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계자 엿새째 1월 31일

조회 수 1885 추천 수 0 2004.02.01 21:46:00
4337년 1월 31일 흙날 코끼리 가랑잎 타고 가는 봄날 같은

< 우리 아이들 만세, 물꼬 만세 >

산에 갔지요.
지난 번엔 마을 뒷산을 올랐더랬습니다.
가파르게 갈짓자를 그리며 이어지던 산꼭대기즈음의 길은
압바스 키아로스타미의 영화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에 나왔음직했지요.
오늘은 학교 마당에서 늘 보이는 ‘먼산’을 오르기로 합니다.
마을 앞 밭도 지나고 작은 내도 건너 다시 언덕배기 밭들을 지나 이어지는 산,
그래서 날마다 보면서도 쉬 갈일 없던 산이었습니다.
지도로 익히고 또 익히고
마을 어르신들한테도 여러 번 여쭈었던 참이지요.
아직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설레임, 두려움이 잠시 입니다.
“혹 모르니 손전화도 가지고 가자.”
길을 잃거나 날이 저물면 쓰자 합니다.
무엇을 만날지 누가 아려나요.
토끼는 앞다리가 짧으니 내리막에서 약하므로 아래로 몰아 잡자 합니다.
노루를 만나면 잡는 게 불법이니 모른체 하자지요.
곰을 만나면 우리 수가 적어 불리하니 엎드려 죽은 척 하자 합니다.
멧돼지를 만나면?
잘 잡는 거지요.
우리는 멧돼지 사냥을 떠나기로 한 거거든요.
멧돼지 특징에 대해 알아보고
그것을 이용하는 법과 혹 피해야 할 상황에 대해서도 연습합니다.
누군가가 내논 정보로는 멧돼지도 붉은 색에 흥분하지 않겠냐,
그래서 붉은 색을 입은 호준 다영 무지샘이 앞에 서서 유인하면
활 패들이 쏘고 죽창 패들이 때려잡고
마지막 패들이 꼬아놓은 새끼로 엮어오자 합니다.
외할아버지 멧돼지한테 받혀서 데굴데굴 굴러내려
오래 고생한 얘기를 들려줍니다.
“무서워.”
“나 안갈래.”
아이구, 이게 아닌데…
“그런데 환경오염이라든지로 요새는 사람 몸이 옛날처럼 건강하지 못한 것처럼
멧돼지도 그렇지 않을까?
힘이 많이 약해졌을 거야.”
그걸 믿고 결국 떠나자 하였지요.
끝내 잡지 못하고 점심을 먹게 되면
그 담에 준비한 다른 안(案)으로 바꿔서 사냥을 계속하자 합니다.
나뭇가지에 붉은 옷을 걸어놓고 어쩐다나요.
힘이 많이 필요하겠다고 사탕을 다섯 개씩 배급 받습니다.
사냥을 떠나는 어느 부족의 의식처럼 으싸 으싸 한 바탕 소란을 떨고
밥과 무기를 메고 드디어 출정입니다.
두건에다 수염 기른 얼굴, 어깨에 맨 활과 손에 든 무기, 허리에 맨 새끼,
열택샘은 영락없는 옛 사냥꾼입니다.
뒤에서 걸어가는 무리를 쳐다봅니다.
“야, 이거 다른 때면 한 모둠에 불과한 거잖아.”
그래요, 다른 계자라면 한 모둠 수밖에 안되는 이들이 산을 오릅니다.
사람이 다닌지 오래전의 기억인 산은
들머리에서부터 만만찮습니다.
둘러앉아 숨을 한 번 고릅니다.
“도대체 우리는 왜 멧돼지를 잡으려는 겁니까?”
멧돼지를 잡아 뭐 하려는지 물으니
다영이는 마을잔치를 하자 하고
다옴이는 가죽을 팔아 학교 세우는데 보태자 하고
덕현이는 다음에 올 아이들을 위해서 저장을 하자 합니다.
나만 잘먹고 잘살자고 하는 고생이 아니라
모두 좋자고 마음 모으고 나니 길은 더 쉽습니다.
오르던 산자락은 도저히 타고 갈 수가 없다는 앞쪽의 전갈입니다.
우리는 산판(나무를 베어내는 일)을 한 자국땜에 그나마 길이 쉬운
학교에서 훤하게 보이던 곳으로 길을 잡습니다.
그런데 자꾸 미끄러지는 정근이가 울기 시작했고,
우리는 이 산오름이 쉽잖을 것을 예감했더랬지요.
산악영화 <클리프 헹어>를 떠올리며.
오르는 길 세 지점에서
형길샘 기훈샘 상범샘이 막대기를 뻗쳐 사람들을 올립니다.
호준과 하다,
어제의 사회동지들인 그들은
부축하고 잡아주면서 서로를 돋우고 있습니다.
기어오르려고 준비하던 줄에 섰던 뒷사람들은
또 한바탕 그 같잖은 장면으로 웃었다지요.
산허리를 도니 저어기 우리 학교가 내려다보입니다.
“야-호!”
“잡식아!”
“망치야!”
