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5일 해날 덥네요

조회 수 1330 추천 수 0 2005.06.06 00:40:00

6월 5일 해날 덥네요

그대에게.

의심할 것 없는 여름입니다.
앉았으니 바닥에 닿는 종아리와 허벅지에 땀이 채입니다.
지구의 올 여름은 또 우리에게 어떤 경고를 해올 지요.
편안하신지?
산골 생활요? 어디라고 사람살이 다를 지요.
아이들 장난 같은 산딸기와 까르르거리는 오디와 실한 푸성귀들 사이에서,
무엇보다 아이들 속에서 위로 받고 위안 받으며,
그리고 늘 그래왔듯 꿈꾸며 살고 있답니다.

대구 다사농악 두 분을 보고 왔습니다.
아침 때건지기 뒤, 연휴라고 손 보태러 서울서 온
품앗이 승희샘과 세이샘한테 점심 준비며 새참을 일러두고
(저녁은 밥알 조은희님께 부탁해두고)
고구마밭을 안내한 다음 나갔지요.
삼촌과 이제는 품앗이가 된 종화샘이 있는 쉼터 포도밭에 오전 새참을 들여놓고.
하룻밤을 두고 다니던 길을 오후 시간 안에 내달렸다 돌아오니
하이고,
어깨가 아주 내려앉습니다, 정작 아픈 무릎은 견딜만 한데.
아이들이 찔레꽃 방학을 마치고 돌아오는 날이지요.
다른 아이들은 오란 시간에 다 들어올 텐데
약속 시간을 어길 수도 없어,
졸음이랑 싸우느라 운전대를 더 꽉 잡고 오니라고
힘이 잔뜩 들어갔던 어깨로 저녁을 먹고는 얼굴 잔뜩 구기고 있다가
그래도 멀리 있던 남편이 와 있으니 안마라도 받을 수 있어
좀 풀어지기에 책상 앞에 앉았습니다.

무식한, 딸년이랑 오래 같이 살아보지도 못한 울 엄마는
어찌 이리도 제 생을 장악하는지.
엊저녁만 해도 저녁을 잔뜩 먹은 뒤인데도
좋은 술에 걸맞은 안주 하나 내겠다고 조기탕을 하나 끓이느라 서둘렀지요.
"신랑이 좋으면 신부도 좋아야지."
신동인님 부추김도 한 몫 했겠지요.
우리는 또 성질이 급해 천천히, 뭐 이런 거 안되거든요.
울 어머니 그러셨더이다,
사람을 기다리게 하는 밥상이 젤 못차리는 밥상이라고.
그래서 늘 부엌일은 후다닥해야 직성이 풀리는 게지요.
얼어있던 조기를 빠르게 떼느라 무리하다
엄지 손톱 밑으로 지느러미쪽 가시가 박혔습니다.
손톱 밑 가시...
시도 밤이슬도 사람도 술도 좋았던 밤은
개구리소리를 업고 넘어갔는데,
으이그,
좀 부어오른 손톱이 부기 같은 짜증을 슬슬 몰고 오는 듯도 하네요.
별게 다 신경이 거슬린다 뭐 그런 말이겠습니다.

삼촌 종화샘 신동인님 조은희님 한동희님이 들어간 포도밭에 인사를 건네고
승희샘 세이샘이 든 고구마밭에도 인사 넘기고 학교로 들어서니
정근이랑 지용이도 와 있고 하늘이도 와 있고 예린이도 와 있습니다.
하고, 우리 새끼들...
저녁 먹을 제 김주묵님이 끄는 차에서 작은 도령 규민이에서부터 우르르 내립니다.
도형이도 혜연이도 혜린이도 채은이도 채규도 그리고 채경이도 보입니다.
"채규야, 너 가던 날 갑자기 막 보고 싶더라, 저녁에.
전화할라 했는데, 아직 기차에 있을 시간이더라고..."
우리 밥알 회장님, 춘천에서부터 서울까지 다시 일산에서 예까지,
그 어깨는, 그 다리는 또 어떨려나...
내 어깨 아프니 그 어깨가 더 아플 것 같습니다.
다 처지가 돼 봐얀다더니...

"내 친구가 선물해준 건데..."
모남순님의 첫인사입니다.
가마솥방에 있던, 하얀 사기화분에 파릇파릇 늘어지던 참 예뿐 꽃이었지요.
시들었음을 발견하고 물을 줘보지만
이미 살아나기에 너무 늦었던 게 그제였더랍니다.
어찌나 미안한지...
표 나지 않는 풀 뽑기, 해도 티 안나는 부엌살림, 짐승 걷어 먹이는 일,남는 것도 없는 사무실일,...
그러는 사이 사는 이들은 하느라고 해도 빠뜨린 일이 어디 한둘만 될까요.

