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나는 칠선계곡을 오르고 있었다,

먼 훗날 2017년의 가을은 그쯤 기억 되잖을지.

설악산 천불동과 한라산 탐라, 지리산 칠선계곡, 남한 3대 계곡으로들 꼽는다.

9월 마지막 날과 10월 첫날 이틀은 천등산에서 암벽을 오르고,

다음날 지리산으로 향했다.


흔히 오르는 추성리에서 두지동으로 가는 탐방로 대신

용소 쪽으로 가서 옛 길을 더듬어 걷다.

신발을 벗어 매고 계곡을 건너야.

(추성리에서 1.5km-(두지터 2.5km)-선녀탕 3.5km-칠선폭포 0.5km-대륙폭포 4km-마폭포 3km-천왕봉)

칠성동에는 아직 집터로 쓰이는 공간이 남아 있었고,

안오리 마을이 저어기 어디쯤 있었다.

일제 때 징병이며를 피한 젊은이와 지식인들의 은신처,

그 가운데 남한유격대 총책임자 최후의 빨치산 남도부(하준수)도 포함,

하준수의 기록이 이태의 남부군을 낳았을 거라던가.

안오리마을이 바로 빨치산의 본거지가 아니었을지.

세석고원을 지켰던 우천 허만수가 사라진 곳도 이곳 아닐까들.

선녀탕 옥녀탕 지나 칠선계곡의 마지막 다리인 출렁다리를 건너면

계곡 건너로 청춘홀이 보인다.

이 다리가 생기기 이전 불어난 계곡에서 길이 끊겨

바위 안으로 생긴 구멍 안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돌아들 섰다는 청춘홀.

과거 목기를 다듬던 인부들이 임시 거처로도 이용했다던.

산 아래 여러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늦어진 걸음,

어차피 산에서 하루 묵자던 계획,

비선담(여기서부터는 발길을 제한한다) 지나 칠선폭포 이르기 전

신발을 벗어 계곡 다시 건너 텐트를 치다.

밤새 물소리에 노래 소리를 얹었다.


마천면 의탕에서 천왕봉까지 16km 긴 계곡.

죽음의 골짜기라 불릴 만하다 싶게 날카로운 곳이 많았다. 날선 아름다움!

가을이 문을 열고 나오고 있더라.

칠선폭포에 이르러 아침 햇살에 부서지는 빛 싸라기 아래

소리 연습도 하고,

지류 대륙폭포 몇 걸음 빠졌다가 다시 칠선계곡 본류로 향하다.

중봉과 천왕봉 사이에서 흘러내린 물과

천왕봉과 제석봉 사이에서 흘러내린 물이 만나는 곳, 마폭포.

그곳에서 천왕봉을 향해 마지막 수직고도차 500여 미터, 으윽!


낮 5시에 천왕봉에 닿았다.

"이걸 메고 어떻게 올랐어요?"

어둠을 데려오기 전 안개를 부른 산 꼭대기,

잠시 같이 머문 이들이 한 마디씩 보탰다.

예약한 산장 아니면 잘 수 없는 지리산,

법정탐방로가 아니지만 산꾼들끼리 다니는 길 있어 그렇게 배낭을 끌고 오른다.

지리산 벗 하나가 길을 잡아주었던 터.

중산리에서 가벼운 배낭을 메고 온 부부가 되짚어 내려갔고,

천왕봉을 열댓 번은 왔다는 중년의 사내는 치밭목으로 돌아갔다.

캔맥주를 끝끝내 혼자 다 마셔버린 그였네, 하하.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는 길을 바삐 걸었다.

장터목 산장에서 한 끼를 먹고 일어서니 저녁 7시. 야간산행이 이어진다.

2005년 9월 상설과정 아이들과 학기를 시작하는 산오름을 위해

바로 이 길을 오르고 내렸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단 세 줄로 옮겼던 서정춘의 ‘봄, 파르티잔’을 읊고,

박경리의 <토지>며 서정인의 <철쭉제>며 이태의 <남부군>을 들먹이다가아영의 여원재(?)와 팔랑치가 나오는 흥부전과

등구와 마천이 어디쯤 나오는 변강쇠타령도 입에 올렸던 그때.

‘그런 날을 기다립니다.

산청 시천의 중산리에서 천왕봉을 오르고

장터목을 뒤로 얼레지 지천인 연하봉 지나 촛대봉에 섰다가

수로처럼 깊게 패인 길 따라 세석산장과 세석 평원을 지나 영신봉 넘어,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라는 바로 거기를 거닌 뒤

노고단 거쳐 성삼재로 그리고 정령치로 고기리로

그렇게 더듬어 아이들과 백두대간 종주에 오를 날!’

그날 날적이는 그리 적고 있었다.


참샘 지나 백무동으로 내려오니 밤 11시.

끙끙 나오는 신음이 노동요처럼 사람을 밀어준.

지리산을 지키는 산내 사는 또 다른 벗이 추성리 주차장까지 실어다 주었다.

땀으로 젖은 옷에 오달지게 떨었으니.

휴게소에서 수통에 뜨거운 물을 받아다 안고 눈을 붙이고

아침절에야 물꼬로 들어섰더라네.


몇 사람이 하오에 다녀갈 거라는 한가위.

부랴부랴 먹을거리를 좀 장만하고.

사람들이 차를 마시고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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