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아침부터 그토록 꽉꽉 채웠던 하루였는데,

머리는 얼마나 썼고 몸은 또 얼마나 썼던가,

엊그제 밤에도 양이 많지 않았던 잠이었는데,

어디서 오던 잠이 걸려버렸던 걸까,

왔던 잠은 또 어디서 막힌 것일까?

새벽 1시도 넘어 잔 잠인데 더 자려도 좋으련

며칠째 깨는 시간에 깼다, 05시도 되기 전.

최근에 흔한 일은 아니다,

일어나는 시간이 아니라 자는 시간이 요새로 치면 퍽 더뎠다는 말.

자정 전에는 자려하니까, 아니, 그렇다기보다 잠에 드니까.

아니, 어떻게 잠이 안 올 수가 있지?”

평생에 드문 일, 알 수 없는 일이라는 양

잠을 못 잤다는 이에게 하곤 하는 말인데.

잠을 덜 잤을 때 오는 두통인 뻐근한 머리앓이가 찾아왔다.

그럴 땐 한 순배 더 자 주면 반만 열린 몸이 온전하게 하루를 맞는데,

이런! 글렀다.

어둠 속에서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어린 날 방을 같이 썼던 외할머니는

빛이 아직 들지 않는 혹은 어둠이 아직 앉은 방에서

뭐라 뭐라 말씀하시곤 했다.

아직 날이 새지 않느냐며 새벽을 부르거나,

어떤 기억 자락을 붙들고 중얼거리거나,

해야 할 일의 차례를 짚어보고 계셨거나.

마치 그 음성처럼 내가 소리를 내고 있었다,

더 붙들 잠이 아니네 하며.

때로 내일을 위해 억지로 청하는 잠이 더 피곤하게 느껴진다.

불을 켜자 화들짝 놀란 어둠이 후다닥 달아났고,

나는 출근 전에 다시 켤 일 없겠다고 전선줄이며 잘 정돈해둔 랩탑을 열었다.

그리고 몇 줄의 글을 썼다.

 

어느새 아침 7, 책상 앞에서(뭐 식탁이지만) 부랴부랴 가방을 싼다,

가벼운 아침밥을 먹고.

사택에서 본교는, 중앙현관까지라 해도 100미터면 넉넉한 거리.

출근기록부에 발열체크 기록하고, 교실 불을 켜고 문을 열고 컴퓨터를 켜고 교실 소독하고.

아침마다의 풍경이다.

오늘은 샘들한테 소통메신저로 아침편지 하나 돌린다.

이곳으로 걸어오는 샘들을 환영하노라고,

지난 어느 숲교실에서 우리들이 읽었던 정희성의 시 하나를

이 아침 샘들과 나누노라고.

운치 있는 이는 그에 대해 김용택의 참 좋은 당신을 답으로 보내왔더라.

아름다운 아침이었네.

 

공으로 아침 해건지기를 대신하는 요즘,

체육관으로 향하는데 학교지킴이 아저씨 보인다.

마주 서서 가벼운 스트레칭, 그리고 박수치기운동.

지난 두어 달 우리는 거의 아침마다 마주치면 하는 운동이었다.

청소여사님도 마찬가지. 바쁘다고, 장갑 못 벗는다고 자주 피하시지만.

, 그때 1호차 등장. 오늘 아이들 발열체크 맡은 샘이 아직 보이지 않는데.

일찍 학교를 들어서는 나는 일종의 보충병쯤.

얼른 학교지킴이 아저씨 손발에 맞춰 책상 준비, 발열기록장 들고오고.

아이들 이름을 부르면 아저씨가 체온 재고 내가 기록하고.

담당교사가 들어왔기 자리를 내주다.

 

체육관으로 아이들이 달려온다.

배구공을 내고 몸을 풀고.

다른 학년들이 왜 1학년들만 아침시간 체육관에서 노느냐 불만들이 나온다고.

1교시 전 아이들끼리만 체육관을 올 수 없으니까.

근데 1학년들은 내게 딸려서 늘 뛰어다닌다.

옥샘, 신발 벗어도 돼요?”

우리는 그렇게 체육관을 누비고.

마스크를 벗지 않으려 애쓰면서.

2호차가 오고 3호차가 들어오면, 그리고 분교차까지 오면 다 온 것.

1학년도 다 모이고.

그럼 1교시가 시작되고, 우리도 우리들의 교실로 간다.

옥샘, 왜 흰머리가 있어요?”

오늘 1학년 윤전이가 말했다.

마침 단에 올라 내려다보니 내 머리카락들이 들여다보였던 것.

내가 할머니야!”

그간 내가 할머니였던 걸 몰랐던 갑다.

같이 뛰어다니니 젊은 사람인 줄 알았나 보다, 하하.

 

오늘 채밤이는 나를 감동시켰다.

싫어,를 입에 달고 다니는 고집불통 땡깡쟁이 토라지고 주저앉아 울고불고 불퉁거려서

찡찡이라 불리기도.