아주 영화를 찍습니다요.
“쫄랑아!”
거동이도 부르고 장순이도 부르고 저미도 까미도 부르고
학교를 지키고 있는 희정샘도 부릅니다.
눈시울이 붉어집니다.
그의 이름이 무엇이든 우리가 부른 건 그리운 모든 것이었습니다.
산허리 끼고 도니 다시 길은 사라지고 절벽 같은 등성입니다.
저어기 산마루보이는데…
기어올라야지요. 길을 만들며 오릅니다.
목이 긴 구두 같은 걸 신은 윤정이가 젤 고생이고
균형잡기가 어려운 정근이가 또한 힘이 듭니다.
젤 어린 '하다' 호준이는 저 앞이구요.
“곰발자국이다!”
“멧돼지 발자국!”
산짐승들의 발자국이 우리의 사기를 북돋았지요.
다옴은 뒷사람을 위해 가시뻗친 가지들을 제쳐주고
덕현은 먼저 올라 활끈 부분으로 다음 사람을 잡아 오르게 하고
인원이는 끝까지 방패를 사수하며 기를 쓰고
령이는 도와주려고 보면 벌써 다음 손을 뻗치며 기어오르고 있습니다.
다영이는 툴툴거리며도 일단 가고 보자 하고
하다랑 호준이는 먼저 올랐다고 막대기로 사람들의 마지막 오름을 도우고
반팔 형길샘(오늘의 장길산이었다지요!)은
긴 장대로 아이들을 죄다 건져올리고
혜연이와 정근이는 맨끝에서 기진맥진하면서도
샘들 도움을 받으며 가자 가자 합니다.
산등성이 또한 가파르기 매한가지였지요.
배부터 채우자 합니다, 어느새 두 시간이나 산을 탔더라구요.
낙엽 두터워 눕기도 좋고 햇살도 도톰하였지요.
미끄럼의 무용담을 나누며 김밥을 먹습니다.
이제 돌아가자 하는데 왔던 길로는 도저히 엄두가 나지 않는다 합니다.
집으로 돌아갈 수 있기나 할까…
산을 넘어 다른 길로 잡아가자지요,
샘들은 이미 그럴 계획이었음을 저들이 알기나 했을지...
그 고생을 하고도 아이들의 멧돼지타령은 잦아들 줄 모릅니다.
우리는 서쪽으로, 그리고 서북쪽으로 능선을 타고 갑니다.
사람 발길 끊인 지 오래,
능선조차 길이라기엔 어림없습니다.
능선마저 끊어지고 물한계곡쪽 길을 탈 수 있겠다 싶은 지점에서
우리는 서쪽 아래로 방향을 틉니다.
낙엽 수북한 비탈길을 버팅기며 걷다 넘어지던 아이들에서부터
미끄럼을 타기 시작합니다.
아예 다들 눕다시피 갑니다.
“야아, 애들이 좋다고 난리데요.”
학교아저씨 영철샘이 다녀와서 그랬지요.
이제 길은 온통 눈이 덮여있습니다.
아니 길이라니요, 길은 어데도 엎고 나무 사이사이로 길을 만들며 나아갑니다.
“아이구 내 고추!”
앞서 미끄러지던 정훈입니다.
다리 벌리고 미끄러져 내려오다 그루터기에 받친 게지요.
스키장이 따로 없습니다. 가장 난코스 말입니다.
눈썰매를 타기 시작하니 속도도 붙고 재미도 더합니다.
인원이와 령이는 마지막까지 포기하지 않고 쥐고온
방패의 막강한 힘을 썰매로 확인했지요.
애고 어른이고 걷는 이가 없습니다.
걸어서 될 일이 아니지요.
“이야!”
이 깊은 곳에다 누구 뫼를 쓴 것일까요?
널찍한 무덤자리가 우리 한바탕 눈싸움하기에 더할 나위 없습니다.
소리 소리 지르며 눈을 던지고
바로 다음 또 나타난 무덤 자리에서
노래 한바탕에 귤을 세고 말잇기 놀이들도 합니다.
이렇게 무덤이 있다면 길도 있을 법한데
가파르기만한 비탈만 보이고 어데도 길이 없습니다.
그래도 가야지요.
눈은 어느새 사라지고 다시 낙엽 이불입니다.
가파르기는 여전히 스키장이어서
우리는 미끄럼을 또 탔지요.
마침내,
다시 눈 덮인 밭이 나타나고 논이 나타나고 길이 나타나고…
그토록 힘들었던 정근이 노래를 부릅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깊은 산속에…”
“인간승리!”
우리는 환호성을 질렀고 정근이의 무사한 하산을 축하했습니다.
그리고
밥 먹을 때를 빼고도 다섯 시간 산을 탔던 우리들의 노고를 위해 손뼉!
길을 따라 대해리를 향했지요.
얼어붙은 계곡이 부릅니다.
그냥 가기 섭섭하여 얼음장으로 갑니다.
더러 빠지기도 했겠지요.
다시 대장정, 트럭을 만났고 대해리로 들어오는 들머리 흘목까지 타고 옵니다.
그리고 마지막 2킬로.
“학교다!”
아이들의 참을성이 어른보다 낫다는 형길샘,
“아이들은 참 쉽게 힘든 일을 재밌게 바꿀줄도 압니다.”
하데요.

