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계자 열흘째 2월 4일

조회 수 1767 추천 수 0 2004.02.05 22:04:00

< 얼마 안남았어요 >

4337년 2월 4일 물날 흩날리는 눈, 눈

멀리서 찾아올 벗이 있으니 이 또한 즐겁지 아니하냐던가요.
친구가 왔습니다.
이 산골, 버스타고 전철타고 또 전철타고 기차타고 버스타고
오자마자 팔 걷어붙이고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 속에서 대동놀이도 하고
머리맡에서 동화 읽기도 그가 맡아서 합니다.
귀한 친구의 방문으로 저 또한 귀해지는 순간입니다.
대구에서 노마어린이집의 진경샘도 들어왔습니다.
어린이집 아이들이 자라 방과후공부를 시작하게 되면서
이것저것 배우겠다 하신 걸음입니다.
아이들 잠시 비운 학교를
문이란 문 다 열고 먼지 한 차례 털어내는 일부터 하셨지요.
학교라든지를 시작하면서 물꼬의 생각들을 나누겠다고 사람들이 찾아오면
그들의 관심은 온통 프로그램에만 있습니다.
아이들을 어찌 만나나,
이곳 샘들은, 공동체식구들은, 어찌 사나
어떻게 갈등을 해결하고 어떻게 나아가는가는
정작 그들의 관심 밖일 때가 많습니다.
삶은 없는 껍데기에만 눈을 부라리며 들여다 보려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살아가는 모습 보면서 힘을 내고 싶고…”
진경샘은 그렇게 말을 꺼내데요.
결혼하고 처음 혼자 집을 떠나보았다는 샘에게
물꼬의 방식, 생각이 잘 나눠질 수 있길,
이왕이면 도움이 좀 될 수 있기를,
빛나는 사흘이기를 바랍니다.

샘들 해건지기는 모진 바람을 뚫고
운동장을 가르는 것으로 시작했습니다.
십리는 뛰었지 싶어요.
“좋은 하루 되셔요.”
아이들과의 해건지기 시간은 갈수록 길어집니다.
깊어지는 고요는 그것만으로
우리를 감동케하고 우리를 정갈케 합니다.
요가는 제법 태가 나며
명상은 우리를 잘 걸러내어주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긴 호흡에 그만 소스라치게 놀라버리는 아침입니다.

때 빼고 광내려 나갔다 오면 영락없이 바람이 듭니다.
아이들은 풍선이 되어 붕붕 떠다닙니다.
학교 대문으로 뛰어들며 안겨오는데,
훤합니다.
아침에 꾀쬐쬐한 '하다'한테 세수 좀 하라했지요.
"목욕갈 건데 뭐."
어제 저녁에는 세수한 놈이 셋 밖에 안되더라니까요.
맑은 눈바람이 일었는데도
(맑은 데 내리는 눈 있잖아요)
그 속에서 젖은 머리카락 휘날리며 숨바꼭질들을 해댔더랍니다.
자장면은 곱빼기를 다 털어 먹었다데요.

아이들은 아직 집에 편지 한 장 부치지 못했습니다.
너무 바빠요,
할 게 너무 많은 생활입니다,
지치도록 겨울을 헤치느라고.
근데 이번 계자에선 집에서 먼저 편지 두 통이 왔습니다.
인원 덕현의 엄마네요.
그런데 혹 다른 아이들 서운할까,
가는 날 주자 합니다.

어제 초콜렛이 선물로 들어왔습니다.
아이들 나눠먹는데
분배를 맡았던 ‘하다’가 열택샘과 희정샘한테도 주게 돼서
못먹은 아이가 있었습니다.
호준은 어른이 먹을 것들에서 좀 떼서 문제가 해결됐는데,
밤늦게 정근이도 못먹은 줄을 알았습니다.
아침부터 정근이에게 초콜릿을 보냅니다.
아이들이 먹을 것을, 혹은 다른 것이라도
먼저 달겨드는 까닭은 둘이지 않을까요.
기다리지 못하는 이 세상의 속도감 때문이거나
아니면 뒤에 서면 제 차례까지 몫이 돌아오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
그래서 물꼬에서는 자리에 있지 않은 사람,
마지막 사람에게까지 꼭 챙겨질 수 있도록 애씁니다.
구조적으로 약한 자 느린 자가 보호를 받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정근이 아침부터 혼자 초콜릿을 먹었더란 말이지요.

아이들이 누군가 잘하는 걸 보면
‘휘바휘바’ 소리칩니다.
예서 지내면서 배운 여러 나라 인삿말들을 오며 가며 써먹습니다.
보름동안 무엇을 할 수 있겠는지요,
다만 아이들 살아갈 적에 이곳에서 던진 것들이
계기작용(?)이 되기를 바란다지요.

