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 좀 보셔요, 동네방네 사람들을 부르고 싶은 날.

오늘 제도학교에는 찾아오는 영어캠프가 있었다.

4차시에 6학년 교실에 도움꾼으로 들어갔다.

우리학급 아이가 마침 나랑 하는 국어시간이기도 했던 참이라.

첫 활동이 칠레 땅을 퍼즐로 잇기.

, 개인활동이었는데, 정해진 시간이 끝나도록 하지 못한 아이들도 있는데,

우리 학급 한동이가 단번에 했다!

우연? 아니다. 그 다음 활동도 그러했으니까.

곁에서 통역만 좀 하면 되었던.

나중에 담임한테 말했더니,

, 그렇네요...”

그 반에서 대한민국지도퍼즐을 할 때도 바다 부분을 젤 먼저 모두 다 맞추었더란다.

아이는 이번 학기 목소리도 커지고, 망설이지는 부분이 덜해졌다.

돌아와 본교 특수학급샘한테 말하니

옥샘이 같이 들어가니... 요새 자신감이 생겨서 더 잘하는 것 같아요!”

부쩍 많이 느끼신단다.

고마운 일이다.

성공의 경험이 다음 경험을 이끌어줄 것이다.

자신감의 경험이 다음 자신감을 불러줄 것이다.

나이차가 많은 그의 형아한테도 문자 넣어주었다.

혹 선물할 일이 있거들랑 퍼즐을 사주면 좋겠다고.

주위에서 하는 격려가 또한 그를 더 가슴 펴게 할 것이다.

자세가 자신감을 만들기도 해,

어깨가 아주 구부정하던 그 아이의 등이 훨 펴지기도 했고.

고맙다, 고맙다.

 

아침부터 땀 흠뻑이다.

달렸다, 라고 말하는 그런 날.

달골을 둘러보고 마을의 물꼬로 내려가

차를 닦고 가습이 제습이한테 등 쓰다듬으며 닷새 뒤 보자 일러두고

찻바구니와 두어 가지 살림살이를 챙겨 다시 주중의 제도학교 삶으로.

1학년 1호차를 타고 오는 두 녀석이,

아니나 다를까 현관의 긴 의자에서 데굴데굴거리고 있다가

당장 꼬랑지처럼 따라붙었다.

옥샘, 운동장 가자~”

말이 짧아!”

옥샘, 운동장 가자요~”

더 길게~”

그러며 교실까지 들어와 아주 자리들을 잡았다.

어쩌니, 오늘은 먼저 처리할 일이 있음~”

물꼬에서 딸려온 일 하나가 있다.

메일로 얼른 그것부터 처리해야 한다.

여기선 여기 삶을 살 거니까, 확실하게 잊어먹게 매듭을 지어놓고.

보드게임 상자 하나 꺼내놓으니 모두 논다.

그 사이 2호차 아이들도 오고 자가용으로도 오고 곧 3호차 아이들도 오고,

우리 학급이 어느새 1학년 교실이 되었다.

1교시가 시작돼 담임이 와서 아이들을 데려가고,

우리 학급은 그제야 청소 시작.

 

분교 소속이나 석면제거공사로 계속 본교에 와서 수업을 하고 있는 상황.

특수학급은 교실 안에 싱크대가 있다.

그거 같이 쓰는 사람이 있다고,

어쩌면, 내가 주인 아니라고 게을렀다.

내가 그런 걸 보고 있을 사람이 아닌 걸.

어느 집 부엌이고 내 집 부엌이거니 하는 사람인 걸.

곁사람을 믿고는 밀어두었다.

차를 내며 내가 더 자주 그곳을 쓰는 걸.

오늘 아침은 하수망도 박박 묵은 때를 문지른다.

그곳을 씻으려고 칫솔을 갖다 놓고도 이러저러 늦었다.

늘 쓰는 한 쪽은 또 그나마 나은데,

, 잘 쓰지 않는 안쪽은 찌꺼기를 오래도록 그냥 둔.

그걸 보고 사는 주부라니!

뭐 좌절까지는 아니고 잠시 반성.

그리고 땀 흘린 아침으로 빛난 시간.

 

허겁지겁, 숨 돌리고 숲교실; 참나무 구분하기.

나도 잘 안 되는.

마침 좋은 자료를 찾아서 같이 보고.

정현종의 시도 하나 읽네.

밑줄 긋듯 몇 구절을 다시 읽어주었다.

제 빛에 겨워 흘러 넘치는 해는 왕관이 되어초록과 꽃들에게 넘치고

하늘의 푸른 넓이를 다해 웃는다’.

하늘 전체가 그냥/ 기쁨이며 神殿(신전)이다.

정현종의 초록 기쁨-봄 숲에서였다.

참나무는 진짜나무, 그러니까 쓰임이 많아 이름이 그러하다.