그걸 또 형님 같은 윤전이는 자꾸 약을 올리고.

너도 윤전이한테 같이 약올려보렴!”

하더라.(약을 올리더라)

게다 싫어대신 다른 말을 찾아보자고 했다.

하더라.

채밤아, 네가 창밖에 던진 공이니까 네가 가져오자.”

싫어!”

다른 말 찾아보자!”

잠깐만요! ...”

또 다른 말은?"

“'있다가요.'”

이거부터 하구요...

아이는 다른 말을 찾고 있었다.

고마워라.

그래 그래, 그렇게 조금씩 한 발씩 커가는 게다.

 

오늘부터 다시 특수학급 도움샘이 출근할 수 있게 되다.

코로나19 관련 자가격리가 필요했던.

그래서였을까, 다른 때보다 더 편안했던 하루라.

어쩌면 낯선 상황이어서 또 그러는지도.

맞아,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그를) 믿을 수 없어!”

도움샘과 눈을 마주치다.

자폐아이는 어제 엄마한테 아주 혼이 났다는데,

어제 5교시 1학년 교실에서 있었던 약간의 소동 때문이었던 모양이다.

그걸 또 그의 엄마기 밖에서 듣고 안절부절했던.

엄마한테 말할 거야, 담임이 아이한테 그러니까 하던 행동을 멈추기도 하더라지.

급식실에서만 해도 밥 잘 먹었는데.(그의 급식 도움꾼으로 동행한다)

이제 저도 좀 자리가 잡혀가나?

닭꼬치도 싹싹 먹고,  숟가락 비행기만 해도 그의 입 속으로 네 대나 날렸다.

그것도 저가 밥을 떠서. 떠먹인 게 아니라.

내가 두어 주 전 급식실을 처음 데려가던 날부터 따져보자면

혼자 식판을 들게 되었고, 바닥에 눕지 않고,

물통을 혼자 챙기고 스스로 열고 마시고

물통을 다시 챙겨 나와 가방에 넣는 것까지.

이제 혼자 수저질도 한다.

내일 또 배가 고프고 제 입맛이 맞는 게 나올 때 그렇겠지만.

오늘은 식판의 잔반을 한 곳에 모으는 걸 연습했다.

한 발씩 그도 나아가고 있다.

내가 잠시 그의 급식실행을 함께하니

그래서 도움샘도 숨 좀 돌리고 5교시로 편히 이동하는.

 

3교시 4년 국어시간에는 사전 찾기.

도서관에 작은 사전들이 없더라.

국어사전이라고 아주 커다랗고 두툼한, 세 권이 한 질인 사전만 있는.

너나들이, 막간, 구휼... 낱말들을 찾다.

, 재난지원금도 구휼이네요,

태음이가 말했다. 

그러하네!

 

교무실에 찐 옥수수 김 오른다는 전갈이.

11개 가져가란다.

교감샘이 사고, 교감샘과 교무샘이 씻고, 실무사샘이 찌고.

정겹기도 하지.

급식. 조리사샘들이 고기 들어간 짬봉국 대신 해물만 넣은 국을 내 밥상으로 챙겨주시다.

단체급식에서 자주 받는 개인특별식이라니.

김도 있어!”

따로 구운김도 꺼내주시고.

아니, 이렇게 완벽한 맛인 줄 모르고 밥을 조금 받았네.”

즐거운 급식실이라.

고기를 먹지 않는 대신, 번번이 그리 챙겨주실 수는 없지만,

할 만할 때 그리 하시는 급식실 식구들 넷.

간이 어쩜 그리 맞춤한지.

이 학교를 떠나면 급식실이 제일 그리울 듯.

학교 밥 맛없다는 소리를 얼마나 들었던가.

이리 맛있는 집밥일 줄이야.

 

두어 시간 자고 오전을 뜨겁게 보내고

15분 눈 붙이며 피로를 털고.

오후 특수교사샘들만 모임을 갖기로.

그래야 둘 달랑.

협의라는 이름으로 바느질 모임을.

참새방앗간, 혹은 상담실, 찻방, 쉼터,

그래서 오가는 이들이 많은 우리 학급,

들리기도 하고 불려오기도 하는데

오늘은 온전히 우리 학급 구성원들만을 위한 오후.

문에 14:30~16:30까지 출입을 제한한다 붙이기까지.

그래도 꼭 궁금하다고 여는 사람들 있어.”

정말 그랬더라.

우리는 짧은 협의 뒤 바느질을 하다.

저녁에도 모임을 이었네.

 

푸성귀와 집밥을 받다.

만찬이었다.

바느질모임이었다.

이곳에서는 이곳에서의 삶으로 충만한.

어르신 한 분이 좋아하신다길래하며 마늘쫑장아찌를 나눠주시다.

참 넉넉한 삶이라.

 

물꼬에서는...

내가 없는 아침뜨락을 학교아저씨가 아고라 측백나무 둘레 풀을 몇 그루 정리했고,

하얀샘이 풀을 좀 잡았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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