먼 산에서 눈발이 묻어오고 있었다.

3시쯤 마을에 눈 휘몰아쳤다. 1시간을 내렸다.

대처로 나갈 식구들을 위해 반찬들을 쌌다.

손이 재야했다.

 

물꼬식구들을 위해 집안 어르신 한 분이 곰국이며를 보냈다.

바깥식구 하나가 마침 남도로 출장을 다녀오는 길과 어르신 댁이 멀지 않아

그곳을 들렀다 여기까지 실어주었다.

여기저기 움직여주는 손발들이 있어

이 멧골 살림이 평안히 돌아간다.

가져온 걸 풀고 정리하는데 걸리는 시간이 꽤 되었다.

그걸 싸고 묶는 데는 또 얼마나 마음 쓰고 애를 쓰셨을 것인가.

고맙습니다. 식구들 겨울 보신 잘 시키겠습니다.

 

품앗이샘 하나가 오래 물꼬에서 갈 오래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리 좀 잡고 통화해야지, 그러다 며칠이 흐르고 달이 흐르고...

못한 전화가 못 가고 그렇게 시간이 마냥 흘렀다.

코로나를 이제야 실감한다 싶은 요즘,

모든 게 멈춘 것 같다는 것이 어떤 분위기인가 이제야 또 짐작이 가고,

그러면서도 이 멧골은 고즈넉했기에 새삼스러울 것 없이 너무 아무렇지 않게 일상이 흐르고,

수행하고 일하고, 낡은 살림 여기저기 수리하는,

걸음 바쁨 여느 날과 다르지 않게 종종거리며 다니던 날들.

며칠 전에야 겨우 문자 오갔다.

20년도 한참 더 넘은 물꼬의 품앗이이자 논두렁인 그라.

전화 기다리다... 이래 안중요한 사람이었나보다 라는 생각이 불쑥 들기도 했더라는요.

내가 놓치면 저라도 하시겄지, 그렇게 또 보내버렸던.

  사람 생이 그 유한성으로 허망하고, 그래서 또 아름다울진대

  유달리 요새 사는 일에 대해 새삼 관망하게 되네.

  이 나라 상황이 아니라도 코로나로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소식을 계속 들어 그렇겠지.

  그러며 내 소중한 벗들을 더욱 그리워하였네.

  (...) 저 살기 바쁘고 제 삶의 몫으로 다 무거울 것을

  누가 이 산골 삶을 같이 걱정해주고 살아주더란 말인가.

  너무 가까운 마음이라 소중하단 말을 너무 아꼈던가 싶은 후회 비스무레한 감정이 다 생겼던.

오늘밤은 그예 통화를 하다. 1시간이나.

주마다는 못 와도 걸러 가며 와서 심리치료를 원하기도 했다던.

앞뒤 상황들을 서로 살폈고, 볼 날을 꼽아도 보고.

내가 물꼬 역사에 함께한 이들에게 얼마나 고마워하고 애정하는지!

이제 그들을 자식들을 내가 돌보리, 그런 마음으로 지내나니.

 

애동지에는 팥죽 대신 팥시루떡을 먹는다지만

우리는 팥죽으로 동지를 난다.

팥죽을 나누려 한 할머니 댁에 전화를 넣었다.

경로당이 잠긴지 오래,

대개 몇 분은 그 댁에 계시고는 하니.

다들 갔다길래 당신이라도 두고 드시라 나누려는데,

먹은 걸로 할게 하셨더랬네.

코로나 때문에 사람 드나드는 걸 경계한다는.

3차 확산세인 기세에이 멧골에서도 드디어 모두 방역당국의 말을 잘 듣고 있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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