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루귀가 피었더라고.

뒷면에 하얗고 기다린 털이 덮여있는 노루귀같이 생긴 잎만 늘상 알아보다가

꽃으로 보니 낯설었네.

첨엔 변산바람꽃이려니 했다가 다시 보니 노루귀.

이른 봄에 피는 꽃들이 흔히 그렇듯

큰 나무들 밑에서 그래도 볕을 잘 찾아서들 잎 나기 전 꽃 먼저 피고 있다.

긴 꽃대에 꽃 하나씩 달고.

하얀색만 있는 것도 아니다. 분홍도 보라도 있고, 진분홍에 연보라, 자주색도 보인다.

꽃잎에 줄무늬가 보이기도 하고, 꽃잎 가장자리에 하얀 테를 두른 것도 있다.

 

04:30 일어나 책을 들었다가

이른 아침 오색의 골목들에 인사 건네다.

두 차례 묵었던 댁에 물꼬 호두도 들여주고.

09시부터 마을 형님을 따라 고로쇠 채취하는 마지막 걸음에 동행하다.

삶은 달걀과 사탕을 배낭에 챙겨 넣었다.

점봉산 아래 사이골로 들다.

고로쇠 받을 비닐과 고로쇠에 꽂는 2구관 3구관,

세상이 좋아서 이런 도구도 자재상에서 다 나오더라고.

자작나무 박달나무 다래나무도 물을 받다.

그것들은 고로쇠와 달리 오래 두고 먹지는 못한다지.

고로쇠 나무는 전체가 희끗희끗한 빛에 가지가 마주보기로 나다.

긴 무늬가 마른모로 크게 보이는 개박달나무 껍질 운치에 걸음을 세우고는 하였네.

 

정오께 내려와 낮밥을 먹고 낮 2시에는 마을 뒤편 골짝에 들다.

이 골짝은 얼레지가 또 한창이라.

겨우내 고로쇠를 채취한 흔적들이 여기저기였다.

고로쇠를 뚫은 위치와 기구를 보고 아, 이건 끝밭 아저씨 꺼, 저건 평강공주 꺼,

형님은 그리 마을 사람들의 나무를 알아보더라.

다들 부자야!”

이들에겐 산이 들이었네.

마을 수원지를 건너 다시 이쪽 골짝으로 넘어와 아침에 달아둔 것들을 거두다.

그리고 이른 봄 내내 일했던 고로쇠 기구들을 모다 철수.

이런 비탈에서...”

고로쇠물도 싸다 못하겠네.

5시에 산을 나오다.

 

춘추바지를 입었으나 내복을 껴입었더랬다.

하지만 물이 차지는 않았다.

고로쇠에 설치했던 물받이 비닐을 물에 헹궜거든.

한 계절이 또 그리 건넜다. 어째도 오는 봄, 어째도 오는 죽음!

수원지 끝에 뜨는 젖은 낙엽들을 검었다, 마을 사람인 양.

 

저녁 6시 저녁밥상에 초대 받다.

주인장의 아들이 서해 가서 낚시해왔다는 쭈꾸미와 갑오징어가 초고추장과 함께 나왔다.

이 산에서 나온 취나물을 다시마간장과 마늘만 넣고 무쳤다는데,

, 어른의 손맛이란...

아흔 노모가 차려낸 밥상이었다. 40년을 오색 안터에서 살아내셨다.

달래장에 오이김치, 배추김치, 열무김치가 올랐고,

강낭콩밥에 진밥, 최고의 상차림이었다.

, 지난가을에 흠뻑 빠졌던 마가목술의 매력이 이 밥상에서도 이어졌더라니.

천삼과 느릅나무로 끓인 물까지 마시고 밥상을 물렸다.

서울서 이 마을에 들어 20년을 산 이웃 할머니도 함께 앉았더랬다.

일흔 어른이 아흔 노모보다 젊다고 재바르게 설거지를 하셨다.

앉아 받아먹은 밥상이었네.

 

, 저녁상에 가기 전

곧 문을 닫는다는 읍내 약국을 전화로 불러 세워두고 읍내로

후다닥 달려가 멀미약을 사 왔다.

내일 새벽 바다에 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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