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늘 일도 밥도 편히 먹었다.

임금노동자가 있으니 밥 때도, 기거도 쉽지 않았다.

집짓는 현장이 이틀 쉬어가면서

잠시 숨 돌렸다.

삶에 대한 비슷한 가치관을 가진 이들이 주로 모여 움직이는 물꼬 흐름과 달리

외부 인력과 함께 집을 짓는 특수한 상황은,

그것도 먹고 자고 일하고 전면적으로 부딪히는 공간은,

고단함을 배가 시키고 있었다.

그런 속에 자주 아니어도 바깥수업이며 산오름이며 물꼬 교육일정들도 돌아갔더랬다.

한 이틀 물꼬 식구들만 있으니 안온함이 있었다.

임금노동자는 저녁 5시면 연장을 놓지만

식구들은 자정이 가깝도록 일을 하게 된다.

밥 때도 일의 흐름 따라 편안하게 챙기게 되고.

무산샘 점주샘이랑 저녁을 먹고 다시 willing house의 일들을 챙기고는 했다.


낮 1시까지 꽉 채워 일하고,

무산샘이랑은 대전에 나가 타일을 사왔다.

대전이 본거지 일터인 상수샘이 나와 자재 사는 일을 도와주었다.

며칠 묵으며 김장에다 밥바라지며 집짓는 현장 일도 도왔던 점주샘도

진영으로 돌아갔다,

아무래도 갔다가 사정을 봐서 다시 와야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떠났다.

일을 그만두었지만 그렇다고 그의 일이 없겠는가.

그 마음에 가슴이 울렁였다.

누가 내 일을 내 일같이 답답해하고 갑갑해하고 속 타하고 애닯아 하겠는가.


밤, 다시 달골에 사람들이 들었다.

일이 도저히 안 된다 여겼는지

전체 일을 맡았던 동현샘은 사나흘 팀장급 임금노동자를 쓰기로 했다.

사흘 말미로 들어온 종빈샘, 눈 소식에 한밤에 닿았다.


새로 묵을 이가 있으니 이부자리를 챙긴다.

이 언 날씨에 빨래를 하기는 어렵겠다, 짬도 짬이고.

이불을 털어냈다.

물꼬 대해리 살림만 20년이 넘는다.

이불들만 해도 그렇다.

아무리 빨아도 지워지지 않는 얼룩,

낡을 대로 낡아 풀풀거리는 실밥,

바랜 가장자리,

사물도 나와 같은 속도로 영락하고 낙백하지만 낡아가는 동안엔 알지 못하다

문득 이런 순간에 사물만큼 나도 바랬다는 걸 안다.

그런데, 나와 같이 늙어가는 사물이 들려주는 이야기가

슬프거나 안타깝거나 허망한 건 아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내가 숨 쉬었던 모든 순간들이 쌓여 지금에 이르렀을 것이고,

그래서 순간이 또 소중해지더라는.

며칠 함께 뒹군 벗을 보내며

우리가 보낸 '지금'이 얼마나 찬란한 때였나 울컥하였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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