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대비를 밀고 아침이 왔다.

한 달 치 비가 다 내릴 듯한 밤이었다.

아침뜨락을 걸으며 마지막 점검.

내일 아침 이 공간을 쓸 때까지 들여다볼 짬이 없을 것이므로.

기계가 돌기도 했던 공간에 그 기운을 덮는 사람 발자국 남기는 걸음이기도.

가벼운 아침밥을 아고라 돌의자에서들 먹었다.

진주샘 규명샘 재훈샘은 느지막히 일어나 따로 챙겨드십사들 하고.

점주샘한테는 꼴레우스 한 판을 창고동 벽 아래와 측백후원 기념석 앞에 심으시라,

아리샘은 느티나무동그라미 한가운데 라탄 모빌을 더 채워 걸어주시라 이르고

학교로 서둘러 내려가다.

 

앞치마부터 하고 부엌으로 들어가기 전 혹시 본관에서 놓친 건 없는가 둘러볼 참인데,

아무래도 자꾸 당기는 데가 있는 거라.

아차차차차, 베갯잇! 맡은 이가 놓쳤던 거라. 으째 더 서둘러 내려오고 싶더라니.

으라차차차차찻! 하면 되지.

, 다행하여라, 날씨 좀 봐. 흐리다 정오 지나며 비 떨어진다 했는데,

날이 괜찮다. 오후까지 그럴랑가 몰라도.

일단 빨자. 빨지 않는다고 대안이 없는 건 아니다.

수건을 다 깔아 쓰면 될 것이다.

하지만 빨아서 말리지 못하더라도 같은 식으로 하면 되잖겠는지.

모든 일을 멈추고 베갯잇을 벗기고 세탁기에 투척하고.

용케 마른다면 모두가 청소 끝내고 저녁 밥상에 앉기 전 베갯잇을 넣으면 될.

 

연어의 날 중심모임은 저녁을 함께 먹는 것부터이나

11시부터 사람들이 들어섰다. 같이 행사를 준비할 것이라.

유설샘과 미루샘네 들어서는 시간에 맞춰 낮밥을 냈다.

오라기도 그렇고 간다기도 그런 이태의 코로나19를 지나

세 아이들을 앞세우고들 오시었네.

미혼인 그들이 일가를 이룬 세월을 보았더랬다.

낮밥으로 아이들 포함 스물둘이 열무국수를 먹었다.

아쿠, 김칫국물에 소금을 넣는 걸 놓쳤는데,

대신 반찬을 잘 챙겨먹었노라 인사하는 이들.

물꼬 사람들이 그렇다.

가마솥방에 땀을 흘리며들 앉아서도

어느 누구 하나 선풍기를 틀 생각을 않았다.

여름은 덥지, 겨울은 춥고,

그게 자연스러운 곳, 물꼬가 그렇다는 걸 아는 물꼬 사람들이라.

더위 한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면 정작 그리 덥지도 않은.

멧골이 그렇다.

 

김서방 오셨네!”

늦은 낮밥을 또 챙겨냈다. 윤실샘네 가족이 밥을 못 먹고 왔단다.

이런 날은 제 시간에 밥 먹어주는 게 돕는 거지,

라고 한소리 해주고 얼른 차려냈더라지.

대학을 다니며 물꼬에 손발 보탰던 그들이고,

연애할 때보았고 혼례를 올렸고 두 아이를 낳았고 그 아이들이 물꼬에 오고 있다.

작은 아이 윤진에게 나는 할머니급이어

그의 아빠인 영진샘을 김서방이라 부르고는 한다.

윤실샘을 먼저 만났으니까 윤실샘 기준.

우리는 그렇게 긴 세월을 동행하고 있다.

 

울력 두 패.

아이들이 놀 동쪽개울 가는 길을 정비하고 수영장을 치고

마당에 타프를 치고 의자들을 내놓는 일,

그리고 본관과 고래방 청소.

일종의 수행이었다.

그저 청소가 목적이라면 준비위 손발로 못해도 반나절이면 끝냈을 것.

