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6일 달날 의심없는 여름

조회 수 1217 추천 수 0 2005.06.09 15:45:00

6월 6일 달날 의심없는 여름

꽃을 봅니다.
좋습니다.
좋다,
그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더러 어떤 일은 바람결에 만들어내는 솔가지의 물결처럼 오랜 여운으로 남기도 하지만
그것 역시 어느 순간은 사라집니다.
벌레들이 곤충 시체 하나에 엉겨 붙어 있습니다.
얼굴이 먼저 찌푸려집니다.
아이, 역해,
그 마음이 일어났다가 사라집니다.
어떤 이를 보면 참 기분 좋지요.
사랑이 그런 것일 겝니다.
어떤 이는 주는 것 없이 밉기까지 합니다.
미움이겠지요.
그런데 사랑도 미움도 우리 마음에 일어났다가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꼭 같습니다.
환희도 절망도 일어났다 떠난다는 것에서는 둘이 다르지 않습니다.
이를 잘 새긴다면 그리 아파할 일도 그리 즐거울 일도 없겠습니다.
평정...
내적 균형을 잡고 고요를 유지하는 것을 그리 말하겠지요.

아이들 보내놓고 맞은 밥알들의 아침이 먹먹할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예가 도움이 되려나요?
여행을 갑니다.
날도 참말 좋고
일을 싸 짊어지고 가는 것도 아니고
굳이 밥 때를 맞춰야 하는 것도 아니고
지긋지긋한 일상이 따라붙는 것도 아니고...
바람도 참말 좋지요.
잠시 만나는 이들이랑 굳이 나쁠 게 뭐가 있겠어요,
살 부대끼며 나날을 함께 싸워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좋지요, 다 좋습니다.
"안돌아가고 싶어."
그런데 우리는 돌아오지요, 내 삶의 지반 위로.
아이들이 집에 옵니다.
오랜만에 만나니 더없이 좋지요.
잘해줍니다,
날마다 끼고 사는 것도 아니고.
곁에 있을 때보다 더 놀아주고 더 관심가져 주지요.
뙤약볕 아래 농사일까지 져야 하는 일터로 아이들 역시
굳이 돌아간다 하지는 않습니다,
심심하다 심심하다 지칠 때라면 모를까.
아이들 넘치는 웃음 앞에 잠시 갈등이 깊어지지요.
아이고, 저것들 굳이 보내야 하나...
사는 일에 얼마나 많은 마음이 들던가요.
순간에도 끊임없이 마음이 일고 떠나는 걸.
아이들이 돌아온 집에 웃음이 차고 넘쳐서 기쁘면 됐지
뭐 그렇게 심란할 건 또 뭐랍니까.
아직 어린 녀석들 멀리 보내는 부모 마음을 헤아리지 못할 것도 아니나,
정작 아이들은 그리 심각할 것 없는데
보면 늘 문제는 어른이고 심각한 것도 어른 아닌가 싶어요.
자주 얘기합니다만
부모 그늘 그거요, 천리라고 어디 안가고 만리라고 안가는지요?
이곳의 숲이 이곳의 들이 이곳의 좋은 어른들의 기운이
우리 아이들을 채웁니다.
이보다 더 싼 거 있으면 나와 보라해,
젤 싸다는 큰 마트 앞에 붙어있던 문구였던가요.
뭐 중뿔난 더한 행복이 어디 따로이 있더이까...

여름학기 시작입니다.
현충일이네요.
일년 가운데 날이 가장 맑다는 망종이랑 거의 겹치는 날입니다,
입하와 하지 사이에서 가지랭이 씨앗이 질펀하게 자란다는.
어, 그런데 달력 쳐다보니 망종은 어제네요.
아침, 이 땅을 지켜냈던 이들을 아이들과 기립니다.

"집에 다녀왔으니까..."
귀도 파고 손발톱도 깎았겠다 하고 넘어가려는데 해야 한다네요.
예린이는 생전 귀 안파본 것같이 큰 귀지가 늘 나오지요.
깔끔돌이 지용이는 귀는 안그런 것 같구요,
간지러워 어쩔 줄 모르는 채규,
류옥하다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진귀채라 진득진득하고,
하늘이는 누구보다 쏜살같이 무릎에 달겨와 귀를 대지요.
채은이(채규도)는 손톱 깨물어 깎을 게 없으니 늘 시간을 벌어주고,
정근이는 도형이 령이는 고만고만하게 가루들을 흘립니다.
혜린이랑 나현이는 참 평화로이 무릎을 베고 있습니다.
뭔가로 바빠 드물게 귀를 닦는 건 혜연이지요.
귀지도 손발톱도 정말이지 저마다 다 다릅니다.
열둘이어서 다행이지요...

색놀이합니다.
연이샘 없이 아이들이랑 함께 합니다.
물감을 써 보려하지요.
큰 마당 건너 긴 의자에 또르르 앉아
학교를 바라보며 그림을 그립니다.
규민이도 한 자리를 차지했네요.
저것들이 더 그림같습니다.
차를 잠시 대려 들어왔던 관광버스를 지키던 아저씨는
아이들 예뿌다 떡과 음료수를 양손 가득 나눠주셨습니다.
전깃줄의 참새 새끼들이 저만치 이쁠까요...

오늘도 사람들이 오갑니다.
민주지산 등산을 왔다 들어오고
신문에서 방송에서 보았노라 찾아오고.
품앗이 승희샘과 세이샘이 점심 버스로 나갔습니다.
사는 얘기며 일하기 시작한 학교 얘기도 못들어보고
마주해서 과일 한 조각 못집어 먹어보고 밭만 매며 사흘을 훌러덩 그리 보냈습니다.
미안습니다.
품앗이 종화샘도 나갔습니다.
밥알 신동인님이 역부러 들어오셔서 영동까지 실어나간 건 낮 4시였네요.
달마다 한차례는 올 수 있겠다십니다.

기사아저씨 김경훈님 입원한 병원에도 다녀왔습니다.
사지 멀쩡하고 눈도 데굴데굴하더이다.
"물꼬에서 일하니 그만만 다친 거지요. 세상에 눈이라도 어찌 됐으면..."
그래요, 우리를 돕는 거대한 어떤 손길을 또 이리 느끼는 게지요.
경훈샘 없으니 참 아쉽습니다.
일이야 또 그렁저렁 하지요만,
울 삼촌 말동무에 밤참 동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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