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계자 첫날 1월 26일 달날

조회 수 1727 추천 수 0 2004.01.29 22:01:00
< 또 어떤 보름이려나 >

1월 26일 달날 얼어있어서 뿌연 맑음.

다시 오는 아이들이,
커서 돌아온 아이들이,
혹은 아이적 이곳을 거쳐 어른이 된 일꾼들이,
물꼬를 증명하고 물꼬를 살립니다.
지난 38 계자에 다녀간 호준이가 또 왔어요.
"왜?"
어느날 운전하고 있는데 전화가 왔습니다.
그날따라 손전화를 챙겨가고 싶더라니...
"선생님 너무 보고싶어서요."
물꼬에 오니 자기가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된 것 같더라나요.
그래서 또 왔답니다.
학교 세우는 일에 잘 쓰라고 부모님이 무리해서 배움값도 다 내주시고.
38 계자를 다녀간 놈들이 호준이처럼 물꼬 증후군을 앓고 있다합니다.
예린이는 물꼬 꿈을 날마다 꾼다하고...
누나 휘주가 일곱 살에 계자를 오던 서울역,
쫄쫄거리며 배웅을 나왔던 네 살바기 인원이가
곧 4학년이 된다 합니다.
울퉁불퉁하던 머리모양새가 번듯해져서 왔어요.
기표는 초등 3년 때부터 봄이고 여름이고 빠지지않고 왔다
꿈에 그리던 새끼일꾼이 되었지요.
그도 이제 중 3입니다.
품앗이일꾼이 그의 다음 꿈이랍니다.
지금도 계자를 오는 것이 설레어 설레어 잠을 설친다고.
스물의 혜윤샘은 더 오래된 물꼬 졸업생입니다.
아직 학교가 대해리에 자리를 잡기 전,
96년 수안보에서 열었던 열 번째 계자에 초등 6년으로 왔다가
이듬해 중 1인데도 굳이 참가하고프다며 다시 왔더랬지요.
새끼일꾼으로는 함께 못했지만
품앗이 일꾼이 되고프다 품고 살았더랍니다.
그 자리를 못잊어 차마 못잊어.
형길샘, 97년 고 3때 처음 물꼬를 알아 드나들다
대학생이 되어 품앗이 일꾼으로 힘을 보태고
군에서 휴가도 물꼬로 오더니 어느새 머잖아 졸업입니다.
대학의 그 많은 방학을, 그리고 주말을 물꼬에서 보냈더라지요.
군에서 칡을 캐서 나른 적도 다 있고.
밥을 좀 많이 먹는 걸 빼면
몸쓰는 게 너무나 훌륭한, 나무랄 데 없는 일꾼입니다.

"딱 우리 학교 규모네."
그래요, 4월에 상설학교로 문을 여는 자유학교 물꼬의 규모가 이러하겠습니다.
고아원 광주 성빈여사와 서울 오류애육원에서 이번 참에는 하나만 왔습니다.
그러니 아이들이래야 열 다섯.
그 가운데 2004학년도 자유학교 물꼬 입학 절차를 밟고 있는 아이 여덟.
38 계자에서는 딱 열이었지요.
1차 선발과정 스물 가운데 둘 빼고는 다 보름을 살아보는 겁니다.
그런데 안동의 구영이 구슬이가 할아버지 병상에 계셔서 아직 못오고
('하다'가 얼마나 기다렸는데...)
춘천의 수빈이 집안에 초상이 있어 역시 며칠 있다 오게 되어
오늘은 열 둘이 모두입니다.
하하, 열 둘!
열 넷의 어른과 여섯의 새끼일꾼이 붙기로 했으니 샘이 스물.
거기다 동네어른특강으로 대해리 어르신도 댓 분 함께 하실 거구요.
계자에서(봄 가을 터별 계절학교에서야 그런 적이 있긴 하나)
이런 규모는 첨이지요.
보통 쉰 아이들이 신청 전화 받는 하루에 다 마감되어오던 터라.
개학이 맞물려서도 그렇겠는데
우리에겐 학교크기로 움직여보는 좋은 기회라 하고
이번 일정을 굳이 미루거나 취소하지 않고 살아보기로 하였지요.
공동체 삶에서 아이들이 중심에 있고
일상적인 일들도 고대로 돌아가는 구조,
그래서 학교 안에 있는 어른도 있고
바깥의 공동체 살림을 살피는 이들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적어서 덜 힘들겠어요."
그런데 그게 딱히 그렇지도 않습디다.
적으면 많았을 때보다 그 흥이 덜하기도 쉽고
개별의 특질이 두드러져 외려 어려움을 겪을 수도 있지요.
다만 살아보지 합니다.

아이들이 적으니 버스대절이 아니라
오랜만에 대해리 들어오는 시내버스를 탔겠지요.
가방을 이따만한 것 들고들 타니
심심하던 차에 할아버지 할머니들 궁금한 것도 많아라 하셨네요.
어데서 왔냐, 어디로 가냐, 엄마 안보고 싶냐,...
가방도 들어주시고, 일어서면 앉아라고 불러도 주시고,
훈훈했더랍니다, 좋았더랍니다.
영양에서 온 령이 나현이 부모님은
아이들 영동역에 부려놓고
백김치에서부터 두부며 콩이며 옥수수 꾸러미 꾸러미 내려주러
학교까지 들어왔다 가셨습니다.
잘 먹겠습니다!

"외가쪽에 사촌이 많은데 이번 설에 모였습니다.
텔레비전보거나 게임 얘기, 아니면 각자 들고 온 책 뒤적이고
같이 놀 일이 없더라구요.
물꼬에서 했던 것처럼 오랜만에 뭘 같이 해보려 해도 생각도 안나고..."
대동놀이 끝낸 혜윤샘이 그럽디다.
"그런데 오늘 강당에서 놀면서
이렇게들 좋아하는데 왜 못 놀고 혼자 노는 놀이만 하고..."
크게 하나가 되어 몸과 몸을 쓰며
노래와 놀이가 하나였던 시절처럼
저녁마다 우리는 신명이 나겠지요.

한데모임에서 양말빨래는 자기가 알아서 하기로 합니다.
'하다'부터 지 양말을 빨아와
가마솥집 난롯가 대나무 걸이에 걸어둡니다.
나현이도 들어오고 다영이도 들어오고 다옴이도 들어오고...

참, 기표가요, 많이 컸더래요.
무식하고 힘세고,
잡식축구에서 너무 뛰어 호흡이 곤란해 쓰러지기도 여러 번,
애들도 여럿 잡았지요.
그런데 오늘 애들하고 내내 노는데 살살 때리더라나요.

무어나 집중하는 쪽으로 발달되지 마련이잖아요.
감정도 다르지 않은 듯합디다.
밉자 들면 한없이 밉고 사랑하자 들면 대책없이 사랑하게 되는 거지요.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들 사랑에 집중하려합니다.
또 어떤 날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
자꾸 자꾸 배시시 웃음이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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