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 짙은 아침이었다.

아침께 지나서는 날이 흐린 줄 알았다.

미세먼지였다지.

 

주워놓았던 은행을 씻고 건지다.

12월초에도 거두었으나

우리 것이 고솜하더라고 한 어르신이 말씀하시기

여기저기 좀 나누면 좋겠다 하고.

이웃에서도 적잖게 주워갔으나

아직 나무 아래 밟히는 은행이다.

물꼬도 넉넉한 게 있다네.

 

청계 전에는 고래방에 있는 매트리스를 끌어다

복도와 창 쪽의 벽에 세웠다.

바람이 좀 덜 들어오겠거니 하고 겨울이면 하는 일.

청계에서 아이들이 하던 일이나

갈수록 힘이 약해지는 요즘 아이들이라는 걸 반영해서

일의 강도를 낮추려 안에 있는 식구들이 미리 해놓는.

샘들이 미리 들어와 계자를 준비하는 미리모임만 해도

일의 크기는 달라지지 않았는데 샘들에게 나누는 일을 낮추니

안에서 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사실 여기서는 그게 또한 수행이고 늘 하는 일이라 그리 힘든 것도 아닌.

더 촘촘히 일찍부터 쪼개서 일을 하면 그 역시 힘들지 않는.

낡은 건물의 겨울 채비는 조금씩 더해지고 있었다.

본관 창문 밖으로 비닐을 치고, 북쪽 창문에는 뽁뽁이를 붙이고,

그 역시 이 달 안에 다 했던 일.

영하 10도로 내려갈 땐 화목보일러에 불도 때주고.

강제순환모터만으로는 영하 20도는 못 견디더라.

얼어 터져 혼이 난 뒤로

밤이고 낮이고 종일 영하권일 땐 화목보일러에 아침저녁 불을 한 시간여 지펴주고 있다.

 

홀로 아이를 키우게 된 아비가 있었고,

물꼬를 눈여겨보다가 아이 댓 살 때 불쑥 운동장에 들어서서 차를 마시고 가더니

그 아이 크면 오리라 했다.

막 일곱 살이 된 딸 한나를 앞세우고 같이 밥바라지를 왔던 무범샘.

2010학년도 겨울이었으니 20111월이었다.

여름계자를 같이 했고, 가을 몽당계자(그해는 서울나들이로 대신했던)를 하고

이듬해 한나는 태국으로 떠났다.

엄마가 태국사람이었던.

간간이 물꼬에 손발 보태며 드나드는 무범샘을 통해 소식을 들었고,

지난해이던가는 한국에 온 한나랑 물꼬를 들어오려 하였으나

계자 준비로 부산한 시기여 다음을 기약했다.

무범샘을 만나고 몇 해가 흐른 뒤

나와 그가 대학 때 연합동아리에서 서로 비껴간 줄을 알았고,

같은 선배를 공유하고 있음도 알았더라.

물꼬의 기숙사(햇발동과 창고동)를 설계했던,

이제는 고인이 된 전 순천향대 건축학과 양상현 교수가 그이.

태국의 국제 중고를 다닌 한나는

태국의 서울대라 할 쭐라(쭐라롱껀)대와 버금에 다름 아닐 탐마삿 국제학부에 원서를 넣고 결과를 기다리는 중.

한국에 왔고, 만나기로 했다.

마침 바깥일들이 겹쳤고,

같이 일정을 잡아 음성의 그네 농막으로 갔다.

무범샘도 같이 보면 좋을 것이나 우린 한국에 있으니 보기 어렵지 않은 바.

저녁에는 돌아와야 할 일 있어 낮밥을 같이 먹는 걸 시작으로

옷가지 하나를 사주고, 정원을 잘 꾸며놓은 찻집을 찾아 다녀왔고,

대학을 들어간 후 혼자 다니기 어렵지 않을 때

물꼬도 와서 계자에서 태국어 기본을 가르쳐보자는 이야기도 나누었더라.

잘 자라주어 고마웠다.

땔내미 데리고 다니는 듯 좋더라. 벗의 딸이면 그렇기도.

애가... 지루하지 않두만. 상대를 잘 살피고, 잘 듣고, 재밌고, ... 훌륭합디다.’

그랑 헤어지고 그의 아비한테 보낸 문자였다.

한나 자라는 동안 하는 것 없었다 아쉽다가

그리라도 봐서 매우 기뻤다.

, 무범샘의 문자가 닿았다.

구정 때 와이프랑 손자랑 둘이 오는데, 구정 지나고 한번 갈까 하는데 가능한지 체크해주쇼.’

설 차례를 지내고 나면,

그때는 인도에 있을 때라.

나중에 천천히 보십사 하였네.

물꼬의 오랜 인연들이 고맙고 고맙다.

 

오는 걸음에 마침 몇 해에 한번쯤 가는 인테리어소품 가게가 가까웠다.

전화를 해두고 문 닫기 5분 전에 들러

밖에 둘 인형 셋 업어왔다.

삼거리집과 가마솥방 창 아래 하나 두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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