몸을 써서 흠뻑 땀 흘리는 개운함을 우리 너무 한참 잊지는 않았는지.

청소 너머 청소. 그건 밥 너머 밥과 같은 말이다.

단순히 지저분한 걸 치우는 청소가 아니고 단순히 배고픔을 면하는 밥이 아니란 말.

이 시대의 청소는 이제 청소를 담당하는 사람의 손으로 넘어갔다.

좋게 말하면 전문인에게 넘어간 거네.

집에서 태어나고 죽던 일도 집밖을 나가 그것을 맡은 이의 손으로 넘어가더니

심지어 밥도 청소도 우리 그러고 산다.

어떤 면에서 효율일 테지.

그런데, 그러는 동안 아이들에게 우리가 놓친 건 없었나.

내 삶이 영위되는 데 필요한 것들이 무엇인지 모른다,

분업의 이름으로 세상이 돌아가면서.

하기야 밥, 그거 별거 아니다. 뭐라도 끼니를 때우면 되지.

그런데 그건 그저 밥일 때의 이야기다.

밥상에 정성이 있었고 이야기가 있었다.

청소는 또 어떠한가.

내 집에서 치우면, 내 집만 깔끔하면 거기서 나온 것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없는 시절이다.

똥이 그렇다. 내 집에 똥이 없다고 지구에서 사라지는 게 아닌 걸.

심지어 물티슈 한 장으로 모든 청소를 다 해결하기도 하더라.

그것은 변기에 내릴 수도 없는 플라스틱 재질이다.

청소기가 있다. 굳이 쓰라고 하지 않았다. 어쩌면 그게 있는 줄 모르는 물꼬 사람들도 있을. 가능하면 몸을 동력으로 쓰려하니.

기꺼이 낸 마음으로 몸을 쓰기.

하루쯤이야 우리가 청소에 담긴다 한들.

아이들도 같이 했다.

요새 아이들을 만나보면 의외로 청소의 경험이 흔하지 않다.

쓸고 걸레를 빨고 닦고, 일상 일의 과정을 나누고 싶었다.

그걸 같이하고 싶었다.

놀고 먹는 걸 넘어 같이 땀 흘리며 맺는 연대의 관계.

인사를 그리 대신하며 서로를 익혔더라.

 

참으로 유설샘네에서 온 수박과 윤지샘이 사온 도넛을 먹었다.

냉동실을 나와 찌려던, 보은취회에서 왔던 떡은 다시 집어넣고.

대구 윤지샘은 그런다. 맛난 게 있거나 어디 좋은 게 있다면

꼭 물꼬에 챙겨 들고 온다. 그런 건 주머니가 넉넉하기 때문이 아닌 줄 안다.

태희샘도 그렇다. 번번이 등록비에다 간식비를 더해 보내오고,

잔치에서 서로 나눈 게 아니어도 따로 꼭 뭔가를 챙겨오는데, 이번에는 골뱅이까지.

그때 시인 이생진선생님과 가객 승엽샘 등장.

아흔 넷 노구를 이끌고 연어의 날을 축하하러 오신 이생진 선생님은

새로 낸 시집 <나도 피카소처럼>을 내미셨다.

 

저녁 한솥엣밥.

시래기국은 진즉에 끓여두었고, 칠절판을 냈다. 네 사람 앞에 한 접시.

점주샘의 적극 추천이 있었다.

“(물꼬 와서) 내가 먹어보니 맛있어서 같이 먹고 싶더라고!”

당근 오이 석이버섯 황지단 백지단 고기, 그리고 밀전병.

밀전병을 몇 장을 부쳤더라...

한 사람당 4장씩은 먹을 수 있게 하자 했는데.

마흔 하나 가운데 영혼참가한 서현샘과 용욱샘이 없고,

출장에서 늦는다는 기락샘과 갑자기 겹친 일정에 못 온 까치 재형샘이 빠지니 서른일곱,

아홉 접시면 되었네.

곁에서 아리샘이 전병이 붙지 말라 오이 조각을 둘씩 열심히 깔았다.

