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렬하게 퍼붓던 간밤의 눈이었다.

이틀 일을 마친 굴삭기가 그 기세에 얼마나 서둘러 달골을 빠져나갔던지.

제어가 되지 않는 미끄럼으로 바퀴가 내려가는데,

모두 간이 쪼그라들어 숨이 막힐 지경이었던 엊저녁이었다.

눈은 계속 내렸다.

아침에도 내렸다.

학교아저씨 무산샘 점주샘과 눈을 쓸었다.

올 겨울 몇 번째 하고 있는 비질인가.

눈은 쓸었으나 날이 차 길바닥은 얼어있다.

하지만 이렇게 쓸어두면 햇살 좀 퍼질 때 금세 녹을.


정오께 달골 집짓는 현장에는 원석샘도 손을 보태러 들어왔다.

해는 났으나 워낙 낮은 기온, 아직 길은 위험을 안고 있었다.

계곡 다리 못미처 차를 두고 걸어 올라왔다.

낮밥도 달골에서 모두 간단하게 먹기로 했다.

저녁은 쓴 눈 위로 편히 오르내렸다. 물론 아직은 걸어서.“4륜은 나아!”

20년 전에 견주어 전혀 바래지 않은 원석샘의 농이라.

스틱을 손에 쥐고 오르내리며 그가 말했네.


마을 넓은 길도 언 눈길에선 어떤 차도 맥을 못췄다.

남은 일들을 위한 나무 자재를 들이기 위해 무산샘과 길을 나섰는데,

채 마을을 못 빠져나가고 차를 돌려야 했다.

두어 대의 차가 길 가에 방치되어 있었고,

차 한 대는 결국 타고 있던 이가 내려 모래를 뿌려가며 주춤주춤 길을 되돌아가고 있었다.

우리 또한 마을 삼거리까지 올라오지도 못하고

아래 차를 두고 걸어 올라와야 했다.

얼어붙은 눈길에 장사가 어딨겠는가.


현장의 모든 이들이 모여 공사일정에 대한 조율이 또 있었다.

시공을 맡은 우두머리샘이 기어코 12월 마지막까지 일을 진행하고 싶어한다.

건축주의 사정이나 상황은 아랑곳없다.

일도 곧잘 하고, 여태 해 와서 상황을 아는 사람이 돕겠다는데,

누가 보면 거절할 까닭이 없겠으나

여기 상황은 또 그렇지가 않다.

그 일에 계속 매이면 다른 일을 못하겠는 거라.

밥도 알아 먹고 잠도 알아 잔다고까지 하더라만

사람이 들어와서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쓰일 마음을 생각하면

밥 해 주고 잠자리 내주는 것과 다를 바 없을.

더구나 1월 1일 바르셀로나행 탑승을 앞두고 있는 나로선

밥바라지며 공간바라지며 도무지 말이 안 되는 상황.

일을 더하기 위한 자재에서부터 그 비용들도 이제 감당을 못하는.

이미 예상했던 건축비가 배에 이른.

올해 더 이상 할 상황이 아니다.

현장에서 잠시 붙거나 떠나야 하는 이들로서도 일은 멈춰야 한다.

게다 시공자가 해주기로 했던 일들조차 못 다 하고 현장이 끝나겠는 걸.

허니 시공자를 뺀 이후 샘들이 붙어 할 작업들도 있단 말이지.

그 일정도 생각하면, 아무리 날을 빼도 이 달 16일을 못 넘긴다 못을 박다.

원석샘의 훌륭한 조율이 있었더라.

남은 일정에 대한 모두의 합의를 끌어냈다.

16일까지만 시공자와 일하는 걸로.


밤, 다시 눈 날렸다.

햇발동 마당에서 새 집으로 가는 길을 쓸었다.

작업하러 오가는 길 좀 나으라고.

빗자루를 놓고 땀을 훔치며 데크 의자에 점주샘과 앉았다.

둘러친 산이 바위처럼 웅크리고, 저 아래 불을 밝힌 마을이 보인다.

그 마을 가운데 학교가 있고, 거기 장순이가 있다.

“이거 뭐예요? 큰 짐승이 내려왔나 봐.”

개들이 몹시 짖는 사이로 들어본 적 없는 짐승 소리가 났던 저녁,

밥을 먹으러 모이고 있던 우리 속으로 장순이가 여태 낸 적 없는 울음을 보냈더랬다.

“오늘내일 해. 언젯적부터 이제 떠날 때 되었네 하고 다들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어.”

영하 14도의 밤, 올 겨울 가장 춥다는 이 밤에 그는 무사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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