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 7일 불날 땀 범벅

조회 수 1333 추천 수 0 2005.06.09 18:42:00

6월 7일 불날 땀 범벅

공동체 어른 모임이 새벽 1시를 훌쩍 넘었습니다.
아이들 샤워시키며 물에 젖기보다 땀에 더 절여 나온 뒤
저들끼리 올려 보내고 어른들이 앉은 것도 밤 9시가 넘어였더라지요.
서로를 잘 몰라서,
이곳에 정작 같이 살아도 너른 공간에 제 영역들이 다 있는지라
딱히 서로 나눌 얘기들이 이런 모임자리 말고 드물어(또 조옴 바빠야지요),
혹여 일어날 수 있는 오해를 푸는 것도 겨우 이 자리네요.
이제는 밥알 식구들까지 들어와 있으니
학교 이야기는 밥알 식구들에 대한 것까지 확대되어 할 얘기 많기도 합니다.
실제 이곳에서 시간을 쏟는 부모들의 힘겨움에 대한 찬사가
자칫 이곳에 머물지 못하는 부모들에 대한 비난이 되지는 않는가도 돌아보았지요.
하거나 안하거나가 문제가 아니라 마음을 내느냐 못내느냐가 문제고,
다만 할 수 있는 이가 하는 겁니다, 기꺼이.
하는 이도 즐겁고, 멀리서 같이 못하지만 안타까움으로 쳐다보면서도 느꺼운
그런 마음의 길들이 있지 않을 지요.
'처음'의 마음을 살피는 것도 중요하겠습니다,
나는 그 첫마음을 유지하고 있는가 하는.
마음이란 놈이 얼마나 간사한지요,
오죽했음 똥 누러 갈 때 맘과 올 때 맘에 대해 그토록 흔하게 비유가 되겠는지요.
연구년을 맞아 떠나있는 물꼬 두 식구가 돌아와도
이곳이 삶터와 배움터를 같이 가지고 가겠다는 원칙을 바꾸지 않는 한
예 보태야 할 밥알 식구들의 손이 지금보다 줄 수는 없을 겝니다.
그럼, 밥알들의 고생을 어떻게 줄일 수 있을 것인가,
그게 요 며칠 머리를 온통 차지하고 있는 큰 숙제지요.
배움터와 삶터를 같이 가져가야 한다는 버릴 수 없는 대원칙에서
정말 삶터를 포기해야 하는가,
그런 배움은 이미 소용없다고 생각한 게 물꼬의 존재 출발점이었는데
이제 그 수정이 불가피한가,...
밥알들 부담을 줄일 길을 아무리 머리 싸매도 없습니다.
문제는 정말 그 부담이 아니라 그 부담을 느끼는 '마음'이 더 문제라고 여겨질 뿐.
살면 어떤 문제는 없습디까,
다만 '현재성' 위에서 고민하고 유쾌하게 방법을 찾아내고 그리 살면 되지 않을 지요.
안 유쾌하다?
그렇다면 유쾌할 다른 삶을 찾아나서면 되고.
분명한 건, 그리 복잡한 문제가 아니라는 겁니다.
또 한마디,
내가 나를 놓는 것도 없이 얻을려고만 한다면 어떤 문제도 결단코 해결될 수 없다마다요.
돈을 줘야 하는데 들고 있던 차 열쇠를 내밀질 않나,
늘 다니던 길인데 엉뚱한 데를 들어서서 40여분을 헤매질 않나,
어제는 온 머리가 하얗더니
오늘은 신념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해 뿌리부터 다시 짚어봅니다.
당장 김경훈님 병원 신세로 빈 물꼬의 농사일은
신동인님이 수업 끝나고 날마다 돌아봐주신다 하셨으니 시름을 덥니다.

못일어나겠는 아침, 아이들이 달려와 릴레이 안마를 했습니다.
물꼬 은행과 물꼬 가게들에서 나온 것들이 요긴할 때 많지요.
안마 쿠폰을 모아두었더니 잘 쓰입니다.
굳이 그것 아니어도 너도 하고 나도 하지요.
자리 털고 일어날 녘 혜린이가 감꽃을 주워 만든 목걸이를 걸어줍니다.
가시지대에서 이기고 돌아온 사람처럼 의기양양해지는 아침이었네요.

분수의 큰 틀 안에서 퍼센트를 다룹니다.
찔레꽃 방학 셈놀이 숙제를 하나하나 챙겨가는 게지요.
두부에 국산콩 100%, 지구에서 차지하는 물이 70%, 찬성 40%,
동전 앞면이 나올 확률 5%, 생협 과자에 우리밀 5%, 순도 99.9%,
선사시대 뼈 40% 복구, 400% 확장,...
우리 일상에서 만나는 퍼센트와 분수하고 맺는 관계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잘도 알아듣지요, 둘을 가르치면 아주 열을 압니다.

공격하던 법만 배우다 뒤로 물러나는 걸 두어 시간째 배우고 있는 검도입니다.
퇴격이라고 하는 거요.
한국화에선 화선지에 포도알이 영글었더랍니다.