찬으로는 배추김치와 취나물볶음과 오징어채와 머윗대장아찌를 내다.

후식은 참외로.

 

저녁 8시 고래방으로 넘어갔다.

시인 이생진 선생님과 가객 현승엽샘의 축하공연.

말씀과 시와 노래는

연어의 날 축하이면서 물꼬 33주년에 대한 찬사이기도 했다.

(승엽샘이 살짝 알려준, 내막이 있는 축하연이었다.

이생진 선생님이 강연록을 두고 오신.

그런데 오래 호흡해온 두 분이 아니신가.

승엽샘이 그랬다지, “선생님이 운자만 띄우세요...”

그렇게 열린 무대였던!)

당신들이 물꼬에 딱 10년을 함께한 6월이다.

연어의 날은 시와 노래가 있는 ()원하게 젖다’(시잔치)가 모태였던 셈.

몇 해의 시잔치를 지나 연어의 날로 이어졌던.

샘들과 내년 6월도 기약한다. 아흔 다섯이 된 선생님이 오실.

(이 자리 가장 어린 아이는 진주샘 뱃속의 4개월 바나나였더라)


실타래-난상토론’.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일정이 있는 건 아니다.

우리(어른들)가 그 아이들이었고 연어로 돌아왔다.

이 아이들 역시 그런 세월을 살 것이다.

우리 어른들이 사이좋게 평화롭게 지내는 시간을 고스란히 아이들이 볼 것이고,

하여 우리는 지금 우리들의 시간에 집중하면 될 것.

아이들에게는, 어른들의 이야기가 지루하면

저들 편한 대로 본관으로 건너가십사 일러두고.

 

사람책’, 자기 꺼내고 알리기부터.

물꼬 10년 세월은 명함도 못 내민다던가.

20년 인연도 넘쳤다.

나이 스물에 와서 마흔 중반이 된 이도 있었고,

대학생 때 품앗이로 와서 혼례를 올리고 아이가 태어나고 그 아이가 이곳에 오고,

계자 아이로 와서 새끼일꾼이 되고 품앗이가 되고 논두렁이 되기도 하고,

보육원에서 인연을 맺어 성인이 된 이들도 셋이나 있었고,

아이를 계자에 보낸 인연으로 학부모에서 논두렁으로 십년도 훨 넘어 된 이도 있었다.

초등 계자로 시작해 청소년 새끼일꾼이 되고 스물이 되면서 품앗이가 되고

그리고 논두렁이 된 예는 거의 물꼬 사람의 정석이랄까.

새 얼굴도 있었다.

아이를 계자에 보내고 그 아이를 따라 온 부모님.

고맙다, 한 세월을 우리 동행해서,

그래서 서로를 지켜보고 성장할 수 있어서,

그리고 깊은 골짝에서 오늘 이리 마주할 수 있어서.

내 뒤에 그대가, 그대 뒤에 내가 있다!

 

이어진 실타래-난상토론’.

물꼬가 현재의 학교터를 26년 동안 써왔다.

도교육청에서 매각을 결정한 상태,

물꼬는 올해 말에 임대계약이 만료된다.

물꼬가 매입할 것인가?

넘의 살림이라 하지 못했던 일은 얼마나 많았던가.

이제 내 집이 된다면 하고픈 것들 맘껏 하겠다고 신바람도 나지만

매입만도 만만찮은 규모에다 그런 일들까지 할 여력을 만들 수 있을까?

아니면 학교터를 놓고 달골로 가야 할까?

오래 전부터 그걸 염두에 두지 않았던 건 아니나

5년은 더 현 상태의 계자를 하자고 마음먹었던 바 있어

이번 사안은 뜻밖의 일이 찾아들었던.

오늘 실타래의 주제는 이것.

대체로 대표자가 결정을 하고 이런 이야기를 꺼내지 않느냐 하던가.

아니다. 마음이 왔다갔다 한다고 대답했다.

이 자리가 영향을 줄 수 있을 것이다.

생기고 스러지고 일어나고 사라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지금 최선을 찾고 애써보는 것, 중요한 건 그런 것.