정근이와 수빈이가 사회를 봤습니다.
어제 온 첫날에 낼 사회를 보겠다
손 번쩍 들어올린 수빈이었지요.
정근이의 목소리가 너무 크니 모두의 목소리도 커집니다.
산오름을 끝내고 왔을 때 오늘 들어온 새끼일꾼들이랑
신나게 논 이야기들도 꺼내놓습니다.
덕현이, 후배가 선배한테 까부는 것에 대해 논의를 해보자 합니다.
“선배한테 까부는 것만 문제고 선배는 후배한테 까불어도 되나요?”
사람 사이에 서로 공손하게 대하는 게 좋겠다고 합니다.
어떤 관계이건 예의를 좀 지키자고 입을 모았지요.
장난이 깊어 갈등이 있었던 다연 나현 윤정이네들과
덕현 정훈 령이네들이 한데모임에서까지 싸우려듭니다.
서로의 주장이 너무 팽팽해서 교장샘이 불려나갑니다.
양쪽에 앉혀놓고 가운데 앉으니 사회자들도 나뉘어 앉습니다.
“호준이가 일어나야 시나리오가 완성되는데…”
졸리다고 누운 호준이를 보며 덕현이 말합니다.
한참 상황을 들어본 뒤 그렇게 계속 싸울거면 가방 싸라,
고 하면 쉽게 다툼을 끝내지 쉽지만
줄기차게 하고픈 말들을 다하게 한 다음
결국 그리 싸워 불행한 삶(?)을 계속 살고프냐니 마(그냥) 들어가더이다.
지리한 상황설명속에 아무것도 아닌 일이 돼버린 게지요.
“사이좋게는 어려워도 뭐 (잘)지내볼게요.”
장구한 한데모임입니다.
새끼일꾼 영화가 그러데요,
학급회의가 아니라 가족회의같다고.

새끼일꾼 수민 영화 하번 민우가 들어왔지요.
수민이는 곧 외고 입학을 합니다.
초등 4년 때 동생 수진이랑 처음 계자를 왔지요, 98년이었던가요.
같은 98년 역시 초등 4년인 영화가 동생 상현이랑 왔댔지요.
하번, 97년 열두번째 여름 계자에 4년으로 왔고
그의 동생 하림이 초등 2년에 저랑 글쓰기를 했으며
막내동생 다온이 다섯 살에 한글공부를 하고
그의 어머니는 오랜 물꼬의 논두렁이시지요.
이번 일정에도 새끼일꾼들끼리 나가고 들어오기를 이어달리기하듯
바톤이란 걸 주고 받기로 했다나요.
기표가 나갔고 혜윤샘이 돌아갔습니다.
손님으로 온 명순샘 희주샘이 우리들 산오름의 잔해들을(옷가지며 운동화)
새끼일꾼들이랑 한 밤에 몽땅 빨아주었더랍니다.
홈페이지 도움을 위해 오신 분들이지요.
논두렁 성균샘과 삼숙샘도 아이 은결을 데리고
홈페이지 회의겸 아이 뵐 겸 저녁 느지막히 들어왔습니다.
예전엔 계자동안 손님이 가능키나 했나요.
이제 일상적인 공동체 삶 가운데 한 부분이 계자이고보니
사람들이 이리 오가는 것도 가능합니다요.

샘들 하루재기에서 명순샘이 그러데요.
“한데모임 대동놀이가 충격적이기까지 했습니다.
조카가 많은 편인데, 그동안 전혀 관찰하려 하지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대화하는 방식에 대해 알고 있지 못하구나,
내가 모르는 것을 이 아이들이 하고 있구나…”
이곳에 처음 오는 어른들이 꼭 그러하듯 신선했다 합니다.
무지샘의 하루재기가 이어집니다.
“길도 없는 겨울산을 오르고 있는 동안
이 아이들이 그 동안 지낸 시간으로 이토록 이 곳 어른들을 믿고 있구나,
이후에 학교가 열리더라도 이런 모습이 가능하겠구나,
작은 학교만이 누릴 수 있는 것들도, 전교생이 총출동해서 가족처럼…”
또 덧붙입디다.
“정근이를 보며 여러 겹으로 보호를 받고 있다는 느낌,
아이들 자신들도 그걸 아는 것 같고,
어떤 상황에 부딪히더라도 이 어른이 아니면 다른 어른이 둘러싸고있고..."
이 공간을 정말 필요로 하는 아이들이 많겠다는 생각을 했답니다.
상범샘, 오늘의 산오름을 한마디로 정리했지요.
"물꼬 화이팅입니다."
예, 우리 아이들 만세, 물꼬 만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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