오후,
멀리 큰 마당 건너 돌탑과 돌탑 사이에서
아이들이 둘러서서 뭔가 심각합니다.
절도 해요.
나중에야 전말을 들었지요.
들고양이(아이들이 미르라 부르던) 한 마리가 죽었고,
젊은 할아버지한테 부탁해 돌탑 앞 밑 부분에 묻었다네요.
편편한 돌 하나를 끌어다가 그 무덤 앞에 놓고
산딸기 한 무데기 오디 한무데기로 제사상처럼 차려놓고
무덤에 십자가도 꽂았답니다.
다신교도 아니고 아주 잡다교라니까요.
절을 하며 현충일 아침처럼 넋을 위로했다지요.
존재 하나 하나에 그런 민감함이 잘 길러져나간다면
우리 아이들의 생태적 감수성 또한 보다 높아지지 않겠는지요.

옥수수 밭도 매고 마늘쫑도 뽑은 뒤
다 같이 모여 놀다가 운동장에서 해 범벅에 땀 범벅에 흙투산이가 되었다가
잠시 아무 소리도 안나더니
저마다 손에 선물이라고 상자며들을 들고 왔습니다.
나현이랑 예린이가 새끼줄을 꼬아 꽃을 끼운 화관을 머리에 여 줍니다.
"이렇게 불평 없이 모델 되어줘서 좋지?"
채은이가 만든 꽃목걸이에,
작은 상자 안에 든(장미꽃잎이 가지런히 깔린) 산딸기와 오디,
산딸기는 최고봉가운데서도 최고였지요, 우찌나 큰지,
하늘이가 멀리서 손을 흔들고,
령이가 자전거를 타고 달려와 인사를 건네고,
혜연이가 아직도 전하는 찔레꽃방학의 후일담,
류옥하다가 안아주고,
도형이가 쳐주는 피아노(많이도 늘었지요),
정근이의 종이꽃,
다, 다 선물이지요.
세상에서 젤 가는 선물이라지요.
"다른 사람은 아주 식몬줄 안다니까."
모남순님이 정미혜님 말을 빌며 이놈들 가마솥방엔 코빼기도 안보였다고 툴툴거리십니다.
"집에서는 안하는 것들이..."
안마에 대해서도 한마디 보태십니다.
시간을 많이 보내는 이한테, 더구나 담임이니 그런 게지요.
좀만 더 크면 저들이 어떤 땀으로 나날을 살았는지 기억할 겝니다,
평생에 밥알 어른들을 부모로 섬기고 저들이 진한 형제가 되어 살아갈 테지요.

오랜만에 아이들이랑 저녁 한데모임에 앉습니다.
"혜연이만 없네. 자, 우리 규민이 출동!"
다다다닥, 혜연이 누나를 데려오는 다섯 살 똘똘이 규민입니다.
그러고 샤워 한 판 한다고 몰려들어간 저녁이었지요.
으이그, 냄새들...
우리들 여름날의 하루가 비눗물에 쓸려가고 있었더랍니다.

아이들 올려보내고 어른 모임을 시작하기 전
지난 5월 아이들이 저들끼리 저녁모임을 한 기록들을 들춰봅니다.
나날이 읽고 읽었노라 확인 사인을 해두었는데도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재미도 나지요.
품앗이 승현샘이 와서 놀았네,
지용이가 일하다 다치고 령이 다치고 나현이 벌에 쏘이고
하늘이가 자전거 타다 다쳐 사무실을 약 바른다 뻔질나게 드나든 일,
동아리(비행, 만화)를 만들고,
일 시간에 일이 너무 재밌었고 저녁밥이 맛있었다는 어느 저녁,
오동꽃 향기를 처음 맡아본 날,
'스스로공부'하며 벌 종류을 알아본 자랑,
만화를 선으로만 그리다 색칠해본 재미,
담엔 갈대가루를 연구대상으로 삼아볼까 하는 고민,
산딸기 밭에서 굴러 떨어지고,
주인 없는 창포로 물레방아를 만들고...
빛나는 아이들의 오월이 고스란히 전해집디다려.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
596 6월 22일 물날 텁텁하게 더운 옥영경 2005-06-24 1236
595 6월 21일 불날 낮에 물 한 번 끼얹어야 했던 옥영경 2005-06-23 1330
594 6월 20일 달날 뿌연 하늘 옥영경 2005-06-23 1228
593 6월 19일 해날 맑음 옥영경 2005-06-22 1277
592 6월 18일 흙날 시원찮게 맑고 더운 뒤 비 조금 옥영경 2005-06-22 1375
591 6월 17일 쇠날 찌뿌찌뿌 옥영경 2005-06-19 1379
590 6월 16일 나무날 까부룩대는 하늘 옥영경 2005-06-19 1170
589 6월 15일 물날 오후 비 옥영경 2005-06-19 1220
588 6월 14일 불날 맑음 옥영경 2005-06-17 1399
587 6월 13일 달날 맑음 옥영경 2005-06-17 1210
586 6월 11-2일, 밥알 모임 옥영경 2005-06-17 1259
585 6월 11일 흙날 아무 일 없던 듯한 하늘 옥영경 2005-06-17 1267
584 6월 10일 쇠날 비 옥영경 2005-06-12 1249
583 6월 9일 나무날 해거름 좀 흐린 하늘 옥영경 2005-06-12 1403
582 6월 8일 물날 맑음 옥영경 2005-06-12 1081
» 6월 7일 불날 땀 범벅 옥영경 2005-06-09 1333
580 6월 6일 달날 의심없는 여름 옥영경 2005-06-09 1218
579 6월 5일 해날 덥네요 옥영경 2005-06-06 1331
578 6월 4일 흙날 흐리다 개다 옥영경 2005-06-06 1268
577 6월 3일 쇠날 말짱한 하늘 옥영경 2005-06-04 1470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