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2일 쇠날 37도라나요, 백화산 933m

조회 수 1426 추천 수 0 2005.07.31 16:16:00

7월 22일 쇠날 37도라나요, 백화산 933m

"새벽 4시군. 일어나야 돼."
간밤, 일을 마치고 방을 들어서니 류옥하다가 뒤척이며 그랬습니다.
정말 4시가 가까운 시간이었어요.
"으음, 좀 더 있어도..."
그러더니 뒤채고는 픽 또 자는 겁니다.
모두에게 그런 밤이었겠습니다.

강행군의 여름 학기 마지막 주입니다.
'아이구, 잠 좀 자자...'
새벽부터 아이들이 마당으로 쏟아져 나옵니다.
정근이도 불러대지요,
령이도 류옥하다를 깨운다며 소란을 떨지요,
아, 새벽 4시 30분에야 자리에 누웠는데,...
"좀 만 더..."
그 사이 혹여 우리 길이 늦을까,
상범샘도 기어이 올라와 불러댑니다, 7시 30분.
마지막 순간까지 잔 셈이네요.
백화산 오르는 아침은 그리 분주했더이다.
이미 상촌초등에서 방학을 한 해니도 같이 오르고자 하였으나
아무래도 식구들끼리 학기를 한풀 다 풀어내는 자리여서
함께 하지 못함을 저가 더 잘 이해하고 아쉬움을 접어주었습니다.

아침 8시 학교를 나섰습니다, 승현샘이 이어 붙여준 지도를 들고.
학기를 마치는 산오름입니다.
지도에 백화산맥이라고 표기할 만치
산세가 웅장하고 날카로우면서도 부드럽고 아름답다는,
일제 때 우리민족의 국운을 끊는다고, 금돌성을 잡는단 뜻으로 포성봉이라 불렸으나
이제 제 이름 한성봉(933m)을 찾은 백화산.
산 전체가 티 없이 맑고 밝다는 뜻이라지요.
충북 영동 황간면과 경북 상주 모동면의 경계를 이루며
소백산맥의 중앙, 국토의 딱 가운데 있습니다.
그 백화산을 사이에 두고 금강과 낙동강이 남북으로 흐르지요.

9시 30분,
들머리에서 단도리를 하고 산을 향해 걸음을 뗐습니다.
5월에 바위산 하나를 타고 7월엔 지리산을 오르자던 계획이었는데
밀렸네요.
9월이면 천왕봉 즈음에 있을 아이들입니다.
보현사에서 용초를 벗어나 보문사터쪽으로 길을 잡을 참에
계곡으로 길을 꺾어봅니다,
오늘도 예사롭지않은 산오름이 되리라 짐작하기 어렵지 않은 시작이었지요,
버젓이 난 길을 접고 어려운 곳을 골랐으니.
장마 뒤 태풍 뒤엔 더 어려운 게 산오름입니다.
길은 패이고 계곡은 갈라지고
깎여 길인 듯 하나 막혔고
막힌 듯 싶으나 길 하나 빛줄기처럼 이어지고...
그즈음 먼저 산을 올랐던 이들이 남겨둔 여러 표적이 길을 안내하지요.