가마솥방 일을 보탤 김현덕님만 남고 밥알식구들이 돌아갔습니다.
또 김현덕님?
누구는 늘어나는 일 쳐다만 보고, 어느 이는 주춤거리는 사이,
누구라도 할 줄 잘 알고 있고, 나는 다음에 하면 되지 하는 사이,
대개는 자신의 문제에만 묻혀있는 그 사이,
누구는 부담스러워만 하고, 내가 게으른 사이,
누구는 하고 싶은 거 계획대로 잘만 하는데
못난(?) 김현덕님만 괜스레 하겠다던 양념통닭집 접고
큰 놈 정우랑 직장 다니는 남편 밀쳐놓고(?) 물꼬 일에 매였습니다.
아내 없는, 일하는 남편이 하는 살림이 어떨지요.
그저 죄송하고 고맙고...

읽는 그대는 또 천근같은 무게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독립운동 하는 거 아니잖아."
그래요, 그런 시절을 우리가 살고 있는 건 아니지요,
그래서 당연히 누구든 독립자금을 내밀어야 하고
어느 사람이랄 것 없이 손을 보태는 게 의무인 일을
물꼬가 하며 살고 있는 거야 아니다마다요.
"이 시대의 한 신념이니까..."
지독하게 고민하고, 생각한 것처럼 살아보려 움직이는 곳이니까...
누구라도 '내가 할 만치' 하는 거지요.
다만 그 크기에 대해 잘 들여다봐야지 않을까,
물꼬일 아니어도 세상의 선한 일에 나는 어이 반응하며 사는지.

얼마 전 한 밥알 식구가 우울해하고 있어 잠시 같이 앉은 일이 있었더랍니다.
"그거지요, 차츰 부담(학부모가 학교에 지는)이 늘면서 또 얼마나 해야 하나..."
고개만 끄덕이던 그 밤이었는데,
불쑥불쑥 물꼬는 안그런줄 아셔요, 하는 말이 꼬물거리며 올랐음을 고백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면서 또 어찌해야 하나...
여기가 가진 만큼만 가르치면 될 줄 알았지요,
애살이 나고, 부를 선생도 생기고, 나갈 일도 생기고,
그래서 할 인사치레도 있고 작업하는데 드는 값도 있고...
그런데도 물꼬 셔틀버스처럼 쓰이는 신동인님네 차에
기름 한 방울 넣어준 일도 없다지요.
물꼬도 몰랐지요, 저도 몰랐습니다,
가 본 사람이 없어서도 몰랐고, 가지 않은 길이라서도 몰랐고,
몰라서도 더 몰랐지요.
게다 살피고 또 살펴도 사는 일이 그림대로 되는 것 아닌 줄,
삶 어느 구석은 그렇지 않을 줄 그대는 모르고 나는 모르더이까.
그래요, 그런데도 몰랐지요, 이리 일 많을 줄 몰랐습니다.
그냥 농사짓고, 아이들은 저들이 자라줄 테고,
멀리서 찾아오는 친구가 있으면 차 한 잔은 내놓을 수 있을 줄 알았지요.
"그래도 교장샘은..."
공동체 식구들이 모두 방 한 번 훔쳐낼 짬이 없다고 말하던 어느 아침 모임이었나,
어느 머무는 이는 그럽디다.
다 제(자기) 하는 일만 보이는 법이고
아님 제 맘이 가는 사람 일만 뵈는 법 아니겠는지요.
네가 시간이 없으면 나도 없는 게 이곳이지요.
내가 일하고 있는 그때 다른 이는 다른 어느 구석에서 꼼짝거려야 하는 예지요.
문득, 아, 이제 그만하고 싶다, 그런 맘이 드는 것 아주 없는 일도 아니고...
이 밤,
삶에 대한 지치지 않는 낙관을 가졌던 버몬트 숲 속의 한 어르신을 생각합니다,
살아가는 것에 대한 끊임없는 고양을 일깨워주었던.
우리 생에 다른 별 뾰족한 수가 또 있더이까.
다만 애써서 살아보는 거지요.

아이들이 곶감집 자러간다고 밤인사를 왔습니다.
하나씩 안지요.
"이제 여름학기 시작이구나..."
갑자기 마음 화안해집니다.
날마다 아이들이 우리를 살리는 게지요.
속이 요따만해지다가도 이 아이들을 보며 살지요.
우리 사는 일이 이렇습니다.
그러니 제발, 방문하는 이들,
별곳 아니니 걸음을 줄여주셨음...
오늘만 하더라도 약속도 없이 두 패인지 세 패인지 다녀가셨다지요.

말을 다 뱉고 되려 속이 더 불편할 줄 그대가 먼저 아실 테지요,
엄살을 또 얼마나 부끄러이 여길지.
혹여 겨우겨우 가는 걸음이라고 조마조마하시려나요?
에이, 뭘요, 이런 푸념도 못하면 도인이지요.
공동체에 산다고
마치 우리가 흔히 교회를 혹은 절을 다니는 사람에게 거는 기대처럼
우리랑 다르겠지 하는 그 맘 접어주소서.
그래도 이 산골의 자유가, 공동체 삶이, 또한 우리를 살리나니...

개구리 소리 오늘도 넘치는 대해리의 늦은 밤입니다.
그대에게 기쁨 또한 그리 넘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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