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을 쓸고 쓸고 쓸고.

마치 산사에 이르는 길을 쓰는 스님들처럼.

동안거를 시작하는 날다운 풍경.

 

90일 정진한다 해놓고 마치 대문을 걸어 잠근 산막이 되고 보니

그동안의 피로가 갑자기 몰리는 거라.

겨울이 갑자기 달려드는 양.

한참을 널부러지다 일어난다.

그러면 또 일이 좀 되고.

늘어지지 않으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얼마나 다행한가, 이렇게 일어나 또 옴작거리니.

쓰고 나니 마치 어디가 아픈가 여겨지기도 할. 아님.

그저 겨울에 늦어지는 아침 이야기.

산으로 둘러쳐 해가 더디게 뜨는 우물 같은 이곳이라 더욱.

좀 게을러도 된다. 큰 일 안 난다.

그러다 화들짝 뭘 하면 되지.

 

90일 수행에 든다고

간밤엔 대처 나가 식구들 밥도 멕이고 오늘 돌아왔네.

묵밥을 해먹다.

다싯물을 내고 묵을 썰어 넣고 묵은지 다진 것과 김을 잘라 고명으로 얹으면 끝.

미더덕찜도.

다른 별 것 없이도 콩나물만 있으면 될.

이 계절에 좋은.

그저 양념장 끼얹어 찌고, 마지막에 전분가루 푼 물 넣어 뒤적이면 되는.

 

이 멧골이야말로 롱패딩이 제대로 기능을 한다.

그렇지만 일하기엔 불편한.

그래도 아침저녁 출퇴근용으로만 써도.

기락샘이 학교아저씨를 위해 롱패딩을 하나 주문해주었다.

삼촌, 새 거라고 아끼지 말고 입으셔요!”

 

남의 눈치를 보느라 어려운 친구가 물어왔다.

어째야 할지 모르겠다고.

난들 뭐 알까.

우리는 왜 그렇게 됐을까? 한국 사회가 좀 심하지.

남의 눈에 맞추는 게 처음엔 간단하고 편하니까 그렇게 했을 것.

부딪히는 게 힘드니까.

그런데 나중에는 거기 부응하는 게 힘들어지지.

가짜가 되는 거다. 내가 안과 밖이 달라지고 분열되는 거다.

그것이 나를 불안하게 할 것이다.

자꾸 내가 안 괜찮은 사람인 것 같아지고, 내 본 모습이 드러날까 두려워지고.

그러니 나의 안정이 헤쳐지고.

차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마음의 벽, 그러니까 보호벽을 높이 단단하게 쌓지.

다만 말했다, 남 말고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를 살펴볼까 하고.

그 껍데기 오늘은 한 번 구겨볼까?

오늘은 내가 내 눈치를 좀 볼까?”

남 눈치 던지고 내 눈치를 보니, 괜찮으신가?

괜찮다. 괜찮기를.

나는 나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결정하는 건 결국 나.

하지만 적절한 사회적 행위는 필요함.

그것이 내 가짜 모습인 건 아니지. 그저 예의라고나 할까.

(물론, 그럼 이게 유지가 되는가, 안될 거다. 남 눈치 말고 내 눈치 보는 거 말이다.

그건 또 다른 훈련이 필요하겠지.

그건 물꼬에서 한 번 해보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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