산자락 어느 절경 아래서 숨을 돌립니다.
"백두산이 보이니 한라산이 보인다..."
"눈을 한 번 감아봐. 눈 꼭 감고 스물쯤 세 봐..."
요즘 배운 노래들을 목청껏 부르고 물소리에 바람 소리에 귀도 기울이며 땀을 식힙니다.
류옥하다는 저가 즐기는 지리산 노래도 흥얼거리네요.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다시 길을 잡아 봅니다.
지용이랑 도형이가 너무 처진다고 앞에 세워달라는 어른들 주문입니다.
못하겠단 지용이를 설득해 우리는 오르는 새 차례를 정하고 걸음을 재촉합니다.
예도 제도 길이지 싶은데 어느새 길은 툭 끊어져버리고
더는 계곡을 믿을 일이 아닙니다.
언제나 그런 결정을 요구하는 지점이 있기 마련이지요.
"할 수 있을까?"
기울기가 70도도 더 되지 하는 가파른 산길로 꺾습니다.
'오래전 버섯을 기르고 나무를 해내리던 길이 있으리라...'
사람 흔적을 찾아봅니다, 온 더듬이를 곤두세우지요.
그간의 모든 경험과 모든 신경을 동원해 산과 대화를 시도합니다.
산이 그러합니다, 더 깊이 그에게 기울이면 그가 안내를 자처하지요,
때로 사람을 경계하면서.
산이 맘을 조금씩 내줍니다, 거기에 하늘 손길 하나 닿아주어야 하지요.
한 줄로 오르다간 앞사람 발에 채인 돌에 사고 나기 딱입니다.
지그재그로 길을 잡고 한 사람씩 오릅니다.
아, 저기가 길이다,
오래전 나무꾼이 다녔음직한 어느 능선에 이르러 우리는 숨을 돌렸습니다.
"지용이 형아가 이제 용기가 난대."
길을 오른 땀투성이 지용이에게 류옥하다의 격려가 이어집니다.
"그래?"
돌아보니 지용이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렇게 지도에도 없는 산길을 오르다
정상이 가깝지 싶은 그늘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제 몫을 따로따로 지고 오는 것도 괜찮습니다.
전엔 뭉치로 가져왔던 것을 오늘은 각자 가방에 나눠 싸보았더랍니다.
봉우리 하나 만났지요.
정상이라 우기자 하지만 저어기 남으로 한성봉이라 짐작되는 봉우리가 보이고 맙니다.
냅다 뛰어간 그곳에서 우리는 기어이 푯말을 만났지요.
"한성봉이다!"

내려올 땐 방통재길을 고릅니다.
이건 숫제 수직입니다.
돌아갈까, 내리 갈까 묻지요.
뭐 어렵지 않은 예상입니다, 다만 앞으로 가자 하지요.
차례를 정합니다,
아무도 거스르지 않습니다.
"너무 독재 아니예요?"
신동인아빠의 불만입니다.
그러나, 목숨이 걸린 길에서 우린 무모하게 중뿔난 고집을 부리지 않지요.
목숨 걸고 싸울 일 아니니까.
다시 계곡을 만나고,
이제 아는 길이니 긴장 없이 다만 아래로 잡으면 되지요,
아는 길 아니어도 물은 아래로 흐르니 그 길 끝에서 우린 산을 벗어날 것이고.
산길 끝에서 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여름 산행은 이 맛이지요!
"어머, 정상까지..."
계곡에 나들이 나온 아주머니 몇을 만납니다.
아, 그래요, 더운 여름의 평일 산행에 나선 사람이 없어
우리의 기세를 확인해주는 이런 말을 못들었지요,
구색인데,
고맙기도 하지,
누군가 이런 칭찬을 해주었어야 했습니다.
뭐 이제 별일도 아니라는 양 하지만 어깨 올라갔던 걸요, 모두.
함께 오른 김경훈아빠 신동인아빠 한동희아빠가 숨을 헉헉대고 계실 적
(내림길이 힘든 정근이의 도움이로, 특히 한동희 아빠, 무지 애잡수셨겠지요)
다만 아이들은 동네 언덕을 돌아나온 것처럼 재잘거리며
5시 30분에 산 들머리에 다시 닿았습니다.

산이 거기 있었고,
올랐으니 내려왔지요.
우리가 날마다 먹는 밥상 앞처럼 무심하게 오르고 무심하게 내려왔더랍니다.
어려운 날 우리 삶 속에 그 시간 빛나길...

아이들이 산을 헤매고 있을 적
학교에선 김상철아빠 오셔서 승현샘이랑 논밭 학교둘레 풀과 씨름하시고,
삼촌은 달골 포도밭에(승현샘 왔다갔다),
은순샘은 방문자 박명의님과 밭에 나가 계셨답니다,
본관에선 전기작업들이 있었고.

그리고 밤,
영화마을에 갔습니다.
승현샘이 준비해준 애니메이션입니다.
웬만하면 그냥 자지 했을 텐데
기어이 마지막 장면을 보고 일어서는 아이들이랍니다.

자정,
반짝 밥알모임이 있었습니다, 새벽 6시까지.
사람 사이의 교통이 이러한 것입니까,
무에 그리 어렵답니까.
그냥 주욱 살아 보자 합니다,
필요하면 이렇게 앉아 기를 쓰고 말도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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