떡을 쌌던 떡갈, 짚신 깔창으로 썼던 신갈, 잎이 가을 늦게까지 달려있어 갈참,

참나무 가운데 가장 크고 웅장하지만 도토리는 가장 작아 졸참,

열매가 가장 커서 수라상에 올라간 상수리,

나무껍질이 가장 두껍고 골이 깊어 굴참; (잎 크기 차례였음)

잎도 구분해본다.

거꿀달걀형 떡갈과 신갈과 갈참,

긴타원형 졸참, 상수리, 굴참.

잎자루가 없는 떡갈과 신갈, 나머지는 잎자루가 있다.

떡갈은 잎 끝이 둥글고 신갈은 좁고 뾰족, 갈참은 뭉뚝하고 뾰족,

졸참은 잎둘레가 갈고리모양, 굴참은 톱니가 없이 침만.

열매도 보여주었다.

여섯 가지를 나란히 보여주면 차이가 났지만

한 가지만 있을 때는 쉽지 않을.

뒤로 젖혀진 모자 받침이 떡깔도 굴참도 상수리도 있는데,

떡갈은 떡 벌어졌고,

신갈은 열매가 삼각형, 갈참은 동그랗고, 졸참은 길게 쭈욱.

뒤로 젖혀진 모자받침이 1/2 덮였으면 상수리고 2/3 덮였으면 굴참이라는데.

눈으로 익히고, 지난 시간 따다 둔 걸 냉장고에서 꺼내 확인하고,

잠시 숲 들머리만 가서

정자에서 판소리 한 대목, 그리고 매달린 나무에서 신갈과 떡갈과 상수리를 보다.

, 늘 하듯 자리공 얼마나 컸나도 보고,

오늘은 달개비도 하나 그 아래 자란 걸 보았더라.

은별이가 정자에서 자리공을 알아보고 아는 체하고,

태음이가 눈 빠르게 참나무 잎들을 찾아 구별해내고.

빠른 건 모기도 매한가지.

기피제만 뿌리고 갔더니만(패치 없이) 마구 또 달겨 들어 정신없었네.

 

내가 급식을 돕는 자폐경향 진세는 오늘 밥을 잘 먹다.

생선커틀릿이 나온. 구운김과.

맘에 들었던 게지.

아주 아구아구 먹었다.

밥도 잔뜩 떠서.

그럼, 먹고 싶음 먹는 거지, 배고프면 먹는 거지.

1년 교실에서 진세 때문에 자주 SOS.

소리를 지르거나 누우면 살살 쓰다듬어주라 도움샘께 전하였네.

 

오후마다 찻자리를 마련하는 특수학급이라.

다식으로 비스켓이 들어오고,

한 분은 토마토를 갈아다 넣어주시기도.

제일 애쓰는 게 이 반이여, 하시며.

우리 학급이 열일 하지.

유치원 원아 가운데 한 아이 특수학급 입급 검토를 위해 관찰수업,

2년 아이의 학업도움을 위한 관찰수업,

굳이 우리 학급에서 꼭 나서지 않아도(진단을 외부 전문가들이 해도 되니) 될 일에

할 수 있는 만큼 손을 보탠다.

 

오늘 만큼은 문을 걸고 우리 학급 교사들의 논의 혹은 쉼이 필요할 때쯤

지난 한 주 못한 수행 하라고 밖엔 비 내리고 안도 고요한,

그리고 문을 두들기는 이들도 없는,

우리 특수학급 교사들에게 오늘 딱 필요한 시간이 열렸다.

늘 신비하게도 끌어당기는 이들이 이곳으로 향하고 답을 구해간다.

딱 필요한 수행을 끝낸 뒤 기다린 듯 열린 문,

또 한 사람이 차를 마시고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고 간다.

그게 사랑반 노릇하는 우리 학급 역할이거니.

 

저녁 바느질모임이 있었고,

끝나기를 기다린 듯 먼 구례에서 온 상담 전화.

11학년의 진로를 앞두고 부모로부터.

아이가 부모에게 쓴 편지부터 전화기 너머에서 읽는다.

잘 컸다. 자퇴를 위해 부모를 설득하는 편지였다.

어떤 과정이 짚어지면 좋을지 조언하다.

차차 길을 같이 밝혀가기로 한다.

굳이 거듭 짚은 것은

혹 그 아이가 자퇴를 결심케 한 사건이

묻혀져서 되살아나는 상처가 되지 않게 살펴졌으면 좋겠다 전한다.

 

우리 모두 한 생을 사느라 욕본다.

더구나 전 지구적 위기인 코로나19 아래

여전히 우리는 꿈꾸고, 살고, 애쓴다.

우리 모다를 응원함!

 

물꼬에서는 17시부터 4시간동안 집중호우였더라는.

 

(* 제도학교 아이들 이름은 가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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