누구는 이 학교터를 계속 지키고 싶어했고,

누구는 너무 고생이니 이제 그만하라 말렸다.

으뜸으로 중요했던 건 물꼬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일을 공유하는 것이었다.

해결은 그 다음. 어디로든 흐를 테니까. 공간도 인연이 다 했으면 바뀔 수 있는 거니까.

그것을 통해 각자의 삶을 결국 말하는.

그것을 바라보는 것에 따라 내가 어떤 생각을 어떻게 하고 있는가가 담길 테고

결국 자신의 삶에서 물꼬가 무엇인가 물어볼 수도 있을 테고.

물꼬를 더 세밀하게 안내하는 자리가 될 수도 있고.

 

실타래가 끝난 뒤 한 사람이 말했다.

이런 광경을 처음 본 것 같다고,

한 가지 사안에 대해서 자신의 생각을 모두가 끌어내고 있더라고.

어떤 사안을 두고 무르익을 만큼 헤아려 충분히 잘 의논함을 이르는

난상(爛商)토론의 전면을 보았다는 말로 들었다.

물꼬가 그런 곳이다!

자신과 다른 사람을 기꺼이 맞아들이는 마음을 낸다.

깊은 경청과 온화한 시선과 정성껏 말하기가 있는.

7학년 소울이가 아이들대표로 질문해주었더랬다. 그의 대활약.

그 시간 우리들(어른들)에게 흐르고 있던 기류가 그 아이에게도 큰 배움이었으리.

또한 여러 사람이 말해 왔고, 말했다.

옥샘이 계신 곳이 물꼬예요!”

우리에게 학교터가 어디냐는 그리 중요한 문제가 아닐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들었더라.

 

장작놀이’.

불싸라기가 하늘에 닿아 별로 부서져내렸다.

불가에서 춤명상 한 마당 해도 좋으련

뭘 하지 않아도 아쉬울 것 없는 불.

()단법석이 이어졌다.

인교샘이 치즈에서부터 마른안주를 담아내고

세아샘이 오꼬노미야끼를 부쳐내고

점주샘 아리샘이 과일을 내고

골뱅이 무침도 나오고.

어느 쯤에서 우리들은 연어의 날 전용노래처럼 아카펠라식 군밤타령도 불렀다.

할 때마다 엉키는 지휘자의 헛갈림조차 구색이 된.

새벽 2시가 넘었는데 가마솥방에서는 목소리들이 더 커졌고,

마당에는 수범이와 윤진이가, 하다샘과 다윤샘이

평상과 의자들을 기대 별똥별을 담고 있었다.

아침의 신속한 움직임을 위해 달골에 차를 두고 내려오다.

아이들이 야삼경에도 쿵쾅거렸다. 먼저 잠자리로 갔을 이들이 불편했을 것이다.

하지만 굳이 말리지 않았다.

우리 생에 하룻밤쯤 그 아이들을 위해 내주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허용.

만약 아주 어린 아이가 있었다면 그 아이를 맨 먼저 헤아렸을 것이다.

다만 타인을 살피지 못한 그 밤의 광란에 대해 당사자 아이들에게는 말해주어야겠다.

하룻밤 그대의 신남을 위해 다른 사람들이 참아주었다고, 고마운 일이라고,

그리고 늘 그럴 순 없다고.

 

아침 닭이 울었다...

 

* 잔칫상을 같이들 마련했다;

수박-희중, 국수-진주 규명, 참외와 자두-준한, 소주-재훈, 맥주와 수박-유설, 커피-휘령,

아이들 먹거리-윤실 영진, 캔맥주-기표, 맥주안주와 치즈-인교, 막걸리와 골뱅이-태희,

골뱅이-수진, 아침밥상(+ 새참 도넛)-윤지, 점심 샐러드-은서 선호, 야채-소영, 와인-다윤,

오꼬노미야끼와 식빵과 우유-세아 화중, -보은취회, 차도구- 아리, 화장지-이생진 현승엽, 김치-이장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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