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4일 달날 끝없이 비

조회 수 1208 추천 수 0 2005.07.13 11:32:00

7월 4일 달날 끝없이 비

마루 끝에 해가 머물러 있던 잔잔한 오후,
때론 햇살이 막 넘어오기 시작하는 늦은 아침에
막내 이모는 무릎에 절 뉘고 귀를 닦아주었습니다, 제 어린 날.
실제 서로가 이해하는 것보다 더 굵은 끈을 가졌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더러 든 건
이모랑 함께 한 이런 시간들 덕이 아닐까 싶어요.
우리 아이들에게 달날 아침,
그림을 그리며 손을 풀고 있거나 글을 쓰고 있을 적
하나 하나 무릎 베개에 놓고 귀를 닦거나
손톱을 깎아줍니다.
이 시간이 물꼬의 어떤 프로그램보다 귀한 시간이라 여겨지는 건
아이랑 살갗을 부비며 도란거리고
혹여 서로 모르고 있을 부분을 발견하기도 하면서
우리가 더 깊은 친구가 되어간다는 느낌 때문이잖을지...

마음 한켠을 꺼내는 글 한편에,
얼마 전 같이 읽은 책 하나의 느낌글을 쓰는 '우리말 우리글'이었습니다.
마칠 녘 작은 녀석들 사이에서 역시 작은 다툼이 있었습니다.
요즘 이곳의 어른들 걱정이 크지요, 아이들이 많이 거칠다고.
그런데 정작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저는
그걸 꼭 부정적으로 볼 것만은 아니라 생각합니다.
본성을 드러내는 게지요.
잠깐 좋기는 얼마나 쉬운 일이던가요.
일년을 넘어 보낸 시간,
그간 보여주고픈 것만 보이다 이제 그 긴장감이 사라질 쯤이 됐고,
보일 것 안보일 것 다 나오는 게지요.
화를 내지 마라는 건 억압 아닐지요, 거짓말이란 말입니다.
화가 나는 것을 알아차리고 내려놓는 제 훈련이 필요한 거지요.
화도 낼 만치 내고나면 말 날이 있겠지요.
물론 화가 버릇이 되지 않도록 경계하고
그 지점에서 어른이 함께 마음을 살펴준다면 더 좋을 일이겠고.
천-천-히, 화를 알아차리고 화를 다루는 법을
요새 같이들 익히고 있답니다.

색놀이 하였지요.
십자수 놓는 연습을 웬만큼 한 아이들은
도안을 그리고 있습니다.
남들이 만들어준 것, 파는 것 말고, 자기 그림을 천에 옮기겠다는 거지요.
혜연이랑 예린이는 한 칸 한 칸 제 천을 센 뒤
그만큼 선을 그어놓고 도안 작업을 합니다.
아이구, 담엔 꼭 모눈종이 내밀어야지 했지요.
나현이는 가늠으로 하고,
지용이는 그저 색색이 채우기만 해도 훌륭하다면 열심히 노란실을 꿰고,
채규는 뭔가 엉켰다고 칼로 끊고 있고
(일찍 발견 못하면 한참을 공들인 그만큼 실을 풀어내야잖아요)...
어찌나 조용한지 어른들이 더러 애들 어딨나 찾았지요.
간식 먹은 다음은 포도밭에 올라 봉지 씌웠더랍니다.

교무실에선 105, 106, 107 여름 계절자유학교 신청을 받느라 부산하고,
가마솥방은 고래방 인부들 밥을 맡기로 했던 밥알 김애자님이
아예 자리 틀고 앉아 식구들 밥까지 맡고 계십니다.
황간초등을 다니던 해니는 부모님이 예 머무시니
아예 상촌초등으로 전학을 하였지요.
제 밑으로 또 한 식구가 주민등록을 옮긴 겝니다.
날마다 대해리에서 상촌초등을 나가는 거지요.
2005학년도 물꼬 입학생으로 지원했으나 밀린 해니는
(지금 자리가 없으니 나중에 공동체 식구 될 때 오라 하였더랍니다)
이렇게 자리 잡으면 이내 새해엔 식구 되지 않을 지요.

면장님 전갈이 있어 잠시 뵈었는데
지난 번 달골 올라가는 길 작은 다리 보수공사를 요청한 일 때문이었습니다.
아이들 집 지으러 올라갈 레미콘이며가 아무래도 걱정이어
다리 사진도 찍고 어디가 불안한지 설명도 덧붙여 지난 번에 드렸댔지요.
그 다리, 설계에 들어갔답니다,
물꼬에 필요한 다른 일들도 하실만치 도와보겠다십니다.

1995년 6월 29일 무슨 쇼처럼 삼풍백화점이 무너졌댔지요.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마다요.
천여 명이 다쳤고 오백둘의 목숨을 턱없이 잃었습니다.
그로부터 한 해 뒤 물꼬는 그 현장에서
<삼풍 대참사 1주기 진혼 예술제-다신 이 세상에 오지 마, 엄마!>라는 행사를
아이들과 가졌더랬습니다.
한남동에서 큰 가로수가 뿌리째 뽑힐 만치 비바람 거세었던 그해,
우리는 죽어간 이들을 위로하며 다시는 그런 세상을 만들지 말자 다짐했더라지요.
오랜 시간이 흐른 오늘,
삼풍대책위(유족회)에 계시던 김용철님이 늘 물꼬가 마음에 있었노라 전화주셨댔습니다,
고마웠다고.
그런데,
이제는 무너지는 다리, 무너지는 건물 없는 거 맞나요?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56 2021. 7.28.물날. 맑음 옥영경 2021-08-10 326
655 2021. 3.26.쇠날. 맑음 옥영경 2021-04-27 326
654 2022.10.28.쇠날. 맑음 옥영경 2022-11-23 325
653 2022. 9.25.해날. 맑지 않은 / 작가초청강연 옥영경 2022-10-04 325
652 2022. 8.31.물날. 비 옥영경 2022-09-14 325
651 2022. 8.24.물날. 비 내리다 오후에 긋다 옥영경 2022-09-07 325
650 2022. 6. 6.달날. 비 오락가락 옥영경 2022-07-06 325
649 2022. 5. 9.달날. 흐림 / 집단 따돌림 옥영경 2022-06-15 325
648 2021.12.17.쇠날. 한파주의보 옥영경 2022-01-08 325
647 2021.11.24.물날. 흐림 옥영경 2021-12-29 325
646 2021. 7.18.해날. 맑음 옥영경 2021-08-09 325
645 2021. 6.14.달날. 흐림 옥영경 2021-07-07 325
644 2021. 5.25.불날. 장대비 내린 뒤 긋다 옥영경 2021-06-22 325
643 2021. 3.29.달날. 말음 옥영경 2021-05-05 325
642 2022. 8.25.나무날. 가끔 비 / 못 키운 건 부모 잘못이나 그 시절에 대한 해석은 자식 몫 옥영경 2022-09-07 324
641 2022. 3. 8.불날. 맑음 옥영경 2022-04-04 324
640 2021. 7.26.달날. 맑음 옥영경 2021-08-09 324
639 2023. 6. 3.흙날. 맑음 옥영경 2023-07-19 323
638 2023. 3.14.불날. 맑다가 밤 돌풍, 예보대로 / 설악산행 9차 옥영경 2023-04-04 323
637 2023. 1. 5.나무날. 맑음 옥영경 2023-01-08 323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