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 6.물날. 맑다가 저녁 비

조회 수 239 추천 수 0 2023.12.20 23:57:17


저녁이었다.

천둥과 함께 비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여름날 소나기 같았다.

날도 푹했다.

 

번호를 붙여 일을 몰아 읍내 찍고 돌아오는 날.

1번 농협부터. 학교 통장을 정리할 일 있어서.

조합원들에게 생일 케잌과 소고기를 준다. 작년에는 조합장님이 손수 배달을 왔던.

오늘은 나갈 일 있으니 직접 찾겠노라 했다.

2번 차량점검. 여름계자 겨울계자를 앞두면 하는.

차를 끌어야 할 상황이 생길 수도 있으니까.

여름엔 민주지산 산오름으로 물한계곡까지 차를 가지고 가고,

겨울엔 혹 아이들이 다쳐 병원으로 갈 수도 있으니.

이곳 기사들은 20년을 넘게 본 이들.

커가는 아이들 안부를 묻게 된다.

오늘 우리 차를 맡은 이는 52년 초등생을 둔 아비.

이 맘 때는 케잌이 여러 개 생겨요.”

아이들 갖다 주라 오늘 받은 케잌을 건네다.

그래도 안은 들여다보고. 그래야 잘 먹었노라는 인사도 건넬 수 있으니.

생크림 위에 샤인머스켓이 잔뜩 올라앉았더라.

3번은 차수리센터 사무실에서 처리하면 되었네. 자동차보험 갱신.

4번 면사무소. 모래주머니를 받아오다.

저희도 많이 없어서...”

모래주머니와 염화칼슘 가운데 선택하라기

효율은 염화칼슘이 좋은 줄 알지만 역시 조금이라도 환경을 생각지 않을 수 없는.

모래 다섯 주머니 실어와 달골 대문 앞에 부렸다.


면사무소 앞에 어쩌다(장날?) 보이는 포장마차 하나 있었다.

거기 면 부녀회 사람들 몇 어묵과 풀빵과 호떡을 먹다가

날 반가이 맞으며 사주시다.

그런 곳에 서서 이 골짝 사람들과 뭘 먹어본 게 처음이었다.

이곳에 깃든 지 서른 해가 다 돼 가는데.

마음이 참 좋더라.

(사람을) ‘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하다.

 

아들이 태어나고 그 아이 자라 학교를 마치고 직장을 갔다. 첫해다.

오늘은 생신문안이라고 깜짝 놀랄 큰돈을 보내왔다.

그걸 어찌 쓰나. 모든 부모들 마음이 그러할 거라.

아이들은 자라고 어른들은 늙어간다.

마음 좋기를(우리가), 평화롭기를(세상이), 그저 바라노니.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이름 날짜 조회 수sort
6576 KBS 현장르포 제3지대랑 옥영경 2004-03-24 2213
6575 6월 17일, 쌀과 보리 옥영경 2004-06-20 2202
6574 계자 열 이틀째 1월 16일 쇠날 옥영경 2004-01-17 2193
6573 새해맞이 산행기-정월 초하루, 초이틀 옥영경 2004-01-03 2189
6572 4월 21일 문 열던 날 풍경 - 넷 옥영경 2004-04-28 2177
6571 노래자랑 참가기 옥영경 2003-12-26 2173
6570 6월 14일 주, 아이들 풍경 옥영경 2004-06-19 2169
6569 3월 4일 포도농사 시작 옥영경 2004-03-04 2165
6568 2017. 2.20.달날. 저녁답 비 / 홍상수와 이언 맥퀴언 옥영경 2017-02-23 2164
6567 3월 2일 예린네 오다 옥영경 2004-03-04 2164
6566 가마솥방 옥영경 2003-12-20 2164
6565 3월 4일 포도밭 가지치기 다음 얘기 옥영경 2004-03-09 2161
6564 6월 14일, 유선샘 난 자리에 이용주샘 들어오다 옥영경 2004-06-19 2157
6563 '서른 즈음에 떠나는 도보여행'가 박상규샘 옥영경 2003-12-26 2154
6562 4월 10일 흙날, 아이들 이사 끝! 옥영경 2004-04-13 2153
6561 2004학년도 학부모모임 길을 내다, 3월 13-14일 옥영경 2004-03-14 2152
6560 글이 더딘 까닭 옥영경 2004-06-28 2151
6559 [2018.1.1.해날 ~ 12.31.달날] ‘물꼬에선 요새’를 쉽니다 옥영경 2018-01-23 2149
6558 대해리 마을공동체 동회 옥영경 2003-12-26 2142
6557 '밥 끊기'를 앞둔 공동체 식구들 옥영경 2004-02-12 2130
XE Login

OpenID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