구영이와 령이 사회를 맡았습니다.
구영이는 아직 한데모임의 틀을 잘 모르겠다 합니다.
“그런데 왜 한다 그랬어?”
그래도 들어는 가지 않습니다.
덕현이 벌떡 나서서 셋이 같이 서서 진행합니다.
호준이가 한 트림이 또 문젭니다.
“자기도 모르게 한 거야.”
워낙에 버릇이 된 일을
아이들은 이 기회에 아주 고치려 들 작정인가 봅니다.
“그런데 일부러 트림을 하는 호준의 예의 없음과
열심히 이야기 하는데도 자기들끼리 떠드는 인원, 정훈의 예의없음과
한데모임 중인데도 누워서 말하는 윤정의 예의 없음은 뭐가 다른가요?”
트림이 더 나쁘겠다 덕현이 말합니다.
가마솥집 공기를 오염시킨다는 거지요.
그때 정근이가 나섭니다.
“저는 남을 무시하는 예의없음이 더 나쁘다고 생각해요.”
여기저기서 동의한다 합니다.
해건지기 안하고 책방에서 논 아이들을 정훈이 고자질하는데
덕현이 따집니다.
“그럼 본인도 그랬다는 것 아닙니까?”
그 안에 들어가지 않았으면 그 사실을 어찌 알겠냔 말이지요.
생활구석구석이 다 도마에 오릅니다.
상범샘한테 요가할 때 장난친 호준과 하다도 혼이 나고
아침 시간 먼저 일어나 잘 자고 있는 친구들의 이불을 들추고 다닌
정근이는 제가 그랬다 자수하고 사과를 합니다.
목욕탕 앞에서 먼저 나와 여자들한테 툴툴거린 정훈은
제가 그랬다며 미안하다 합니다.
그런데 아이들도 목욕에 있어 여자 남자 다른가 봐요.
남자애들은 숨을 못쉬겠다고 들락날락하며 얼른 목욕탕을 나오는데
여자애들은 심지어 사우나실까지 들어가며 나오라 나오라 해도
어느새 두 시간이 흘렀더랍니다.
싸들고 갔던 팬티와 양말들은 무사히 돌아왔지요.
가는 내내 노랫소리 높았다는데,
시골버스 맛을 실컷 누렸겠습니다.

수학과 음악교실이 열렸습니다.
음악에선 타악밴드를 만들었고
수학에선 기호와 상징, 수의 크고 작음에 대해서 배웠다 합니다.
아직 곱셈이 안되는 호준은 형아들이 잘 도와
주사위를 가지고 신나는 놀이 수학을 했더랍니다.

슬라이드로 동화를 봅니다.
“정지된 화면이 주는 고요와 따스함, 거기다 아이들의 숨죽임까지
너무 너무 좋았어요.”
희순샘이 그럽디다.
그림동화의 정적이 너나없이 마음을 일렁이게 한 모양입니다.
그래요, 멀티슬라이드란 것도 있지요.
움직임을 많이 담은 슬라이드 잔치라는.
화려함으로는 견줄 수가 없을 텐데
감동으로는 정말 곱이 넘는다 싶습니다.
대동놀이를 대신해서 것만 보고 하루재기를 들어가려는데
강당으로 가자 아이들이 성화입니다.
“우리에게는 아직도 날이 창창해.”
“아니예요, 얼마 안남았단 말이예요.”
“이제 5일 밖에 안돼요.”
그제부턴가, 이제 남은 날이 많으니 나중에 하잔 말이 안통합니다.
유달리 이번 계자 녀석들,
아쉬움을 많이 느끼고 있네요.
물꼬입학절차를 밟고 있는 애들이 많아서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부모가 잠시 다녀갑니다.
출장갔다 지나는 길에 눈도 날리고 걱정도 되어 와봤답니다.
연락도 안되더라고.
그냥 내쳤습니다.
내 애 새끼만 생각한다는 이기 같애서.
어머니 아버지가 보고싶을 넘의 새끼들은 생각치 않았다고.
아무리 조심스럽게 오신 걸음이라지만
그 조심스러움이 스스로 생각한 조심스러움이지
물꼬를 생각하는, 타인을 배려한 조심스러움은 아니었다 싶었지요.
너무 야박다 마시길…
저희로서는 어느 새끼고 '우리 새끼들'이거든요.
그런데, 이번 계자 녀석들은 엄마 아빠 보고싶단 소리를
며칠 전부터 들을 수가 없네요.
아주 지들 집같이 살고 있습니다려.

샘들 하루재기를 끝내고 사택으로 올라오는 길,
벌써 제법 쌓인 눈을 밟고 왔습니다.
절묘한 날씨에 또 감탄합니다.
무사히 나들이 하고 나니 이 밤에야 눈발이 굵어집니다.
물꼬에 적절하게 도와주는 하늘님에 감사합니다.
함께 꾸리고 있는 샘들한테 고맙습니다.
무엇보다
잘 지내는 있는 우리 아이들이 젤 고맙지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642 105 계자 닷새째, 8월 5일 쇠날 참 맑은 날 옥영경 2005-08-13 1214
641 105 계자 나흘째, 8월 4일 나무날 빨래를 부지런히 말리지요 옥영경 2005-08-09 1677
640 105 계자 사흘째, 8월 3일 물날 내리꽂히다 간 비 옥영경 2005-08-08 1649
639 105 계자 이틀째, 8월 2일 불날 계속 비 옥영경 2005-08-06 1334
638 105 계자 여는 날, 8월 1일 달날 비 옥영경 2005-08-04 1282
637 7월 31일 해날 한창 더위 옥영경 2005-08-01 1335
636 7월 30일 흙날 맑음 옥영경 2005-08-01 1303
635 7월 29일 쇠날 맑음 옥영경 2005-08-01 1148
634 7월 28일 나무날 비 옥영경 2005-08-01 1249
633 7월 27일 물날 꺾이지 않는 더위 옥영경 2005-08-01 1268
632 7월 26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5-08-01 1232
631 7월 25일 달날 더위 가운데 옥영경 2005-07-31 1201
630 7월 24일 해날 구름 옥영경 2005-07-31 1161
629 7월 23일 흙날 며칠째 찜통 옥영경 2005-07-31 1316
628 7월 22일 쇠날 37도라나요, 백화산 933m 옥영경 2005-07-31 1423
627 7월 21일 나무날 한술 더 뜬 더위 옥영경 2005-07-31 1330
626 7월 20일 물날 예조차 엄청 덥네요 옥영경 2005-07-27 1303
625 7월 19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5-07-27 1293
624 7월 18일 달날 흐릿, 그리고 무지 더운 옥영경 2005-07-22 1360
623 7월 17일 해날 맑음 옥영경 2005-07-22 1148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